콧물, 코막힘 등 가벼운 감기 증상도 그냥 넘기지 않고 동네 병원으로 달려가던 민영화(40)씨는 이젠 아파도 병원을 찾지 않는다.
사무직으로 일하며 10년 넘게 꾸부정한 자세로 모니터를 쳐다본 탓인지 목, 가슴, 등짝 등 어느 곳 하나 쑤시지 않는 곳이 없다. 무리한 타자 탓인지 요새는 손가락마저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팔꿈치 근육도 씰룩거린다. 조금만 걸으면 정강이 근육이 쑤셔온다.
나이가 드니 몸이 ‘나 좀 보살펴 달라’고 신호를 보내는구나라고 생각한 민영화 씨는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감당할 수 없는 의료비에 기겁을 하고 더 이상 병원을 찾지 않았다. 치료를 포기한 것이다. 월급 200만원으로 세 가족이 빠듯하게 살고 있는데, 의료비로 수백만원이나 지출하는 것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민영화 씨는 병원 대신 도서관을 찾아 ‘통증치료’, ‘몸의 자생력’ 등 자가 치유와 관련한 서적을 뒤적였다. 치료는 포기했지만 통증을 방치할 수는 없어 생활 습관을 고쳐 몸을 고쳐 보기로 한 것이다. 민영화 씨와 같이 돈이 없어서 진료를 포기하는 사람들은 박근혜 정권이 2014년 의료민영화 정책을 시행하면서 급격하게 늘었다. 의료민영화는 대한민국을 ‘유전건강 무전질병’의 살풍경스러운 사회로 만들었다.
민영화 씨가 처음 찾은 정형외과에서는 몸 이곳저곳의 통증이 목디스크 때문일 수 있다고 했다. 확진을 위해서는 컴퓨터 단층촬영(CT)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픈 곳을 만져보지도 않고 성의없이 말하는 의사가 전혀 미덥지 않았다.
그래서 인근의 재활의학과를 찾았다. 이곳의 의사는 그나마 아프다는 곳을 만져보는 성의는 보였다. 엑스레이를 먼저 찍어보자고도 했다. 그런데 엑스레이를 보더니 목디스크 증상이 있는 것 같다며 대뜸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권했다. MRI 촬영 비용은 CT 촬영 비용보다 훨씬 더 비쌌다.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를 만난 기분이었다. 눈치를 챘는지 의사는 대학병원보다 싸게 촬영할 수 있는 영상의학과병원이 있다면서 소개해줬다.
닥터 노먼 베쑨의 인류애를 기대하진 않았지만, 의사들이 환자를 돈벌이 대상으로만 보는 것 같았다. 민영화 씨는 의사들의 의료지식을 뛰어넘을 수야 없겠지만 눈 뜨고 코 베이지 않으려면 뭘 좀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넷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사이트 등을 뒤졌다. 그러다 우연히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2012년 대형병원과 종합병원의 비급여 진료비용 실태를 조사한 자료를 보게 됐다. 척추 MRI 촬영의 경우 병원간 가격 차이가 최대 115만원이나 됐다. A대학병원에선 127만원인데 지방에 있는 B종합병원에서는 12만원에 불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A대학병원에서는 폭리를 취하는 것 같았다.
지방까지 갈 수는 없어 민영화 씨는 재활의학과 의사가 소개해 준 영상의학과병원에서 35만원을 주고 MRI 촬영을 했다. MRI 영상을 CD에 담아 다시 재활의학과를 찾았다. 그런데 의사는 “목디스크가 약간 있긴 한데 손가락이 뜻대로 안 움직이는 것과는 연관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단 목디스크 치료를 받으면서 경과를 보자”고 했다. 진료실을 나오니 간호사가 물리치료실로 안내했다. 물리치료실장은 MRI 영상을 보면서 “정상적인 목뼈는 C자형인데, 환자분의 목뼈는 C자형으로 내려오다가 아래쪽이 약간 일자로 변형된 상태”라고 했다. 그러면서 물리치료와 도수치료를 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영화 씨는 그런가보다 하면서 설명을 들었다. 물리치료실장은 “오늘 치료를 받으시겠냐”고 물었다. 민영화 씨가 “그러겠다”고 했더니, 물리치료실장은 “10번을 예약하시면 1번은 서비스로 무료로 해드린다”면서 “혹시 의료실비보험 가입하신 게 있냐”고 물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든 민영화 씨는 도수치료 비용이 얼마냐고 물었다. 비급여다보니 1회에 5만원이라고 했다. 10회면 50만원. 10회 예약하면 1회는 서비스로 해준다고 하니 45만원이었다. MRI 촬영 비용보다 비쌌다. 배 보다 배꼽이 더 컸다. 민영화 씨는 급여 대상인 물리치료만 받고 병원을 나왔다.
그날 밤 사십줄에 접어든 대학동기들과 송년회 자리를 가졌다. 화두는 단연 의료비 문제였다. 나이가 드니 몸 여기저기가 고장 나 병원비가 많이 든다고 하소연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병원이 환자들을 상대로 돈벌이를 한다는 것이었다. 동기들 얘기를 들어보니 가관이었다.
교통사고로 발목이 부러진 친구는 수술을 한 후 발목보조기를 하게 됐는데, 병원에서 처방해 준 발목보조기의 가격이 무려 80만원이었다. 알고보니 이 병원이 의료기기 수입·생산 자회사를 하고 있고, 병원에서 자회사의 돈벌이를 위해 환자들에게 저가의 발목보조기를 놔두고 비싼 발목보조기를 권하고 있는 것이었다.
민 씨와 친구들은 병원이 환자들을 돈벌이 대상으로 보고 있는 우울한 사회에서 살 길은 사보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고보니 친구들은 다 의료실비보험 하나 씩은 들고 있었다. 박근혜 정부가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 허용 등 투자활성화 대책을 내놓을 때 의료민영화라는 비판이 나왔었는데, 정부는 국민건강보험체계는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의료민영화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강조했었다.
그러나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으로 병원이 더 손쉽고 광범위하게 영리추구를 할 수 있게 되면서 국민 의료비는 상승했고, 이는 국민건강보험 재정 부담으로 이어졌다. 결국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갈수록 축소되고 있고, 이 틈을 타 민간보험이 더욱 활개를 치고 있다.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2014년 박근혜 정부의 의료분야 규제완화를 저지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민영화 씨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의료실비보험에 가입하기 위해 민간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