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법인약국의 화려한 겉과 어두운 속

민영화씨는 장염 때문에 역 근처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았다. 유동인구가 많아서 병원이 몰려있는 이곳에는 큰 체인약국도 몇 개가 모여 있다. 이전에는 약사가 직접 개설했던 개인약국들이었다. 며칠 전 갑자기 설사를 해서 약국을 찾았지만 집 근처에 있던 약국은 얼마 전 없어졌는데 ‘여기에 약국들이 전부 모여 있었구나’ 싶었다.

법인약국이 허용된 후에는 대기업 체인으로 약국 시장이 재편되었다. 물론 하루하루를 보면 느낄 수 없지만 5년 전을 떠올려보면 그렇다. 크고 작은 정책적 변화들이 이러한 변화를 부추겼다. 처음에는 큰 병원들 앞부터 큰 체인약국들이 들어서더니 역세권이나 유동인구가 많은 곳은 이제 개인약국은 찾아보기 힘들어 졌다. 법인약국이 허용되고 3년 정도는 동네에 있는 약국도 경쟁 때문인지 늦게까지 영업 하거나 좋은 서비스를 벤치마킹 하는 등 더 좋아지고, 번화가에도 큰 약국이 있고 동네에도 약국이 또 있으니 편리하다 싶었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모든 골목까지 기업형 체인약국이 잠식해 버린 것은 빵집, 슈퍼처럼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약국의 형태가 변하면서 약사를 만나기도 힘들어졌다. 예전에는 문 열고 약국에 가면 늘 약사를 만날 수 있었다. 꼭 뭔가를 사지 않아도 건강과 약에 대해서 묻기도 하고, 친해지면 수다도 떨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제는 그런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드럭스토어에서 약국은 늘 제일 구석에 있기 마련이고 듣기론 인건비 때문인지 약사들은 최소의 역할만 담당한다고 한다. 덕분에 예전처럼 약사를 쉽게 만나고 오래 대화를 나누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영상해설
최진혜 약사 (늘픔약사회)
깔끔하고 커진 약국, 그만큼 열린 내 주머니

민영화씨는 병원 처방전을 들고 드럭스토어로 들어갔다. 국내 최대의 체인인 S체인약국은 광고도 많이 하고 규모도 커서 비교적 신뢰가 간다. 새로 생긴 체인약국들은 매장 규모도 크고 깔끔하며, 직원들도 친절하다. 그리고 약 뿐만 아니라 손톱깎이부터 고가의 화장품과 일반의약품까지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민영화씨는 매장 한쪽 구석에 있는 처방약 코너에 있는 직원에게 처방전을 냈다. 기다리는 동안 이곳저곳을 둘러보다보니 시선을 끄는 제품들이 많다. 부쩍 약 광고도 늘었는데 광고하는 약들이 눈에 잘 띄는 곳에 진열되어 특히 많이 팔리고 있었다. 요즘 광고하는 유기농 종합비타민은 S체인약국에서만 팔고 있기도 하다. 본인에게 맞는 제품을 상담하고 싶어서 약사를 찾았지만 약사는 조제실 안쪽에 있어 판매 직원에게 문의할 수밖에 없었다.

직원에게 설명을 듣고 유명한 종합비타민을 집어들었다. 그 밖에 종합감기약, 소화제와 화장솜, 매니큐어, 물티슈 같은 제품도 함께 구매했다. 기업형 체인약국이 되면 약값이 싸질 거라는 선전도 있었고, 대형마트처럼 괜히 가격이 싸다는 인식도 있지만 사실 묶음판매도 많고 많이 사게 되는 경향이 있어 이전과 큰 차이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얼마 전 신문에서 기업형 체인약국이 처음 들어설 때는 경쟁으로 인해 약값이 떨어지는 듯하다가 세 개의 체인으로 독점이 만들어지면서 다시 오르는 추세라고 보도되기도 했다.

영상해설
최진혜 약사 (늘픔약사회)
보험과 병원을 가진 재벌, 약국을 없애고 약가게만 남긴다

약이 나왔다. 나는 현재 같은 계열인 S보험에 가입되어 있어 따로 마련된 대기공간에서 오래 기다리지 않고 약을 받을 수 있었다. S협력병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약사가 약을 설명해 주는데 전부 외국 제약회사의 비싼 약들이다. S보험에서 이야기했던 ‘질 좋은 약’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어차피 S계열에서 운영하는 S 의약품 도매상에서 만든 체인약국이므로 약이 비쌀수록 마진도 높아 오히려 이득일 것이고, 나 역시 질 좋은 약이라고 하니 좋은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약사 친구의 말로는 이런 식으로 약값이 높아지면 건강보험 공단의 재정이 점점 악화되는 바람에 건강보험으로 보장되는 질환이 앞으로는 더 줄어들 수도 있다고 하니 참 어렵다. 실제로 정부에서는 이제 감기 같은 경증 질환보다 암 같은 중증 질환을 더 보장하겠다고 감기를 보험에서 뺄 수도 있다고 하니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약사가 약 설명을 자세히 해준다. 종이로 된 설명서도 따로 챙겨주기도 한다.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매뉴얼화된 느낌은 있다. 그래서 질문을 할 타이밍을 찾기도 조금은 어렵다. 그래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요즘 들어 고혈압, 당뇨병이 걱정되어 약사에게 만성질환에 대해 문의했다. S체인에 서만 나오는 광고 중인 만성질환 예방 영양제를 권하길래 상담을 받고 싶다고 했다.

약사는 처방받은 약과 관련된 상담은 아니었던지라 추가 상담료를 지불하고 매장 내에 함께 있는 건강관리센터 쪽으로 가서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알맞은 민간보험 안내도 받아보라고 권한다. 약국에서 더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고, 옆에 있는 건강 관리 센터에서 전문가에게 따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그리 큰 비용은 아니었지만 이전에는 모두 약사에게 받고 있던 서비스라 격세지감을 느끼며 민영화씨는 약국, 아니 드럭스토어의 문을 나섰다.

영상해설
최진혜 약사 (늘픔약사회)

법인약국. 말부터 어렵지만 그냥 쉽게 생각하면 ‘대기업이 약국도 한다’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현재는 약사 1인이 약국 1개만 개설하고 운영할 수 있다. 국민 건강을 다루는 일이라 그렇다. 그래서 보건소로부터 관리도 받고 있고, 대한약사회 및 각 지역 약사회를 통해 자율적 관리와 사회적 역할 수행도 이루어지고 있다.

약국이 폐의약품 수거를 도맡아 하거나, 약사들이 의약품 안전사용 강사로 지역에서 활동하는 일, 그리고 부작용보고를 철저히 하고자 부작용보고 우수약사를 뽑는 등의 활동이 그러한 일환이다. 이런 활동들은 당연히 더 확대되어야 하겠다. 이러한 약국을 ‘영리법인’도 개설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약국을 대기업이 ‘투자’하고 뽑아내는 곳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약국 영리법인화가 국민들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지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것 역시 의료민영화의 큰 그림 중의 일부라고 약사들은 확신하고 있다. 의료민영화는 약사로서의 자부심과 책임감, 생존권 때문에 약사들에게도 부정적이다. 대기업에게 의사, 약사 같은 전문가들은 ‘이윤의 도구’가 되지 못한다면 ‘걸림돌’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 약사들을 쓰러뜨리고 나면 그야말로 건강을 담보로 떼돈을 버는 고속도로가 뚫리게 된다. 그래서 의료민영화 추진 세력들은 끊임없이 전문가들의 이기주의, 결점을 부각시키고 싶어 한다. 곧 있을 의협의 파업을 두고 언론이 어떤 악의적인 말을 쏟아낼지, 법인약국을 반대하는 약사들을 타겟으로 또 어떤 약국의 결점들을 부각시킬지 예상된다. 하지만 ‘과연 원격진료와 법인약국 허용이 국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해 국민들은 알 권리가 있다. 이것을 알릴 의무 또한 약사에게 있다고 생각하며 법인약국 허용 이후를 예측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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