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랙티브 인터뷰 | 7·30재보선 평택을 진보단일후보 김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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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랙티브 인터뷰
7·30재보선 평택을 진보단일후보 김득중

정치가 외면한 쌍용차 문제,
정치 뛰어든 쌍용차 해고노동자

기사·영상 홍민철 기자 | 사진 김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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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국회의원 후보 김득중

“지난 총선에서 예비후보들을 포함해 약 400여명에게 당선이후 쌍차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결의서를 받았다. 하지만 끝나고 나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새누리당도 쌍차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지켜진 것은 없었다.”

5년이라는 세월동안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은 ‘정치’에 기대를 걸었다. 선거 때마다 쌍용차 문제 해결은 화두가 됐지만 ‘거리’에 있는 노동자들을 일터로 돌려놓지 못했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김득중 지부장이 ‘정치’에 나선 가장 큰 이유다. “정치는 우리를 외면했다. 살기 위해서, 살리기 위해서 우리가 나서야 한다.” 오죽했으면 ‘살기 위해서’라는 말을 했을까. 김 지부장의 눈빛은 처절했다. 이제부터 그의 이름 뒤에는 ‘노조위원장’이 아니라 ‘국회의원 후보’가 따라붙는다.

선거를 거칠 때마다 ‘여당’이 승리하는 평택지역의 선거 결과는 김 후보를 직접 선거에 나서게 한 또 다른 이유다. 김 후보와 쌍용차노조는 물론 그들과 함께 싸웠던 이들은 지난 6.4지방선거전부터 ‘선거대응’을 고민해 왔다. 직접 선거에 나서 정치에 개입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

“세월호 참사를 통해 여당이 심판을 받아야 하는데 오히려 야당이 심판 받는 웃지 못 할 상황이다. 쌍용자동차 사태로 노동자들이 자살을 해도, 세월호 참사로 사람이 죽어도 외면하는 것이 지금의 정치다.”

그가 나서자, 정확히는 쌍용차 노동자가 나서자 진보정당은 하나로 힘을 모아 지원키로 했다. 그는 ‘진보단일 노동자후보’가 됐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 이용길 노동당 대표, 하승수 녹생당 공동운영위원장이 그의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민주노총과 농민회, 시민사회단체도 모였다. 그는 진보전략후보다. 그는 “쌍용자동차 사태 해결을 위해 함께 지난 5년 동안 함께 싸웠던 진보정당과 단체들이 다시 뭉쳤다”고 말했다. 목소리에 힘이 담겼다.

평택은 도농복합지역이다. 대공장을 비롯해 공단에 공장이 많은 ‘노동자 밀집지역’이다. 넓은 평야를 바탕으로 한 전통적 농촌지역이기도 하다. 아파트가 많아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한편 오랫동안 이 지역에 발붙여 온 노인들도 많다. 선거하기 참 쉽지 않은 지역이다.

김 후보는 청북면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결혼하기 전까지 이곳에 살았다. 도농복합지역이 형성된 ‘이력’이 그의 삶에 들어있다. 그는 ‘노동자’이기 전에 평택의 발전과정을 체험한 장본인이다. 그의 고향에는 평택농민회가 자리 잡고 있다. 이미 그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힌 상태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도 선대위에 결합했고 평택농민회 전 회장이 공동선본부장을 맡고 있다. 어찌보면 진보진영에서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후보이기도 한 셈이다.

선거에 나선 이후 그는 지역의 현안을 한꺼번에 접하고 있다. 지금껏 ‘연대’의 대상이었던 이들의 문제는 이제 그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됐다. 정치가 외면하고 있는 문제는 비단 ‘쌍용차’만이 아니었다. “이마트가 평택에 생기는 것 때문에 시장에 다녀왔다. 상인들은 정치인들이 뭘 막겠다고 하는데 못 막았다. 정치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더라. 시민들은 정치에 대한 실망으로 무관심이 커진다. 정치가 시민에게 파고들지 못하고 되레 외면되고 있구나. 직접 느꼈다.”

정치에 ‘기대’를 걸었던 노동자가 기대를 접고 직접 나서기까지 5년. 그는 표를 구걸하지 않겠다고 했다. 자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진솔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시민들을 만나고 그 사연들을 해결해 갈 정책을 만들어 가는 것. 그가 말하는 것처럼 ‘원론적인’ 정치를 그는 시작했다. 유인물이 아니라 명함을 돌리는 어색함이 점차 익숙함으로 바뀌고 있다는 그는 “당당하고 부드럽고 유연하게” 유권자들을 만나기 위해 나섰다.

김득중 후보와의 인터뷰는 지난 1일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 앞에서 진행됐다. 쌍용자동차 정문 앞 분향소에는 여전히 먼저 떠난 25명의 영정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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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약속도,
총선후보 400명 서약도
무용지물 이었다
죽음을 끝내고 살기 위해,
살리기 위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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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PART-1

출마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지난 총선에서 예비후보들을 포함해 약 400여명에게 당선이후 쌍차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결의서를 받았다. 하지만 끝나고 나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새누리당도 쌍차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지켜진 것은 없었다.

6.4지방선거 이전에 선거에 고민이 있었다. 730재선거만을 두고 고민 한 게 아니라. 서울에 올라가서 함께 투쟁했던 단위. 용산 밀양 강정 같이 2년 가까이 공동투쟁을 했는데 각각 현장에서 마음과 뜻을 모아서 저항을 했다. 모두 장기간 투쟁 했다. 하지만 그 긴 기간 동안 정치는 우리를 외면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직접 참여해보자라는 논의가 있었다.

그러면서 6.4지방선거 결과가 사실 좀 더 우리 이야기를 진전시키는 원인이 됐었다. 평택 시장에 새누리당이 당선 됐다. 이쪽은 거의 새누리당이 됐다. 완전히 바뀌었다. 보수화되고 있고 비참한 결과가 좀 있다. 이 결과를 보고 고민하게 된 것이다.

또 하나는 세월호 참사 이후 특별법을 제정하자는 건데 진전이 없지 않나. 그럼 이 죽음의 문제가 저희(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죽음)와 연계 되면서 이제 죽음을 끝내고 살기 위해서, 살리기 위해서 우리가 나서야 한다. 우리가 주체가 나서야 한다고 결심한 것이다.

감옥에서
가장 보고팠던 친구를
나와서
영정으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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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PART-2

쌍용자동차 사태, 아픔이 많을텐데

옥쇄 파업이 끝나고 1년간 구치소에 있다가 나왔다. 2009년 파업이 끝나고 구치소에서 2010년 8월에 나왔다. 죽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두명의 친구가 기억에 남는다. 소주 한잔 해야 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다. 나와서 처음 만난 친구가 영정으로 만났다. 한 번 도 못보고 영정 사진으로 봤다. 소주도 먹고 많이 울었다. 정말 이야기 하고 싶었다.

이 친구는 장애가 있었다. 의족을 꼈던 친군데 그러면서도 안나갔다. 의족끼고 열심히 했던 친구인데 의족과 맨살이 다으면서 진물이 났다. 제대로 치료를 해야 할 상황이었는데 그래서 설득설득해서 나가라고 했다. 나중에 출소해서 알았는데 나가면서 자존심 여러 가지 고민 속에서 희망퇴직을 쓰고 나갔다. 나름대로 공인중개사 자격증까지 따면서 열심히 살아볼려고 했던 사람인데 목을 매서 자결했다. 그런 아픔들. 무급휴직자 이무창 같은 경우 아내 투신자살 먼저 있었고. 이무창 한두번 시내에서 만났는데 먹고 살기 바빠서 나는 활동을 준비하고 있었고...사실은 생각만 나면 분노가 치솟는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가장 잊지 못할 친구가 이윤영이란 친구다. 마음이 잘 맞고 성격도 비슷했다. 출소 이후에 살아보려고 이런 저런 노력을 했던 친구다. 면접도 많이 봤다. 하지만 그때 마다 일이 잘 안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심리적으로 악화되더니 결국 목숨을 끊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고아아닌 고아였다. 이복형님이 계셨는데 고등학교때부터 관계가 끊겼다고 하더라. 그것 때문에 더 가슴을 쳤다. 좀 더 마음을 보탰으면 좋았을뻔 했다고 후회했다. 결국 이친구를 누구도 추모해줄 수 없으니까. 이 친구를 대한문에서 추모하자 49제는 해줘야 한다. 이런 마음으로 대한문 분향소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친구가 사실 우리한테 선물을 주고 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를 생각하면 어떤마음이 드나

환장한다. 화가난다. 화가 나는게 아니라 분노가 치밀고 정말로 막 뭔가 하고 싶어 뭔가 하고 싶은 분노들이 마음에서 솟을 것 같고 그건 나 뿐만이 아니다. 쌍차 노동자들 투쟁하는 동지들은 대부분 그럴 것이다.

얼마전 임태희가 탈락됐다. 저는 정말 승부를 봐야 한다. 잘됐다. 이 작자가 반성 분수도 모르고 평택에 내려와? 해볼만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명박의 노동정책 그대로 쌍차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3월 경기도청에 와서 ‘노동조합이 양보해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서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먹튀 기술유출에 언론이 집중했지만 그 순간부터 바뀌게 됐다. 이명박 정권 탄압 출발이 쌍차였다. 일방적인 것이다. 2646명 희망퇴직으로 떠났다. 그럼에도 끝까지 숫자놀음을 하는 것은 다른 의미가 있다. 당시 관리인도 자기 권한 밖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최종적으로 8월6일부터 경찰 개입. 물리적으로 충돌시키고 경찰이 행했던 폭력은 살인에 가까웠다. 경찰 특공대 폭행 이런거 보면 그렇다. 복합적으로 보면 정부의 개입은 너무나 깊었다.

2009년 쌍차 파업 당시 구호
'함께살자'를 들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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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PART-3

선거 슬로건이 ‘함께 살자’다 어떤 의미인가

쌍용자동차 사태로 노동자들이 자살을 해도, 세월호 참사로 사람이 죽어도 외면하는 것이 지금의 정치다. 심판은 여당이 받아야 하는데 야당이 심판을 받는 웃지 못 할 상황이다. 세월호 정국임에도 불구하고 여권이 승리했다는 것은 야권이 제대로 국민의 뜻을 받아 안고 야당으로서 국민의 의사를 받아 안지 못한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본다. 아미트가 평택에 생기는 것 때문에 시장에 갔는데 지역재래 시장인데 상인들은 ‘정치인들이 뭘 막겠다고하는데 정치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다’고 하더라. 길거리 다니면서도 시민들은 정치에 대한 실망으로 인한 무관심이 크다고 느꼈다. 정치가 시민으로 파고들지 못하고 외면되고 있구나 느꼈다. 투표율이 50%를 넘지 못하고 있다. 정치가 여전히 지리멸렬한 모습으로 점점 확인되어가는 것 같다.

‘함께 살자’는 2009년 쌍차 옥쇄 파업 당시 가장 외친 구호다. 해고는 살인이고 함께 살자. 너무나 사회가 개별화 되고 이기주의화 되고 이런 속에서 여전히 고통 받는 사람들의 문제로 야기되고 비춰지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함께 모여서 더불어 살자 이런 것이다.

현안이야기들이 많다. 하지만 그게 시민들 자신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문제는 쌍용차만의 문제이고 밀양 송전탑의 문제는 주민들만의 문제이고, 세월호 참사는 유가족들만의 문제이고...그런 문제들은 결국에 언젠가는 내 문제가 될 수 있다. 아버지는 대공장 정규직이라도 아들은 편의점 알바나 비정규직으로 생활하는 가족이 많지 않나.

지금 어찌 보면 선거 때 여러 가지 장밋빛 개발 정책을 야기하고 있는 정치권에 ‘4년에 한번 표를 행사는 정도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이래선 안 된다. 이런 장밋빛 공약이 나를 약속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시민들 스스로가 주체로 참여 하느냐가 중요한 것 아니냐.

‘우리가 함께 더불어 가는 사회 행복할 수 있는 인간 중심 평택으로 나가는 첫걸음이다’ 그렇게 주문하고 요구할 생각이다. ‘나한테 표를 다오’ 이런 게 아니라. 시민이 노동자 서민이 당당하게 나서는 것. 이런 것이 사회가 바뀌는 첫걸음이지 않겠나.

지금 평택은
2000년 민주노동당 만들 때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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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PART-4

진보단일후보를 내세우고 있다

그렇게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새정치민주연합만 빠졌다. 통합진보당, 정의당, 녹색당, 노동당 진보 4당이 당대표나 원내대표가 중앙선대위원회 위원장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4개 정당의 위원장들이 선대 본부장으로 참여하고 있다. 진보정당의 후보다. 여기에 시민단체 노동단체 포괄해서 지역의 모든 단체들이 선대본에 같이 하고 있다.

쌍용차 투쟁과 함께 해왔던 지난 5년의 마음이 이번에 선대본에 모였다. 지역으로 보면 2000년도 초반 민주노동당 막 만들어졌던 당시 그런 분위기다. 서로 약간의 갈등 반목 이해관계 이견들이 있었던 지난 시간들을 이번 선거 투쟁을 통해서 마음 모으는 것이라 상당히 의미가 크다.

하지만 솔직히 어깨가 무겁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과 나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을 텐데. 내가 채워야할 것, 갖춰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그렇게 채워주겠다는 사람이 많다. 지역의 현안 이야기 내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채워주려는 사람들 함께 풀어가려는 모습이 다가오기 때문에 굉장히 힘이 되는데 어깨의 중압감 중력은 상당히 크다.

평택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평택 도시에서 살고 있다
평택의 역사, 내 삶에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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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PART-5

평택 을은 어떤 지역인가

평택 을은 사실은 도농복합 도시로 보면 된다. 평택 공단들이 있는데 공단이 있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있다. 시내를 중심으로 상권이 있고. 평택, 안중 쪽은 포승공단 기아자동차, 만도기계, 한라, 이런 공장 중심으로 노동자 밀집지역이고 서부 5개면과 시내권을 벗어난 지역은 농사를 짓고 있다. 도농 복합 도시로 되어 있다.

노동자들을 위한 선거 계획은?

금속노조 민주노총에서는 저를 전략후보로 확정지었다. 그 확정에 따라서 노조는 최대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로 이야기 되고 있고 노동의 의제를 같이 이야기해 나갈 것이다. 대공장, 중소공장 정·비정규직 문제를 떠나 고용불안은 모두가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하나하나 확인하고 알리고 이것을 힘으로 모아내는 선거로 만들겠다.

노동자들이 정치를 외면한 측면이 있다. 노동자들의 정치 참여를 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정치세력화의 문제를 ‘나하고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다시 힌 번 평택 노동자들만이라도 노동조합. 정치투쟁의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농민들의 표심을 잡을 계획은?

고향이 시골이다. 시내에서 한참 벗어난 청북면 시골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학교, 군생활 잠시 떠나있었지만 결혼하기 전까지는 시골에서 생활을 했다. 평택 농민회가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농민회 쪽에서는 이미 지지 의사를 밝혔다. 전국 농민회 의장이 선대위원장으로 위촉됐다. 평택 농민회는 전 회장님이 공동 선대 본부장을 맞고 있다. 노동자와 서민 문제를 하께 재보궐에서 힘을 모으자고 함께 하고 있다.

유인물 나눠주던 손으로
명함을 나눠주고 있다
표를 구걸하는 정치가 아니라
듣고 말하는 정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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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PART-6

선거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사실 후보로 뛴다는 게 아직 어색하다. 지금까지 만나왔던 사람은 사측과 정부. 경찰. 조합원들이었다. 악수를 하고 명함을 나눠주고...모든 게 어색하다. 며칠 지나니까 조금씩 몸에 배이는 것 같다. 발대식과 개소식이 내일(7일) 인데 이 기점을 통해서 좀 더 당당하게 시민들을 만날 생각이다.

표를 구걸하는 정치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시민들과 이야기 해나갈 생각이다. 돌아다녀 보니 곳곳의 아픔과 사연을 가진 시민이 많다. 많은 분들이 이야기를 해주더라. 조금씩 공감대를 가지려고 한다. 바라는 것들을 조금씩 여쭤보고 함께 토론할 수 있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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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후보 김득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