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훈 최재덕(영상) 양지웅(사진) 기자
“정부는 협상도 하기 전에 쌀 시장 전면 개방을 선언했다. 바보 짓이다. 일반 개인들도 회사와 협상하면서 유리하게 이끌어가는데, 하물며 국가의 쌀 문제, 식량주권 문제를 두고, 수많은 카드를 버리고 관세화 선언을 했다. 과연 국민을 대변하는 정부인지, 다른 나라, WTO를 대변하고 있는 정부인지 의심스럽다.”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의 일성이다. 서울 용산구 전농 사무실에서 만난 김 의장은 최근 쌀 관세화 유예 불가 입장을 밝힌 정부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정부는 올해 12월 31일로 종료되는 쌀 관세화 유예 기간을 추가로 연장하는 협상을 진행해달라는 농민단체들의 지속적인 요구에도 불구하고, 관세화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으로 오는 9월까지 WTO에 통보할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그는 쌀 관세화와 관련해 ‘현상유지’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입장이다.
전농은 그동안 농민단체와 국회가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기구를 구성해 쌀 관세화 유예기간 연장에 대한 논의를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반면 정부는 ‘불가하다’는 입장으로 농민단체 요구를 묵살해오다가, 관세화 방침을 정한 이후, 내달 중 관세화를 전제로 한 협의기구를 구성해, 농민단체를 참여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정부는 각종 공청회 등을 통해 전농이 요구한 합의기구 구성에 반대해왔고, 관세화를 선언한 후 그것을 전제로 한 협의기구 구성에는 전농이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 의장의 고심은 매우 커 보였다. 그의 말대로 20년간 단계적으로 추진되어온 쌀 개방 정책은 정부의 관세화 방침으로 전면개방의 위기에 놓인 상황이다. 정부의 일방적인 관세화 선언에 맞서 그는 “전국민적 힘을 모아서 대응해나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 정부가 발표한 마당에 WTO에 공식 통보해버리면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될 것인데?
= 우려가 된다. 모든 협상은 협상의 결과물로 여러가지 결과가 나오는데, 지금 정부의 입장은 협상도 하기 전에 쌀 시장 전면개방을 선언해버린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바보 짓을 한 것이다. 일반 개인들도 어떤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마지막 카드 내놓으면서 꾸준히 자기한테 유리한 걸 이끌어가는 것인데, 하물며 식량주권이 걸린 쌀의 문제를 갖다가 바보스럽게 여러 카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버리고 관세화 선언을 한 상황이기 때문에 과연 국민의 정부인지, 다른 나라 대변하는 정부인지 의심스럽기 까지 한 한심한 선언이라 볼 수 있다.
- 정부 발표가 있기까지 그 과정상 가장 불만인 부분이 뭔가?
= 쌀 문제는 단순히 올해 생긴 문제가 아니다. 이미 2004년 두번째 협상을 하면서 예견돼왔던 일들이다. 그러면 국가의 공무원들은 거기에 충분히 대비해왔어야 하는 것이고, 농민과 국민과 함께 식량주권에 관한 의견을 쭉 모아오는 과정이 필요했을 텐데, 그런 것들을 전혀 하지 않은 채 느닷없이 시간에 쫓기는 양 선언을 했다.
우리의 준비된 카드도 없이 단순히 관세화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여러 전문가들이 여러 협상이 가능하다고 제기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그런 것 하나 없이 일방적 관세화 선언을 한 것이다. 말도 안 되는 걸 해놓고 따라오라는 건 정부가 할 일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단순히 한 상품의 문제가 아니다. 외교주권, 영토주권, 국방주권 이런 것들이 있지 않나. 우리는 (상응하는) 식량주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쌀 시장을 관세화 시켜서 전면개방하는 것 자체에 대해 농민들은 언제든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관세로 벽을 막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20년 넘게 시장개방 정책을 해온 것을 뻔히 봐왔기 때문에 결과는 뻔하고 언젠간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런 순간 우리 표현 방식에 따르면 우리의 쌀독이 미국에, 중국에 가 있고, 곡물메이저들한테 넘어갔을 때에는 우리가 구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야기해온 것이고, 정부는 그런 큰 뜻에 대해서는 관세화로 막을 수 있다고 계속 이야기해왔던 것이다.
- 현상유지가 최선인가?
= 그렇다. 우리 농민들은 현상유지를 최상의 카드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 저 사람들은 그렇게 하려면 두배, 세배 수입량을 늘려줘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국민들과 농민들에게 거짓말과 협박을 하고 있다.
그건 협상 과정에서 나올 말이지, 지레 겁먹고 협박하면서 선택하라고 할 말이 아니다. 정부의 자세는 그게 아닌 것이다. 이 경우 저 경우 놓고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두배 세배 늘려주면 국익에 손해가 온다는 식으로 말하면 당연히 국민들은 개방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의무수입량 늘리지 않고도 할 수 있는데, 정부 관계자들 생각이 상당히 소극적이고 방어적이다.
협상에선 공격적으로 여러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다. 우리가 무슨 WTO 장학생 된다고 해서 거기서 상 주는 것 아니지 않은가. 모범생 같은 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철저히 국익 차원에서 식량을 지키고 안전한 먹을거리 지키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데, 오로지 정부는 관세화라는 것이다. 그래서 답답한 것이다. 관세화로 모든 걸 막을 수 있다는 데 맹점이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안 본다. 관세화로 막을 수 있다는 건 비바람 몰아치는 폭풍우 속에서 일회용 비닐우산을 쓰고 막을 수 있다는 것과 똑같다.
- 관세화 반대 이외 차선책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관세화가 현실화된다면 쌀 개방 최소화를 위한 장치를 정책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이다. 어떤 것들이 있을까?
= 현재 그 부분은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다.
- 고율관세를 고정시킨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부분인가? 관세율이라는 게 국제통상조약상 한국 정부가 임의로 정하기 어려운 것 아닌가?
= 아니다. 관세는 나라와 나라 간 무역을 할 때 세금 매기는 것 아닌가.
WTO나 FTA 등 각종 자유무역 체제 하에서는 서로 이뤄왔던 관세를 거의 없애자고 하는 것이 추세다. 그런 상황에서 쌀 문제는 예외적으로 해서 관세를 매기고 했지만, 그게 당분간은 예외를 시키자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가 300~500% 매기면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하지만, ‘거짓말 하지 말라’는 것이다. 관세 상정 공식이 있고, 여기에 적용만 하면 된다고 한다. 다만 그것이 일정한 순간 가서는 무너지게 돼 있다.
- 전농은 농민단체와 국회가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기구를 구성해 논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정부는 받지 않았다.
= 우리는 3자 합의기구를 이야기하고 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국민들한테 호도시키고 하는 게 아니라, 협상이 세세하게 진행되는 부분에 대해 농민, 국회와 충분히 논의하면서 가자는 것이 3자 협의체 구성 제안이다.
필리핀이 협상할 때도 농민단체가 정부대표 안에 들어갔다. 최대한 조정하고 합의하면서 이끌어왔던 것이고,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따라오라는 식인데, 그렇게 가선 안 된다.
- 사회적 합의기구 통해 다각도로 방안을 모색한 결과 결국 관세화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결정을 낸 것이라면 받아들였을 것인가?
= 지금 얘기할 단계는 아니지만, 단순히 말로 장관이 이야기하고 어디서 발표하는 형식으로는 안된다. 만약에 여러가지 협상한 결과 안 돼서 관세화 500%로 개방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기간을 보장해야 하는 것이다. 선언만 해놓고 나중에 안된다고 말면 그만이니깐.
우리는 그것을 안다. 김영삼 대통령이 직을 걸고 쌀 지키겠다고 했지만 안됐다는 것 알고 있다. 공수표로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만약 천번 만번 강구해서 (관세화 말고 방법이) 없다고 했을 때 법으로 관세율을 정확하게 만들고, 대통령이 그것을 책임지고 대국민선언을 해야 한다. 그게 다 합의 과정 아닌가. 그런 것도 없이 일방적으로 선언한다는 듯이 가게 되면, 십년, 이십년 지난 다음에 실질적으로 어려운 상황 왔을 때 지금 이야기한 사람들 그때 가면 아무도 없게 된다. 누가 책임질 건가? 피해를 보는 건 농민이고 국민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을 대통령이 정확하게 국민들한테 선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했을 때는 이야기될 수 있는 부분이다.
- WTO 통보 전까지 농민단체에서는 어떤 걸 할 수 있나?
= 갑갑하긴 하지만, 9월부터 12월까지 협상 기간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런 문제를 계속적으로 국민들한테 계속 알려나가는 수밖에 없다. 식량주권과 안전한 먹을거리를 관세화로 지켜낼 수 없다는 주장을 꾸준히 투쟁을 통해 알려나가야 한다고 본다.
- 대정부 투쟁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것인가?
= 9월부터 협상에 들어갈 텐데, 농민만 싸웠을 때 이길 가능성이 적다. 식량주권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더 많은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여론을 이용해 알려나가면서 정부를 압박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9월달에 전국 각 시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농민들이 들불처럼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11월 가서는 대규모 상경집회를 할 것이다.
지금 현재도 60~70% 국민들이 쌀 개방을 해선 안된다는 여론이 많다는 것에 대단히 힘을 받고 있다. 우리가 꾸준히 해왔을 때 정부에서 얼마든지 이런 것들을 고쳐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정치권이 지금 뭘 해야 하나?
= 일부 의원들의 입장이 중요한 건 아니다. 새정치연합이 쌀 관세화로 전면 개방되는 것을 반대하는 당론을 명확하게 세울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정부와 국회가 지혜를 모아나가는 과정이 필요한데 새정치연합은 당론을 갖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새정연이 협상 포기한 정부를 채찍질하고, ‘쌀 전면개방 문제는 사회적 합의 없이 가서는 안 된다’는 당론을 세웠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