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랙티브 인터뷰 | 파울 슈나이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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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랙티브 인터뷰
파울 슈나이스 목사

“세월호 사건은 제2의 광주, 이런 일에 양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김동현 최재덕 기자 정은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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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광주항쟁을 세계에 알린 파울 슈나이스 목사가 한국에 온 이유

한국현대사에서 사무치게 남아있는 기억. 죄 없는 사람들이 이유 없이 죽어나갔던 기억.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사건,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을 세계에 알렸던 파울 슈나이스 목사가 한국에 왔다. 세월호 사건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서다.

4월 사건이 터졌을 때 전세계 언론이 그랬던 것처럼 독일에서도 사건 자체는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사건은 끝나지 않았건만 다른 나라는 관심을 잃었다. 진상을 밝혀야 할 한국 사회가 여전히 진상을 밝히는 ‘방식’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다른 나라 사람은 많지 않다.

슈나이스 목사는 한국에 온 뒤로 서울에 있는 동안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청와대까지 걸어다녔다. 유가족들을 만나고 단식 농성에 참여하는 이들을 만났다. 그는 이번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지난 해 한국을 방문 당시 슈나이스 목사는 진보당 해산 청구 심판 사건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1970년대부터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곁에서 지켜봐 온 그는 한국의 시계가 30년 뒤로 돌아갔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번 방문길에 그는 ‘내란음모’ 무죄 판결이 났지만 아직 감옥에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을 면회했다. 이 사건을 보며 그는 또 무슨 생각을 했을까.

81세 노령이지만 정력적으로 한국을 걱정하고 있는 슈나이스 목사를 <민중의소리> 사무실에서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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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PART-1

“세월호는 제2의 광주...오히려 광주보다 더 나쁜 일이다.”

슈나이스 목사는 세월호 사건을 보며 30여년 전 광주가 떠올랐다. 군대가 자기 나라 국민들을 죽이는 처참한 모습에 놀랐던 그는 국민을 살려야 할 정부가 죽어가는 국민들, 아이들을 방치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저려왔다. “공기가 없어져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는 이번 사건을 제2의 광주라고 부른다.

“그때(광주항쟁 당시)는 가해자가 군대였고 이번에는 정부입니다. 그래서 더 끔찍합니다.”

슈나이스 목사는 세월호 사건이 터졌던 4월 독일에 있었다. 워낙 큰 사건이라 세계적 관심을 받았다. 당연히 독일에서도 세월호 사건을 주요 언론에서 접할 수 있었다. 5개월이 지난 지금 한국에서 이 문제가 여전히 사회적 쟁점이라는 것을 아는 다른 나라 사람은 별로 없다. 슈나이스 목사가 한국을 찾은 이유는 ‘알아보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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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PART-2

“세월호 같은 일에 ‘양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슈나이스 목사는 한국정부에 대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독일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는데, 정부가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전했다.

며칠째 청와대 앞에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중인 유가족들을 그는 매일같이 찾아갔다. 그는 “세월호 사건은 희생자 가족들을 어떻게 다루는가의 문제”라면서 “돈 쓰기 싫어하는 정부와 위안을 받길 원하고 연대감을 표해주기를 원하는 가족들간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 사건을 ‘돈’을 중심으로 바라보고, 가족들은 ‘위안’과 ‘진실’을 중심으로 본다는 말이다.

인터뷰 도중 슈나이스 목사는 꼭 쥐고 있던 신문을 꺼내들었다. ‘양보없는 정치’라는 헤드라인이 적혀있었다. 슈나이스 목사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양보가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원하는 것을 채워주는 문제이지 몇몇 정치인이 받아들일 만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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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PART-3

“유가족들이 하나로 뭉쳐있어서 다행이다.”

슈나이스 목사는 기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마음이 아프다. 그럼에도 그는 “원하는 삶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항상 싸워야 한다”고 독려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도움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광화문을 채우고 있는 많은 이들이 있어 다행이라는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하나로 뭉쳐있어 다행입니다. 한 마음 한 뜻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분들이 계속 함께 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계속 함께 하며 도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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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PART-4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정의롭게 다뤄졌으면”

인터뷰를 위해 이동하면서 슈나이스 목사는 김대중, 문익환 등의 이름을 거명했다. 자신의 젊은 시절을 함께 보냈던 이들이 이제는 세상이 별로 없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깊이 관여했고, 그만큼 한국의 공안탄압의 악랄함에 대해서도 깊이 알고 있다. 민주화 된 만큼 그런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건만 그가 볼 때 한국은 여전히 ‘냉전중’이다. 여태껏 수십년간 한국을 지켜봐 왔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이번 한국 방문 기간 중 슈나이스 목사는 이석기 의원을 면회했다. 기독교 목사로서 본분을 다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이번 사건은 형사사건이 아닌 정치적 사건”이라면서 “정치적 사건에는 뭔가 있기 때문에 유심히 봐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독일 의원들이 민주주의 하에서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같은 경우가 발생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전했다. 게다가 사실규명도 제대로 안 되는 재판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사실규명만 제대로 되었더라도 1심에서 유죄였다가 2심에서 무죄가 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번 사건이 이데올로기적 사고나 결정만 내려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정의와 사실규명을 보고 싶습니다. 이 사건이 정의롭게 마무리 되는 것은 이석기 개인을 위해서도 그의 당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대한민국 국민과 국회를 위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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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PART-5

“진보당 해산청구사건,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사건이다.”

지난해 슈나이스 목사는 한국 국회의사당을 찾았다. 정부가 청구한 ‘정당해산청구’에 반대하며 농성중인 통합진보당 의원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특히 정부는 ‘독일공산당 해산’ 사례를 거론하며 진보당 해산의 정당성을 설파할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독일에서 사회적 활동에 정력적인 저명한 목사가 한국에 방문한 것은 주목받을 만한 일이었다. 슈나이스 목사는 그때도 지금도 “독일의원들에게 이 상황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내란음모 사건에서부터 진보당 해산청구 사건까지를 지켜보면서 70년대부터 꾸준히 벌어졌던, 그가 세계에 알리고 바로잡고자 했던 여러 사건들을 기억해 냈다. 그리고 30~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런 일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답답해 했다.

독일인으로써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민주주의 원리, 최소한 독일의 민주주의 원리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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