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랙티브 인터뷰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제안 용혜인씨 “이번 사고 남의 일이 아니에요”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홍대-명동 일대에서는 250여개의 노란 리본을 묶은 국화의 행렬이 이어졌다. 이날 행진은 전날 한 여성이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정말 우리들은 가만히 있어도 되는걸까요’라는 제안을 보고 모인 시민들이었다. 시민들은 검은 옷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뜻이 담긴 국화 한 송이와 ‘가만히 있으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고 4시간 가량 서울 도심을 행진했다.

이 행진을 처음 제안한 것은 경희대에 재학중인 용혜인(25)씨다. 그는 “저는 안산에서 오랫동안 살았고, 저에게 있어서 이번 사고가 완전히 남의 일이라고도 볼 수 없었다”고 행진을 제안한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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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씨가 처음부터 행동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친구의 동생이 실종되고 친동생의 고교 은사가 죽거나 실종되는 모습 등을 지켜보면서는 뉴스를 피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달 20일 실종자 가족들이 진도에서 청와대를 가겠다며 행진을 하는 것을 보고는 마음을 바꿨다. 그는 “청와대를 가려는 실종자 가족들을 경찰 300여명이 막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더이상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용씨는 청와대 게시판에 행진을 제안하는 글을 올렸다. 주위에서는 “꼭 네가 나서야만 하느냐”고 우려했다. 그러나 하나의 불씨가 광야를 태운다고 했던가. 그는 “대부분은 저를 응원하고 지지해줬다”며 “상점에 계신 분들은 우리가 지나갈 때 음악을 꺼주셨고 명동과 시청을 행진할 땐 함께해주는 분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행진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용씨가 청와대에 올렸던 글은 삭제됐고 신원을 알 수 없는 누군가로부터 미행을 당하기도 했다. 그는 “갑자기 제 앞에 차가 서더니 누군가가 저를 캠코더로 촬영까지 했다”며 “처음 당하는 상황이라 ‘누군데 나를 찍느냐’고 따지지도 못했다”고 했다. 침묵 행진 도중에 경찰이 와서 ‘불법집회’라며 해산을 요구할 때는 덜컥 겁이나기도 했다.

그러나 용씨는 행동을 멈추지 않을 계획이다. 지난 1일에도 자신의 글이 삭제됐던 청와대 게시판을 통해 침묵행진을 또다시 제안했다. “이러한 참사가 재발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며 “정부 고위 공직자분들이 서로 책임을 전가하기만할 뿐 어느 한명 ‘내가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이 없는 상황인데 구체적인 안전시스템을 등을 우리가 마련해야 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올해만 해도 몇 번의 대형참사가 일어났고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며 “침묵 행진을 보는 분들은 한번쯤 우리가 이대로 있어도 되는지 생각을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영상제공 : 미디어오늘 이치열 기자)

어떻게 해서 침묵행진을 제안하게 되었나?

저는 안산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그래서 이번 사고를 완전히 남의 일이라고는 볼 수는 없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처음엔 어딜 가든 세월호 이야기뿐이여서 괴로웠다. TV중계와 뉴스는 일부러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종자 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새벽에 버스를 타려 하자 300여명의 경찰이 이를 막아서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했다. 이에 주변 선후배 네 명에게 ‘우리부터 나서 행동하자’고 제안했고 그날부터 대자보 등을 준비하며 행진을 계획했다.

행진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예상을 했었나?

250여명 정도가 행진에 참여했는데 그렇게 많은 인원이 참여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저는 대략 3~40명 정도가 참여할 것이라고 봤다.

예상과는 달리 중·고등학생, 시민, 직장인, 학부모 등 250명이나 되는 시민 분들이 행진에 참여했다. 저는 이날 ‘아무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는 정부의 사고방식과 이러한 참사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사회 시스템 등에 대한 문제 제기’를 했다.

행진에 참여한 분들에게 ‘우리가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행진에 참여한 다른 분들도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문제가 더 이상은 반복되어선 안 된다’는 발언이 주를 이루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

주변 사람들의 경우 ‘청와대 홈페이지에 개인정보 올려도 되는 것이냐. 꼭 네가 나서야만 하느냐’며 걱정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저를 응원해주고 지지해줬다. 추모 행진을 할 때 시민분들은 추모 행진의 성격상 박수를 쳐 주진 않았다. 그러나 상점에 계신 분들은 우리가 지나갈 땐 음악을 꺼주셨고, 명동과 시청을 지나갈 때에는 행진에 동참하신 분들도 많이 있었다.

더 이상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세월호 사고를 처음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을 했나?

세월호 사고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저는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회의실에서 친구들과 회의 중이었다. 그때만 해도 학생들이 전원 구조됐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인명피해는 없다고 생각해 크게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몇 시간이 지난 후에 전원구조 사실이 오보였다는 사실을 접했다. 처음에는 배 안에 그렇게나 많은 사람이 갇혀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고 그저 하나의 숫자로만 다가왔다. 믿기지가 않았다. 제가 단원고 주변에서 오랜 기간 살아와 제 주변에는 이 사고로 피해를 본 사람도 있고 실제로도 아는 분 중에는 희생자 가족도 있다. 뉴스를 볼 때마다 이러한 참담한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괴로웠다. 특히 자극적인 기사들, 예를 들면 ‘손가락이 부러졌다’는 등의 기사들을 볼 때면 더더욱 괴로웠다.

정부의 구조과정을 보며 들었던 생각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 총 책임자가 ‘내가 책임지겠다. 구조에만 최선을 다해라. 그것에만 신경 써라’고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정부 고위 공직자분들은 서로 책임을 전가하기만 할 뿐 어느 한 명 ‘내가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이 없었고 이러한 정부의 태도에 너무나도 실망했다. 또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루 이틀 구조가 더뎌질수록 화는 더 치밀어 올랐다. 조금 전에도 말했듯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가 이러한 사태를, 문제들을 양성해 냈다고 생각하고 정부는 이에 반드시 책임을 져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실종자 중에 알고 지내던 사람이 있다던데?

나와 엄청나게 친하다고 볼 수 있을 정도의 친구는 아니지만, 페이스북을 통해서 친구의 동생이 실종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다. 또 현재 20살인 제 친동생이 단원고를 졸업했는데, 고등학교 때 계셨던 선생님 한 분이 실종됐다. 자살하신 교감 선생님도 동생이 단원고에 다니던 당시의 교감 선생님이라고 들었다.

청와대가 글을 삭제한 걸 알았을 때 들었던 생각은?

청와대가 내가 쓴 글을 삭제한 것을 알았을 때 너무도 황당했다. 청와대에서는 ‘개인정보가 포함돼 삭제했다’고 하는데 개인정보는 내가 올린 것이고, 또 개인정보가 있다 하더라도 내게 아무런 통보도 없이 삭제한 것이 너무나도 황당했다.

집회 도중 경찰이 와서 ‘해산해라.’했을 때 어떤 심정이었나?

집회 도중에 경찰이 와서 ‘불법이니 해산하라’고 이야기했는데 경찰이 ‘해산하라’고 이야기하는 이런 상황 자체가 익숙치 않았다. 경찰이 그렇게 말하면 보통은 위축되고 주눅이 들기 마련이라 불편한 심정이었다. 우리가 소리를 지른 것도 아니고, 구호를 외친 것도 아니며 차도로 다닌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계속 행진을 했다. 한 경찰은 남대문서에서 근무 하는 형사라고 밝혔다. 몇 분의 경찰들이 와서 ‘해산하라’고 했지만, 추모행진의 경우에는 집회신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별로 문제 될 것 없다고 생각해 행진을 계속했다. 이후에도 경찰들은 주변만 맴돌 뿐 더는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촬영 당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어떤 심정이었나?

깜짝 놀랐다. 갑자기 제 앞에 자동차 한 대가 서더니 안에 있던 사람이 카메라로 저를 찍기 시작했다. 사실 그 자리에서 ‘대체 뭐 하고 있는 거냐’고 당당히 물어봤어야 했는데 당시 당황해 그러질 못했다. 겁도 나는 것이 사실이다. 이 사람들이 불법적으로 저를 촬영하고 간 것인데 인터넷상에 저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고 하는 것이 우려스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차 안에 있던 사람들이 어두운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당시에 주변이 어두워 정확하게 얼굴을 확인하진 못했다. 조수석에 있던 분이 캠코더를 들고 저를 찍었다. 보통 촬영 중에는 빨간불 표시가 켜지는 걸로 알고 있는데 캠코더에 빨간불이 들어와 저를 찍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사고를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물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게 된 데에 대해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 그리고 청해진 해운 측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부의 무능한 모습 또한 지탄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월호는 참사가 발생하기 전에도 계속해서 안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는데 정부는 그런 부분에 대해 전혀 점검하지 않았다.

사고가 일어난 후에도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사고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내가 행정 최고 책임자로서 책임지겠다’가 아니라 ‘이 사고와 관련해 나는 단죄자임을 자처하며 책임자를 처벌하겠다’고만 하고 있다.

저는 정부가 지금이라도 더 적극적으로 구조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은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실종자 가족과 성실하게 대화하려 노력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의 공권력은 경찰을 이용해 실종자 가족들을 막아서고 사복경찰 투입해 감시하는 일들만 하고 있다. 이런 정부는 규탄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왜 이런 사고가 났다고 보는가?

사실 올해만 해도 몇 번의 대형 참사가 일어났고 그러한 것들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제가 보기에는 ‘생명보다 돈을 중요시하는 문화’에서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했다고 본다. 청해진해운이 ‘접대비에는 엄청난 돈을 썼음에도 안전교육에는 고작 몇십만 원밖에 쓰지 않았다’는 보도를 접했었고, 자본만이 중요시되는 우리 사회 풍토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나서 이러한 풍토를 바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 글을 보거나 침묵 행진을 보거나 하는 분들이 한 번쯤은 ‘우리가 이대로 있어도 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사고를 수습하는 데 총력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정부가 사고 수습을 하는 걸 보고 있으면 정부는 어느 정도 선에서 더는 이슈화 시키지만 않으려는 것 같다. 지방선거도 있지만 그럼에도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 문제를 최우선으로 놓고 정부의 역량을 집중시켰으면 좋겠다. 이후에는 이러한 참사가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구체적인 안전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전 매뉴얼들을 정부가 점검하고 새로운 규제들을 마련해 나아가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5월 3일 토요일에도 똑같은 시간과 똑같은 장소에 모여 똑같은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더는 가만히 있지 말자’라는 주제로 행진을 진행할 예정이다. 사실 ‘가만히 있지 말고 무언가를 하자’고 제안했지만 무엇을 할지에 대한 부분은 저도 아직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행진에 모이신 분들과 다양한 의견 교환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고 구체화 시킬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