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랙티브 인터뷰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1심 무죄 받은 유우성 “한국말에 아닙니다 말고 더 강한 말이 있나요…”

“한국말에 아닙니다 말고 더 강하게 규명해 줄 수 있는 말이 있나요?”

얼마나 답답했을까. 1심에서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그의 이름 앞에는 ‘간첩’이 붙어있다. 인터뷰 중간 그는 답답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이 됐다. 개명, 해외여행, 망명, 대북송금 등 언론 보도대로만 하면 저는 못하는 게 없는 슈퍼맨이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피의자, 혹은 ‘간첩 증거조작 사건’의 피해자 사이 어느 중간쯤에 서 있는 유우성(34)씨. 그는 재판 이후에도 우울증 치료제, 수면제 등 약을 먹지 않으면 편하게 잠을 잘 수 없다고 했다. 최근에는 ‘12번 해외여행을 갔다, 연예인들과 사진을 찍었다, 영국 망명 신청을 했다’ 등 자신의 사생활을 간첩 혐의의 정황처럼 보도하는 언론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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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그는 인터뷰 직전까지 작성했다는 A4용지 5장짜리 문서를 하나 건넸다. 자문자답(自問自答) 형식의 이 문서에서는 ‘이름 4개설, 여동생 중국 도피설’ 등 열 두가지 언론 보도 내용에 대해 일일이 반박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서울시 근무할 때 탈북자 관리 파트에서 근무했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저는 서울시 복지정책과 생활보장팀 소속으로 북한이탈주민 관련 업무를 한 것이 아니라 기초생활수급자 관련 보조 업무를 했다. 기초생활수급자에는 장애인, 독거노인, 북한이탈주민이 포함되어 있었다. 저는 개인 신상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고 서술했다.

또 ‘거짓말 탐지기 수사결과 간첩 결과가 나왔다’는 문항에 대해선 “처음부터 동생과 대질수사를 요구했고, 알리바이를 정확히 증명할 수 있는 증거에 대해 진술했지만 제 주장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억울하여 잠도 못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감기와 오한으로 약을 복용한 상태에서 거짓말 탐기 조사를 받았는데 며칠 뒤에야 결과 통보가 왔다. 여러 가지 불투명한 의혹이 있어 1심 재판부가 증거로서 배제했다”고 적혀 있다. 그는 “저에 대한 왜곡 보도가 정말 많아서 괴롭다. 검찰 쪽 입장을 보도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이미 끝난 사건도 다시 의혹이 제기된 것처럼 보도해 괴롭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하희라, 설수진, 안재욱 등 연예인들과 사진을 찍거나 해외여행 간 내역들이 생중계되듯 보도되고 있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한 것 아닌가. 대학 선배들 모인 자리에서 다른 분들 사진 찍을 때 줄 서서 같이 사진 한 장 찍은 것이다. 왜 이렇게 제 삶을 난도질 하나. 제 삶을 난도질 하지 않아도 벼랑 끝에 서 있는 심정이다. 저를 밀어서 벼랑에서 떨어져서 산산조각 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인가.

가십성 보도뿐만 아니라 대북송금 등 혐의와 관련된 정황들도 보도되고 있지 않은가.

과거에 조사를 받고 무혐의 처분 받은 내용들이다. 대북송금 보도와 관련해서도 제가 한 일이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났다.

지인이 부탁해서 통장을 하나 만들어 준 일이 있다. 불법 외환거래에 대해 인지 자체가 없던 때였다. 통장을 만든 것조차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다. 1년 정도 지나서 경찰 조사를 받기는 했다. 경찰에서 통장 이체한 사람들 일일이 다 확인을 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통장으로 송금을 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저와는 아무 관련 없는 일이었다.

속된 말로 환치기해서 30% 이익을 받을 수 있다면 제가 취직도 안하고 그 일만 하지 않았겠는가. 저를 비인간적인 사람으로 몰기 위해 허위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다른 보도들도 마찬가지다. 해외여행 12번 갔다는 보도도 모두 왜곡됐다. 아시아 인권 회의에 참석한 것이나 해외 청년 리더십 아카데미 캠프를 이수한 것들인데 돈이 많아서 여행을 간 것처럼 보도됐다. 기사를 쓴 사람들은 그에 대한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지금 왜곡된 보도와 관련해 변호인단을 꾸린 상황이다.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나설 것이다.

이름을 4개 사용한 것도 쉽게 납득하긴 힘들다.

사실이 아니다. 저는 북한 회령시에서 태어나 24년을 살았다. 제 가족은 4대째 북한에서 재북화교로 살았다. 어릴 때 할아버지가 중국한자식 이름을 ‘유가강’이라고 지어줬는데 초·중학교 다니면서 놀림을 많이 받았다. 크면서 북한에 있는 공식 서류에만 중국식 이름인 ‘유가강’을 쓰고 평상시 친구들과는 ‘유광일’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그리하여 2004년 대한민국에 입국하면서 평상시 사용하던 ‘유광일’이라는 이름으로 신고했던 것이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영국으로 난민신청을 할 때 ‘조광일’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적이 있다. 이미 과거 수사기관 조사에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영어를 배우기 위해 영국에서 난민신청을 했고 영어연수 갔다온 사실을 진술한 바 있다.

2009년 국정원, 검찰, 경찰 조사가 계속돼 고통스러웠다. 그러다 점집에 갔는데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해서 ‘유우성’이라고 고쳤다. 개명하면 운이 좋아진다고 해서 없는 돈 긁어 모아 ‘유우성’이라는 이름을 산 것이다. 그런데 개명한지 2년도 안돼 (국정원에) 붙들려 갔다.

마치 제가 변장 잘해가지고(한숨). 한국에서 한국 사람들과 차이 없이 살려는 마음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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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 신분으로 북한 회령시에서 거주하던 그는 한국에 대한 동경으로 지난 2004년 탈북했다.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었던 그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지난 2006년 5월이다. 어머니 장례식 참석차 중국을 거쳐 북한에 들어갔는데, 역설적이게도 이것이 간첩 혐의의 출발점이 됐다.

2007년부터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았다. 수사기관에도 수차례 불려갔다. 불기소 처분을 받고 끝난 줄 알았던 이 사건은 지난 2012년 10월 그의 손으로 직접 데려온 여동생 가려(27)씨가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돌연 “저와 오빠는 간첩”이라고 진술하면서 다시 불거졌다. 유씨는 이듬해 2월 어머니 장례식 참석 이후 북한에 포섭돼 탈북자 200여명의 명단을 북한에 건넨 혐의로 기소가 됐다.

유씨는 자신을 간첩이라고 말하던 동생을 상대로 자신의 무혐의를 입증해야 했다. "처음엔 동생이 미친줄 알았다"던 그는 공판준비기일에서 자신의 뒤에 앉아 있는 동생을 마주하고서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구치소에서 가져온 사탕을 수인복 주머니에서 꺼내 평소 심장 질환을 앓던 동생에게 건네주기도 했다. "얼마나 무서웠니. 오빠가 다 해결할테니 걱정하지마. 아프면 안돼." 자신을 간첩이라던 동생을 오히려 위로하는 오빠의 모습은 그가 받고 있는 혐의를 떠나 현대사 비극의 한장면이기도 했다.

유씨는 1심에서 그의 알리바이를 증명하는 증거들이 연이어 제출되면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나온 뒤 “국정원이 협박과 회유를 해서 거짓 진술을 했다”고 고백을 했던 여동생의 힘이 컸다. 가려씨는 “국정원에서 오빠가 간첩이라고 인정을 했다. 혐의를 진술해주면 오빠의 형량을 줄여 한국에서 같이 살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고 자신이 거짓 진술을 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유씨는 "동생이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을 때 한번이라도 대질신문을 시켜달라고 요청을 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동생을 한번이라도 만났다면 이런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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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에서 검찰이 제출했던 북한-중국 출입경기록 등 3건의 문서도 위조된 것으로 드러났지만 여전히 유씨는 간첩 혐의 피의자다. 검찰과 국정원의 증거가 위조된 상황에서도 그에게 '간첩'이 아니라는 증거를 대라는 시선들이 여전하다.

“심지어 간첩인 저를 잡기 위해 증거 조작 좀 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는 사람도 있다. 제가 길을 걷다가 지갑을 주웠다고 하자. 그럼 제가 도둑인 것인가? 주인 찾아주고 싶어 지갑을 주울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훔칠 생각조차 없었는데 저보고 해명하라고 하면 더이상 어떤 말을 해야 하는가.”

그는 “제가 평범한 사람이라고 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며 “이미 저는 한번 아니 두 번, 세 번 죽은 사람이다”고 했다. 또한 “2심 재판이 끝나기 전 마지막 인터뷰”라며 “지금 사회복지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데, 빨리 진실이 규명돼 수급자 관련 논문도 쓰고 졸업도 하고 싶다. 지금 바라는 것은 그것 뿐이다”고 덧붙였다.

어찌됐든 검찰 측 증거자료가 위조된 것으로 드러났다. 마음은 좀 편해지지 않았나.

여전히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일 년 넘게 우울증, 수면제 약을 복용하고 있다. 요즘은 사실과 다른 언론보도들 때문에 괴롭다. 언론이 검찰 쪽 입장을 담는 거야 상관할 수 없지만 이미 수사가 끝나서 혐의가 없다고 결론난 사건마저도 새로 나온 의혹처럼 보도를 하고 있어 신경이 쓰인다.

왜 자꾸 한 사람을 매장시키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저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 날 슈퍼맨처럼 모든 것을 다 하는 사람, 대한민국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이 돼 있었다. 1년 동안 수사, 재판을 받으며 억울하게 살아왔다. 저는 한번 아니 두 번, 세 번 죽은 사람이다.

그래도 여전히 간첩이라고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국정원 협력자도 자살 소동 과정에서 검찰측 문서가 조작이라는 정황과 함께 유우성씨가 간첩이라는 내용을 함께 남기지 않았나.

간첩인 저를 잡기 위해 증거 조작 좀 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는 사람도 있더라. 제가 길을 걷다가 지갑을 주웠다고 하자. 그럼 제가 도둑인 것인가? 주인 찾아주고 싶어 지갑을 주울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훔칠 생각조차 없었는데 저보고 해명하라고 하면 더이상 어떤 말을 해야 하는가.

사실을 규명하는 과정은 없다. 증거야 ‘만들어서 붙이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식이다.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사회가 70년대인지, 21세기인지 헷갈린다. 억지 주장이 한 인생을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다.

검찰이 참고인 자격으로 유씨를 소환했을 때 1시간 30여 분만에 나왔다. 검찰의 진상규명에 협조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억울하다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하는 것 아닌가.

변호사들이랑 2백 페이지 분량의 의견서를 써서 검사들에게 전달했다. 그 안에 궁금해 하는 모든 내용이 다 담겼다. 그 어떤 의문점과 의혹에 대하여 진술서 또는 자술서를 제출하는 등 협조하겠다는 의견도 말씀드렸다.

그러나 조서만은 남기지 않을 것이다. 간첩사건 증거조작 진상규명 수사는 검찰의 위조증거 3건에 대한 진상규명이 중요하지, 조서를 남기기 위한 절차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사에 필요한 협조는 의견서와 자술서를 통해 충분히 규명될 수 있는 부분이다. 1년 넘게 억울하게 재판을 받지 않았나. 조서가 재판에서 어떻게 이용될지 모르는 것 아니냐.

검찰은 재소환을 검토하고 있다. 소환에 응하지 않을 경우 보수단체들이 유우성씨를 사문서위조로 고발한 것과 관련해 피고발인신분 소환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보수단체들이 고발한 것 자체가 억지다. 제가 낸 서류들을 위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꾸 저에게 해명하라고 한다. 왜 제가 해명해야하는가. 중국에서 서류가 진본이라고 확인해주지 않았나. 그렇다면 중국에게 해명을 요구해야하는 것 아닌가. 중국 가서 한번만 확인해보면 제 서류들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변호인들과 논의를 해서 결정하겠지만 소환엔 응하지 않을 생각이다.

검찰의 진상조사가 한창이다. 국정원 협력자나 김 사장이라고 불리는 국정원 블랙요원은 구속됐다. 심경은 어떤가.

솔직히 검찰 조사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다. 지금 아버지 콩팥에 종양이 생기는 등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 동생도 심리적 안정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티비를 중국에서도 볼 수 있다. 동생이 왜곡된 기사를 보고 힘들어 하고 있다. 한국 뉴스를 보지 말라고 했다.

국정원에서 수사도 받았다. 동생도 국정원 조사에서 대머리 수사관 등에게 협박과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지 않았나. 단지 위조문서뿐만이 아니라 수사 전반으로 조사를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나.

제가 지금 누구를 지목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다시는 증거가 조작돼 불행을 겪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 진상이 규명됐으면 한다. 저는 국정원, 검찰에서 조사 받을 때부터 동생과의 대질신문을 요구했다. 그러나 한번도 시켜주지 않았다. 만약 대질신문이 한번이라도 이뤄졌으면 이런 혼란을 빚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입장이나 검찰 수사를 종합하면 결국 국가기관이 제출한 증거가 위조인 셈이 됐다. 대한민국 정부나 국가기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고 그에 따른 합당한 조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아직 2심이 안끝났고 설사 판결이 나온다하더라도 검찰이 공소를 취하하지 않으면 대법원까지 갈 것으로 예상된다.

2013년 1월 10일 체포된 이후 국정원, 검찰조사를 받으면서 간첩이 아니라고 수없이 이야기했다. 1심 재판은 비공개 재판이라 상황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진실만을 이야기해 왔다. 검찰이 중국에서 찍은 제 사진을 북한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증거로 제출했다. 1997년, 2007년 딱 두 번 저를 본 사람이 저를 만난 시간과 장소, 옷 머리 스타일까지 기억한다고 주장했는데 그게 말이 되는가. 그렇게 기억력 좋은 사람이 자신의 남편이 언제 감옥 갔는지 기억조차 못하더라. 사태가 이 정도라면 공소를 취하해야하는게 맞지 않겠나.

지금 사회복지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수급자 관련한 논문도 쓰고, 대학원도 졸업하고 싶다. 지금 바라는 것은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