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말했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은 인생의 아름다운 매력”이라고.
구속된 이석기 의원이 지난해 9월 12일 옥중에서 전한 이 말처럼, 이 의원에게 이른바 ‘내란음모’ 사건이라는 ‘화’는 ‘복’으로 바뀔 수 있을까? 정부의 정당해산심판 청구까지 맞물리며 최대의 위기를 맞은 진보당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을 규탄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 있는 자세와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을 촉구하는 촛불이 연일 번지고 있던 2013년 8월 28일. 국정원은 이 의원을 포함한 진보당 간부 10명의 자택과 의원실 등 18곳을 전격 압수수색하고 3명을 체포한다. ‘내란음모’ 사건의 시작이다.

모든 사람들이 어안이 벙벙했다. 당사자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1980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33년 만에 부활한 ‘내란음모’ 사건은 ‘상상 그 이상’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러웠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내란 음모’와 ‘이석기’로 언론은 도배가 됐다. 사실 여부에 대한 판단이나 상식과 합리에 기초한 의심 따위는 없었다. 너도 나도 뛰어든 자극적 보도 경쟁 속에 ‘공안당국 관계자’, ‘국정원 관계자’ 발 무수한 ‘따옴표(“……”)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루 만에 “언론에선 재판 끝”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그러나 시작일 뿐이었다.

국정원이 작성한 이른바 ‘녹취록’ 발췌본이 압수수색 다음날 밤 <한국일보>에 의해 공개된다. 이 의원 측이 ‘내란음모’ 혐의를 부인하는 가운데 전격 공개된 ‘녹취록’은 ‘여론 재판’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한국일보> 기자들은 이 보도로 제276회(8월) ‘이달의 기자상’에 선정된다. ‘조선일보’ 등의 ‘베끼기’ 해프닝은 애교 수준이다.

재판 과정에서 이 녹취록은 수백 곳의 왜곡과 오류가 드러나 ‘누더기’가 된다. 국정원은 지난해 11월 15일 기존 녹취록에서 112곳을 수정해 다시 제출했고, 많게는 272곳이 수정된 것으로 분석됐다. ‘전쟁 준비’는 ‘구체적 준비’로, ‘결전 성지’는 ‘절두산 성지’로 고쳤다. 녹취록이 공개됐을 당시 이 의원 등에 대한 ‘호전적’ 이미지 강화에 기여했던 부분들이 바뀐 것이다. 녹취록을 작성한 수사관은 변호인단의 문제제기에 “이어폰을 바꿔가면서” 다시 들었다고 한다.

변호인단은 이를 “의도적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재판장도 음절 개수가 다른데 어떻게 잘못 들을 수 있냐고 물었다. 녹취록의 오류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변호인단은 1월 450여 곳에 달하는 왜곡과 오류 부분을 추가로 확인해 재판부에 제출했다.

국정원 프락치’ A씨가 증인으로 출석한 지난해 11월의 4차례 공판은 하이라이트였다. 국정원과 A씨는 ‘내란음모’의 주체로 이른바 ‘RO’를 지목했다. 이들은 이 ‘RO’가 ‘민혁당에 뿌리를 두고 주체사상 등을 신봉하며, 이석기 의원을 총책으로 단선연계 복선포치 등 지하당 운영 방식을 따르는 혁명조직’으로서, 문제의 5·12 서울 합정동 마리스타 교육수사회 모임에서 ‘내란음모’를 꾸몄다고 주장한다.

A씨는 어떻게 불러야 하나
‘프락치’의 사전적 의미는 ‘특수한 사명을 띠고 어떤 조직체나 분야에 들어가 본래의 신분을 속이고 몰래 활동하는 사람’이다. A씨는 ‘RO’의 범죄 증거를 수집하겠다는 목적으로 다른 사람을 속였고, 이후 자신이 참가한 모임을 몰래 녹음해 국정원 수사관에게 전했다. 이번 사건이 A씨가 ‘침투’한 이후에 발생한 일이라는 점도 명백하다. ‘프락치’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나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A씨를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유일한 단어다.

그러나 정작 재판에서 A씨의 진술은 오락가락했다. 특히 그는 궁예도 울고 갈 ‘관심법(觀心法)’을 선보인다. ‘RO’의 조직구성과 체계 등 실체에 대해 그는 자신의 ‘추측’이 근거라고 진술했다. “저 정도 활동을 했고, 저 정도(지위)면 조직원이구나”, “20년 넘게 운동하고 10년 넘게 조직원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됐다)” 등등. ‘RO’가 고유명칭인지 여부도 특정하지 못했다. 총책이나 지휘성원 문제, ‘가입식 장소’ 등과 관련해서도 일관성이 없었다. 일련의 A씨 진술은 기소조차 되지 않은 ‘RO’의 실체가 국정원과 A씨의 ‘창작물’이라는 점을 반증하고 있었다.

‘내란음모’ 혐의도 마찬가지다. 목적도 불분명하며 모임 당사자들의 공통적인 결의도 없었고, 사후 구체적 실행방안에 대한 논의도 없는 ‘내란음모’가 가당키나 한 것인가? A씨는 이 사건에 ‘내란음모’ 혐의가 적용됐다는 것을 국정원 압수수색 이후 언론에 나오고 나서야 알았다고 한다. 그 자리에 있던 당사자도 모르는 ‘내란음모’가 있는가? A씨는 구체적인 결의에 이른 것이 맞느냐는 검사의 질문에도 “이석기 대표가 ‘바담풍 하면 바람풍으로 알아 들으시라’, 그 정도만 얘기해도 충분히 다 이해됐다”며 뜬구름 잡는 답변을 내놨다.

이처럼 ‘내란음모’라는 죄목의 무시무시한 스릴러는 한 편의 ‘희극’으로 변했다. 국정원이 변호인단 소송자료를 잘못 압수해 디지털 카메라 메모리카드를 펜치로 잘게 잘게 부순 해프닝, ‘상상’에 근거해 실시한 철탑 파괴 실험은 이 거대한 희극의 소품 정도로 치부될 정도다.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건강정보’ 중 일부 파일 문서를 ‘사제폭탄 제조법’으로 지목, 그 파일을 당사자가 열람했는지 여부도 확인하지 않은 채 최대 1만1천배에 달하는 양의 물질을 사용해 폭발 실험을 진행한 일화는 변호인단의 평가처럼 “국정원이 벌인 대표적인 사법 이벤트”로 기록될지 모른다.

그러나 이 희극은 누군가에게는 ‘공포’다. 과거 국가보안법에 따른 공안사건들이 줬던 ‘공포’의 효과는 ‘내란음모’라는 죄목과 맞물려 이 사건에서도 톡톡히 작용했다. 대대적인 ‘종북공세’ 속에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르지만, 민주당 등 야당에서는 너도 나도 ‘진보당과 다르다’는 점을 ‘알아서’ 내세웠다.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에 ‘반대’, ‘기권’, ‘무표’ 표를 던진 의원들을 색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진보당에 동의하지 않지만’이라는 전제를 달며 입장을 밝히는 것이 유행이 됐다. 이 사건이 희극이면서도 희극으로만 치부될 수 없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다산인권센터는 지난해 9월 13일 발표한 입장에서 “바야흐로 ‘나는 종북 빨갱이가 아니다’, ‘너는 종북 빨갱이가 아닌가?’라고 묻는 야만의 사회가 도래했다”고 지적했다.

해외 진보적 지식인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러시아 출신 박노자 교수 등 61명의 국외 학자들은 지난해 9월초 성명을 내고 “정치권에서 국정원 개혁에 대해 논의가 오가는 가운데, 국정원이 소수 야당과 그 국회의원에 대해 내란을 음모했다는 혐의로 역습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노암 촘스키 교수 등 미국 내 진보적 지식인들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위협적인 공세 하에 놓여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여당 새누리당과 국가정보원은 정치권에서 진보적인 목소리를 축출하기 위한 마녀사냥에 주력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올해 1월 27일 재판부에 제출된 10만3천797명의 탄원서에도 촘스키 교수와 램지 클락 미국 전 법무부 장관 등 다수의 해외 인사들이 참여했다.

‘내란음모’ 사건은 1심 판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영화 ‘변호인’으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책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에서 저자인 역사학자 E.H.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하고 있다.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민국은 과거가 될 오늘날의 ‘내란음모’ 사건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을까?

변호인 vs 검찰

녹취록의 진실

난 1월 7일, 수원지방법원 법정에서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내란음모 사건'의 녹음파일이 처음 공개됐다. 지난 해 8월 28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 피고인들에 대한 국가정보원의 전격적인 압수수색이 벌어진지 4개월하고도 열흘이 지난 뒤였다.

검찰, 피고인(변호인), 재판부, 그리고 방청객이 모두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봉해진 봉투 속에 들어있던 녹음기 등에 담겨진 총 32개의 녹음파일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 날 새로 마련된 USB에 옮겨진 이 녹음파일들은 총 7일에 걸쳐 하나씩 하나씩 법정에서 '곰 플레이어'를 통해 재생됐다.

핵심은 이석기 의원이 직접 강연자로 나섰던 '5.10 곤지암 수련원 모임'과 '5.12 마리스타 수도회 모임' 당시 녹음파일이었다. 국정원의 프락치로 불리는 A씨가 녹음한 이 파일들은 내란음모 사건의 결정적인 증거라고 간주되어 왔다. 두 파일에 담겨진 내용은 진위 여부가 가려지기 전에 '국정원발(發) 녹취록'으로 먼저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피의사실 공표 위반'이라는 문제가 있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처럼 주워 담을 새도 없이 녹취록은 확산됐고 정국을 강타했다.

국정원발(發) 녹취록
'한국일보' 이른바 'RO회합'으로 불리는 '5.12 마리스타 수도회 모임'에 대한 녹취록 전문을 2013년 9월 2~3일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보도했다. 공판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이에 대해 통합진보당 공동변호인단은 3일 "한국일보가 국정원의 피의사실공표 공무상 비밀누설 등의 범죄 행위에 가담해 헌법상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무죄추정의 원칙 등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피의사실공표 위반 등의 혐의로 가처분 신청을 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4년 1월 8일 담당 법원은 "이 의원 등에 정치적 이념과 전쟁시 대처방안 등에 대한 발언을 다룬 기사로서 객관적으로 국민이 알아야 할 사안을 다룬 보도"라며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공판이 시작되자 녹음파일과 녹취록의 진위 여부를 둘러싸고 검찰과 변호인단의 공방이 계속 이어졌고, 재판부는 막바지에 이르러 이들을 결국 증거로 채택했다. 이는 재판부가 '직접 듣고 보고 판단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재판부는 핵심인 5월 두 모임에 대한 파일들을 먼저 청취하자고 제안했고, 녹음파일 증거조사 첫날인 1월 7일 법정에서 5시간 30분 분량의 5개 파일들이 재생됐다.

검찰, 272군데 녹취록 수정...변호인단 “414군데 더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날 재판부가 본 녹취록은 이미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알려진 녹취록과 다르다는 것이다. 검찰이 녹취록의 272군데를 수정, 재판부에 다시 증거로 제출했기 때문이다. 처음 녹취록을 작성했던 국정원 직원들은 "들리는 대로 최선을 다해 작성했다"고 항변했고, 검찰은 수정된 녹취록에 대해 "내란음모 혐의 관련 대화 취지나 전체 의미는 차이가 없다", "음질 불량, 외부 잡음 등으로 일부 잘못 들은 단어 등에 대해 수정해 제출한 것"이라며 큰 의미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5.12 모임'에서 대부분의 수정이 이뤄졌고, 특히 이석기 의원의 발언이 집중적으로 수정된 걸 두고 '녹취록 짜집기' 논란이 확산됐다. 실제 수정된 내용을 보면 처음엔 호전적 색채가 짙은 문구들이 녹취록에 담겨 있다가 의미나 분위기가 다른 문구로 바뀌거나 삭제된 것이 상당수였다.

"구체적으로 준비하자"를 "전쟁을 준비하자"로, "결정을 내보자"를 "결전을 이루자"로 오녹취했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 또 '5.12 모임' 참가자들이 결전을 앞두고 마치 "결전 성지"에 모인 것처럼 썼다가 단순히 모였던 장소를 지칭하는 "절두산 성지"로 바로잡았고, 이 의원이 정세 강연을 하면서 "성전 수행"을 촉구하며 전쟁을 선동하는 내용으로 녹취록에 옮겼던 대목도 반전 평화를 호소하는 "선전 수행"으로 고쳤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공판 과정에서 녹취록을 작성한 국정원 직원에게 "결전 성지와 절두산 성지는 글자 수 자체가 달라서 잘못 듣기가 쉽지 않은데, 어떤 의도를 가지고 기재한 것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절두산 성지
'5.12 모임'이 열린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마리스타 수도회 근처에 있는 가톨릭교(천주교) 순교 사적지를 일컫는다. 조선시대 한강을 건너던 양화(揚花)나루터 옆에 있었던 언덕으로, 1866년 병인양요 이후 개화기 때 전국 각지에 척화비(斥和碑)를 세움과 동시에 1만여 명의 카톨릭 신자들을 붙잡아 이곳에서 목을 잘라 처형한 데서 연유해 '절두산'으로 불리게 됐다.

검찰은 녹취록이 증거로 채택된다이후에도 한 차례 더 수정된 녹취록을 의견서로 제출했다. 앞서 변호인단이 검찰의 '수정 녹취록'에서 414곳, 841개 단어, 2712개 글자를 고친 '교정 녹취록'을 재판부에 제출했는데, 이중 일부를 검찰이 수용한 셈이다. 두 가지 녹취록을 비교해보면, 같은 녹음파일을 듣고 푼 것인지 의아할 만큼 차이가 나는 대목과 비슷하더라도 완전히 의미가 다른 부분도 상당수였다.

이를테면 검찰은 "바람처럼 모여 있으라고 그랬는데"라는 이 의원의 발언 녹취를 변호인단의 주장대로 "바람처럼 모이겠다고 약속했는데"로 고쳤다. 변호인단은 전자의 경우 모임의 해산 및 소집 주체가 이 의원인 것처럼 들리기 때문에 의도적인 왜곡이 아니냐고 따졌다. 또 "북한의 대사상전"은 "하나의 대사상전"으로, "실탄이"는 "시 단위에"로, "배후를 확대해서"는 "대오를 확대해서"로 고쳤다. 처음에는 호전적인 단어를 썼다가 변호인단의 지적을 수긍한 것이다.

이 의원이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과 관련 "그 사고에 대한 청구는 어디 가서 해야 돼? 미 대사관 가서 해야지"라고 한 부분은 "그 3보1배하는 친구들은 어디 가서 해야 돼? 미 대사관 가서 해야지"로 고쳤으며, 북한의 핵 보유와 관련 "전면전야 전면전"이라고 말했다는 부분도 "전면전은 안 된다고"라고 수정했다. 검찰은 "만약 작년 한해 그런 차원이라면 비대위는 테러세력입니다. 우리를 반체제로 생각한다"는 부분도 변호인단의 주장처럼 "옛날 장준하만 해도 그거랑 차원이 다르다고. DJ는 체제세력이라고. 우리는 반체제로 본다"로 들린다며 변호인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녹취록 수정 내역

이석기 의원 발언 모아보기 변호인 수정 요청 내용 모아보기 검찰 수정 내용 모아보기 주요 내용 모아보기 전체보기
발언자국정원발 녹취록변호사 수정 요구 내용검찰 수정 내용
5.10 곤지암 수련원 모임
김홍렬뒷줄만집중박수집중박수
참석자들아니요아니요 (웃음)-
김홍렬괜찮습니까?그렇지 않습니까?그렇지 않습니까?
김홍렬사전에 처음과사전에 토론과사전에 토론과
김홍렬[누락](아이 소리) -
김홍렬[누락](아이 소리) -
김홍렬[누락](아이 울음 시작)-
김홍렬땅과 하늘, 바다에서는땅과 하늘, 바다에서는땅과 하늘, 바다에서는 여전히
김홍렬[누락](아이 울음)-
김홍렬[누락](아이 울음)-
김홍렬[누락](아이 울음 시작)-
김홍렬[누락](아이 울음)-
김홍렬[누락](아이 울음)-
김홍렬더욱 절실히 요구되는더욱 절실히 요구되는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김홍렬[누락](아이 울음)-
김홍렬현재 이 조성되고 있는현재 전쟁이 조성되고 있는-
김홍렬[누락](아이 울음)-
김홍렬[누락](여러 아이 울음 시작)-
김홍렬민족주체 운명의(아이 울음 소리) 민족주체 역량의민족주체 역량의
이석기단위의 전쟁-당위의 전쟁
이석기새로운 전기를-새로운 전진을
이석기새롭게 결의하는 대장정-새롭게 결의하는 대전기
이석기각자의 또 내가 소집령이-갑자기 시가이 다시 또 되거나 소집령이
이석기아이를 데려가는 사람은-아이를 데려가는 일은
이석기원래 예정된 강연을원래 예정된 강연은 아니었습니다원래 예정된 강연은 (·)
이석기[누락](아이 울음)-
이석기현 정세는기본 정세는-
이석기[누락](아이 울음)-
이석기[누락](아이 울음)-
이석기어떻게 준비하고 만회할 가어떻게 준비하고 만회할 것인가어떻게 준비하고 맞이할 가
이석기결의를 다지는 자리였다고 생각합니다-결의를 다지는 자리였다 그 말입니다
이석기김근래 지휘원김근래 지금 오나-
이석기우리 동지들의 피의 이성을 강화하면서우리 동지들이 피의 희생을 각오하면서우리 동지들의 피의 희생을 각오하면서
이석기저놈들을 두려워저놈들을 두렵지도저놈들을 두렵지도
이석기순시간에 오셔라-순식간에 모이시라
이석기당내 전투의 기풍을당면 전투의 기풍을-
이석기우린 준전시가 아니라이젠 준전시가 아니라-
김홍렬마음을 대신-마음을 뒤로
5.12 마리스타 수도회 모임
김홍렬조국
김홍렬민족과 민중에 힘으로 부여되는민족 변영과 민중의 행복이 구현되는민족 번영과 민중의 행복이 구현되는
김홍렬민족주체 혁명의-민족주체 역량의
이석기간부들 책임감의-간부들이 심각한
이석기정규전과-준비정도와
이석기흥정할 겨를이-흥정할 권리가
이석기그 전체 생명이나 육체적 생명까지 무슨 수로 책임진다는-그 정치적 생명이나 육체적 생명까지 무슨 수로 책임질 수 있다는
이석기우위에 의해 만들어가고-우리에 의해서 만들어가고
이석기결전성지 장소에-절두산성지 이 장소
이석기(·)-다 바람처럼 오셨는데 (·) 잘하고 있으시네요
이석기당과 청년쪽-당과 전선쪽
이석기(·)-초소를 지키는 초병의 심정으로
이석기이것은 기억하실까 모르겠네-이것 다 기억하셨다고 봅니다
이석기독립부대-동지부대
이석기혁명세력은 자기 혁명세력으로-혁명세력은 자주, 민주, 통일로
이석기가는 길 험난해도 혁명스러운 대결이므로-가는 길 험난해도라는 혁명적 슬로건을 제기했던 이유도
이석기무난하게 간다-못마땅한게 많다
이석기그게 바로 정전협정이다-그게 바로 정전협정 무효화다
이석기예전에 중소 냉전 이후에-예전에 동서 냉전 이후에
이석기완전 난민시대를-반미반제 투쟁을
이석기민족의 자력진출-민족의 자주적 진출
이석기결사의 성지-절두산의 성지
이석기나는 탄핵은 반대해요-나는 탈핵은 반대해요
이석기진보당은 (·)으로는-진보당의 준비정도는
이석기침략을 사장시키고 물리적인-침략을 파탄시키고 물리적으로 표현되는
이석기쌍방이 군사적인 시위를 절대할 수 있는 곳이-쌍방의 군사적인 시위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곳이
이석기선전선동이-선전전 형태라는 것, 이 선전전이
이석기수많은 전우들이-수많은 전선에서
이석기사상을-사상적
이석기제 데이터에-쟤들 입장에서
이석기다른 건-다른 건 민심이 중요한 거에요
이석기심리부대를(·)-심리부대를 정비하고
이석기맹목적 싸움이 아니라-주먹쥐고 싸우는 게 아니라
이석기전쟁을 준비하자-구체적으로 준비하자
이석기그야말로 (·)의 강고분투-그야말로 자력갱생 간고분투
이석기사상-세상
이석기결전을 이루자-결정을 내보자
이석기초소까지-철석같이
이석기단계 형성의-당면 정세의
이석기다가온 대격전지-다가온 대격변기
이석기전시물품-(·)물품
이석기지금 위원장동지라고-지금 위원장이에요
이석기그야말로 적나라한 시기에-그야말로 전면화된 시기에
이석기성전수행-선전수행
이석기이 전쟁에 관한 주제를-이 전쟁의 반대투쟁을
이석기임박하게긴박하게긴박하게
이석기이를 위해일요일에일요일에
이석기(·)임의로 (·) 하거나임의로 (·) 하거나
이석기사회사고-
이석기겸비한-견지한
이석기우리들은동지들은-
이석기여기 있는 동지라고여기 있는 동지들이라고 봅니다-
이석기책임진다책임지겠다-
이석기만만히만만하게 -
이석기창언하는선언하는-
이석기기회가비결이-
이석기바람처럼 모여있으라고 그랬는데바람처럼 모이겠다고 약속했는데 바람처럼 모이겠다고 약속했는데
이석기[누락]열기도 덮겠지만-
이석기[누락]동네에 오면 더 불편해(웃음)-
이석기빗살리 구룡길로 오면,(·)-
이석기40대의 근무하는40대의 중반의-
이석기노동 부문노동 운동-
이석기당이 다치거나강의를 마치거나-
이석기중앙당 지휘부가중앙 당직의 지위가-
이석기[누락]대결사 자리가(-)-
이석기미 제국주의에미국 제국주의에-
이석기자력자주적-
이석기대시대 격변기대시대적 격변기-
이석기공부(·)을 해서공동의 실천을 전개함을 통해서-
이석기정치사업의 위치정치사상적 일치-
이석기얘기하기보기-
이석기더 중요한 것은-
이석기자라는전환하는 -
이석기환경사상-
이석기패권의패권적-
이석기미 제국주의들이미 제국주의자들이-
이석기[누락]수십년간 지배하다가-
이석기(·)이라는(·) 붕괴되고 있다는-
이석기이것 다 기억하셨다고 봅니다조금 더 하며 기억나실거라고-
이석기아사리 나버린 민주주의아작이 나버리지 미국이-
이석기해결됐죠?해결이 없어-
이석기정치사회그리고 정치사상적으로는-
이석기(·)대안의(·)-
이석기[누락]그야말로 미국의 인텔리조차도 상당 부분이-
이석기[누락]세계적 범위에서
이석기계급 (·)계급적 억압계급적 억압
이석기약화파탄-
이석기충돌과 전환하는충돌, 격화, 전환하는-
이석기새로운세계사적세계사적
이석기시기적시대적-
이석기체계체제-
이석기인식의이 지배-
이석기밑으로부터 해서밑으로부터 흔들어서-
이석기진보적 대중 역량진보적 대중 정당노선-
이석기구성구축-
이석기혁명의 진출혁명적 진출-
이석기혁명의 진출의혁명적 진출에-
이석기근본은겁먹는-
이석기혁명이나혁명적 의리와혁명 의리나
이석기진보당 역량의 자리가진보당은 명멸하는 것이 아니라-
이석기정치술로서정치술 부대로서-
이석기기억하시라고기억하시리라고-
이석기장내당내-
이석기모의로음모이고-
이석기진보진영 혁명세력을최종적으로는 근본주의적 혁명세력을-
이석기자기 혁명세력은혁명세력 또는혁명세력은
이석기자주·민주·통일로자주·민주·통일 세력으로-
이석기위대한유일한-
이석기무형분자들을우연분자들을-
이석기체제 강화체제내화-
이석기정당한더군다나-
이석기두려움에 대한두려움에 의한-
이석기이번이른바-
이석기종복소동에서는종복소동은-
이석기언제까지 가느냐 물어볼 때언제면 끝나냐 물을 때 웃으며 말했다-
이석기미 제국주의에 의해 (·)된미 제국주의의 하나의 프레임미 제국주의의 하나의 프레임
이석기빨갱이 소리(·)빨갱이 소리(·)와는 다른 종북소동(·)-
이석기원칙이원칙에-
이석기끄집어 낸게끄집어 주는게-
이석기연대라는연대연합연대연합
이석기작년까지는과정은-
이석기단발(·)간단하게 복기를 끝내겠습니다-
이석기난리도 아니에요.난리도 아니에요.(·)-
이석기[누락]중도주의(·)
이석기민주당의 대통합민주당의 개량화-
이석기그러는 거에요그렇게 보는 거예요-
이석기(·)정확한 이익을-
이석기세력이세력임에도 불구하고-
이석기(·)을 싫어해서, 두려워해서, 또 배신의 대상으로그 붉은 보자기를 씌워내서 두려움의 대상으로, 또 불신의 대상으로그 붉은 보자기를 씌워내서 두려움의 대상으로, 또 불신의 대상으로
이석기(·) 뭔정치적 이해와 요구와 먼정치적 이해와 요구와 먼
이석기여러분들이저놈들이저놈들이
이석기안 되던데감이 안 되던데-
이석기세력이 (·)세력에 대해서 절대 지지하지 않는다-
이석기아무것도 한 게 없어아무런 답이 없어-
이석기노원구 개발 문제도 (·)노원구 개발 문제도 답이 없어, 찬성이냐 반대냐노원구 개발 문제도 봐요 (·)
이석기애매하게 (·)애매하게 노원구 주민에게 맡기겠다-
이석기금기의경계의-
이석기남측 정부의남측 정국의-
이석기시각이랄까시각일까-
이석기[누락]20년간 고립, 말살(·)
이석기사회국제정치를(·) 사회주의 국제정치를가장 중요하다고, 표현이 그런데 가장 중요한 이 사회국제정치를
이석기주장하는부정하는-
이석기(·)에는그냥 맺어진-
이석기차원이 달라차원이 다르거든-
이석기마오쩌둥의 그 자기 6.25 해방전쟁마오쩌둥의 그 자기 아들이 6.25 해방전쟁에 (·)해서 목숨을 잃고 했거든마오쩌둥의 그 자기 아들이 6.25 해방전쟁에 (·)해서 목숨을 잃고 했거든
이석기아주 전개된알고 있는-
이석기혁명적 역량혁명(·)-
이석기그래서그래도그래도
이석기[누락]범죄를 저질렀어요-
이석기혁명투쟁을 했던혁명적 표현을 했던-
이석기우주과학의 승리우주과학의 승리였던-
이석기북남외교다광명성 2호다-
이석기[누락]이건 정말 조선사람(·)-
이석기미 국방정보국의 공식 의견을 (·)미 국방정보국의 공식의견을 존중하는 편이고-
이석기갖췄는데알 수 있는데-
이석기(·)핵융합-
이석기우리 집권당이 (·)북이 집권당이라 해도-
이석기주객관적으로주객관 정세를-
이석기핵심 중의핵심 고리 중의핵심 고리 중의
이석기내가 이걸 보고 페이백이기도 하다.일각에서는 그걸 보고 '플레이북'이라 하기도 하고-
이석기(·)B2(·)-
이석기북미정세에서북미정세에 대해서-
이석기지금미국은-
이석기두 가지가두 가지 견해가-
이석기오바마와 (·)오바마와 존 케리로 표현되는 국무성-
이석기피해힘의-
이석기일어날 수 있는가를이기는가 지는가를-
이석기동기를 떠나서동지들 그걸 알아야 해-
이석기무슨 말인지?무슨 말이냐 하면-
이석기자동화다종화-
이석기변형할리는 없지도려낼 순 없지-
이석기미국이 (·) 문제가 있나?미국을 위협하는 게 두 군데가 있어. 하나는 북이고 하나는 이란이고.미국을 위협하는 게 두 군데가 있어. 하나는 북이고 하나는 이란이고.
이석기그냥 갔다고대단히 낮다고-
이석기이란으로 가는 걸이란으로 갈까 봐-
이석기3월이 아니고 6월3월이 아니고 2월-
이석기군사 전력군사 전략군사 전략
이석기진공적으로-
이석기미국의 영토미국의 본토-
이석기2010년에2012년에-
이석기그 사람들이 2010년에그 사람들이 2012년에-
이석기한국문화침투인데문화침투인데-
이석기그 할리우드 영화가 장난을그 할리우드 영화가 (·)-
이석기민족이민중들이
이석기내부낡은-
이석기세계강국핵의 강국-
이석기가치 판단을가치 판단은가치 판단은
이석기객관적객관 진실-
이석기과거는 할 수 없는 거고 새로운 단계 같은데과거론 갈 수 없는 거고 앞으로 새로운 단계로 갈텐데-
이석기현 정세를그게 현 정세를-
이석기덥지? 사우나 같지?벗지? 땀을 막 흘리는데?덥지? 사우나 확실이 돼? 응?
이석기주체적 자주적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이석기준비정도에 (·)한다면준비정도가 높지 않거나 이러저러하게 곡절을 겪는다면그런데 이 자주역량 준비정도에 (·)에 (·)한다면
이석기끌어내는가끊어내는가-
이석기그것을오늘 일정을-
이석기바라보면 일면인 거에요바라보는 것도 일면인 거에요-
이석기옳다가장 옳다-
이석기미국 민중뿐만우리 민중뿐만-
이석기민족 내부의 문제가 절대 아니다민족 내부의 문제로만 접근하는 거야-
이석기북미간의 대결일지 몰라도북미간이 모든 결정을 하고-
이석기남측을 좋은 뜻으로남측을 종속변수로-
이석기농담으로농담아닌 농담으로-
이석기우리가(·)-
이석기절두산의 성지인데여기가 절두산의 성지인데-
이석기결사성지절두산 성지절두산 성지
이석기살고 싶어살고 죽고-
이석기외래 신부가 외래 가서외래 신부가 내려 가서-
이석기일면에 자기 욕심일면에 자긍심-
이석기성지의 측면은이 성지의 중요함은-
이석기계급제 체제하에서계급적 제한성으로 인해서-
이석기절두산 성지라는절두산 성지라는 거예요-
이석기신념을 저버린 자를 앉힌 거다신념을 저버린 자를 안 쳐주는 거다-
이석기자주역량이변혁운동역량이-
이석기새로운 인식새로운 우리식새로운 의식
이석기저절로 이루어지거나 (·) 없죠?(·) 종속변수-
이석기한장 첨예하게지난 번 한창 첨예하게-
이석기일관된 편향된일면적 편향의 하나의 -
이석기현 정세를현 정세를 그냥-
이석기평화냐 전쟁이냐 왜곡해서 바라보는 거다평화냐 전쟁이냐 하는 이분법적 사고로 보는 거다-
이석기그 전쟁그 긴장-
이석기문제는문젠데-
이석기감시하고 어떻게 하느냐감히 시비하고 흥정한다는 거냐?-
이석기자주와 주권을자주권과 주권을-
이석기매카시는매카시즘으로-
이석기종북소동, 빨갱이소동종북놀음, 빨갱이놀음-
이석기전 세계로 가는 거에요전 세계에도 없는 거에요-
이석기그러한 시대그러한 피해-
이석기전국적종국적으로-
이석기종북소동에서는종북의 근원은-
이석기지식이라는지식인이라는-
이석기[누락]종북 소동이 그런 거에요-
이석기미국놈들이 미국놈들이 지들이 탈핵하면-
이석기미 제국주의의외래 제국주의 간의-
이석기역학 관계를 나타낼 때역학 관계를 타산할 때-
이석기[누락]그 다음에 댓글이 재미있는 거에요-
이석기발표해서 북한 측이 도망간다발표한 거 보니까 북한과 내통한 모양이다-
이석기미사일 안 쏜 거다미사일 안 쏠 모양이다-
이석기[누락](웃음)-
이석기그 다음 필요한 게 뭐에요?그 다음 피동화되는 거에요-
이석기입장관점-
이석기유리하게 보는 거다유일하게 옳은 거다-
이석기우리가 상당히 그런 게 정책정당으로서의요즘에 내가 상당히 부드럽게 정책전문가로서의-
이석기나를 잘 알아서나를 잘 아는 사람은-
이석기지면칼럼에다가기명칼럼이란 데서-
이석기그 취지라는 것은그걸 가지고 시비질하는 것은-
이석기왜 손잡지 말라는 거에요?외세하고 손 잡자는 거예요?-
이석기살인과 살의살인과 살해-
이석기노골적인 생각노골적인 행각-
이석기저놈들의 군사력저놈들의 군사적-
이석기물리적으로물리력으로-
이석기화합하기 힘들다평화는 오지 않는다-
이석기전체의 정치적전체의 전국적-
이석기폐쇄적이거나패배적이거나-
이석기냉혹한엄혹한-
이석기용서해달라영생할거다-
이석기자주 역량이 힘에 의해서자주 역량의 힘에 의해서-
이석기이긴 거고위기인 거고-
이석기첨예한 대결장에서첨예한 대결전에서-
이석기생각할생겨날-
이석기정규전의 전면전이 아닌정규전이나 전면전이 아닌-
이석기일부 인권변호사일부 일꾼 중에 하나-
이석기연평도를 사버리려고 아니 연평도는 내가 사버리는데연평도에 가서 3보1배를 하는 (·), 아니 연평도는 왜 가 3보1배를 해연평도를 사버리려고 했다는 얘기, 아니 연평도는 내가 사버리는데
이석기그에 앞서 (·) 쏘지 마라는 건거기 앞에 가서 3보1배를 하면, 북에다가 쏘지 말라는 거거든그에 앞서 (·)하면 북에다 대고 쏘지 마라는 거거든
이석기우리 공격하지 말라고 하는데우리 공격하지 말라라고 하는데-
이석기우리가 자꾸 하니깐왜 3보1배를 하는지 모르겠어-
이석기그 사고에 대한 청구는그 3보1배하는 친구들은그 3보일보하는 친구들은
이석기예전에는 놀다가 맞았는데이를 읽어 내지 못할 때 느끼는 일련의 오류라고 봐지는데, 그게 실제로-
이석기전면전야 전면전전면전은 안 된다고전면전이 안 된다고
이석기현대적인 게 중요한 거다현대전에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이석기인식을 하고 나니깐민심의 향방을 가르니까-
이석기전쟁이 생기고전쟁이 진행되고-
이석기그런 게 불안해 해그간에 사례였다고-
이석기조화라는 거교활한-
이석기[누락]국가가 쥐고 있고-
이석기고무신곰신-
이석기고무신 모임곰신 모임-
이석기(·)에서진실로써-
이석기예측한예기치 않은-
이석기각오하지 않는다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석기정말전방위의-
이석기(·)(·) 계산으로는-
이석기정치적 역량이 많은데정치적으로 정리돼야 맞는데-
이석기자주 (·)하는자주의 기치를 든자주의 기치를 든
이석기금기에요이거 금기어니까-
이석기침투(·)이에요침투하는 거예요침투 (·) 세력이에요
이석기두려운 문제에요두려운거지-
이석기재발하는제거하려는-
이석기순차적으로선차적으로-
이석기재개발하는제거하려는-
이석기영도의영구적인-
이석기같이 가기 위해서라도가져 가기 위해서라도-
이석기(·)기치를 든-
이석기몇몇 분몇몇 일꾼-
이석기지지자 클릭해서지지자 콜링해서-
이석기있어야 돼있어 여기에-
이석기있어야 돼있어-
이석기안 돼도 돼안 돼-
이석기사상부터4.3부터-
이석기4대 혁명세력이 비슷하게 역할을 할 수 있는 거지(·)-
이석기그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같은 거라는 거야(·)-
이석기뭐든 이룰 수 있다는 거야모두 올스톱 돼버려모두 올스톱 돼버려
이석기(·)(·) 계엄에 준한다고(·) 계엄에 준한다고
이석기북한의 대사상전하나의 대사상전하나의 대사상전
이석기지원하고규정을 하고-
이석기추종 지지세력으로 자행된 말했죠. 범죄고 유죄고.추종 지지세력은 다 제거를 해야지. 말이 필요 없고. 법리적으로, 물리적으로.-
이석기행위화 할 수 있는 게 뭐예요?횡행할 수 있는 거에요-
이석기테러는 다양하게 이뤄지는테러는 다양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이석기만약 작년 한해 그런 차원이라며 비대위는 체제세력입니다옛날 장준하만 해도 그거랑 차원이 다르다고, DJ는 체제세력이라고옛날 장준하만 해도 그거랑 차원이 다르다고, DJ는 체제세력이라고
이석기우리를 반체제로 생각한다고우리는 반체제로 본다고우리는 반체제로 본다고
이석기아 순간 찡해지는데아 순간 찡해지는데 (웃음)아 순간 찡해지는데 (웃음)
이석기누군가는동지들-
이석기[누락]손들어 봐요-
이석기왜?내가 뭐-
이석기너무 당연하게 들려요너무 당연하게 그래야 돼-
이석기그 지방신문 내가 처음 보는데그 지방 친군 내가 처음 보는데 (웃음)-
이석기다 찍었다는 거야나 찍었다는 거야 (웃음)-
이석기왜 자기 얼굴 본 일도아니 자기 얼굴 본 일도-
이석기내가 찍은 사람 다 찍는댔어내가 찍은 사람 다 종북 됐어 (웃음)내가 찍은 사람 다 찍는댔어 (웃음)
이석기전부다 리스트로 나와전부다 리스트다-
이석기자기에 대한 기억자기가 일하는 지역-
이석기참여인식 횟수로첨예한 인식 (·)-
이석기질문이징후는-
이석기우리 뭐요즘 뭐-
이석기(·) 가드투쟁을 안 해서 그래, 가드확보라고실천연대 친구들, 참 가슴 아프다고-
이석기만들어 가는 거에요만들어 놨거든-
이석기철도한길자주노동자회철도의 한길회 정도를-
이석기느슨한 행정조직이거든느슨한 현장조직인거죠-
이석기전면에 갖고 있던전면에 걸었던-
이석기그런 게 걸린 게 그거에요걸린 게 그런 거에요-
이석기자민통 애들이자민통 여전히-
이석기처벌이 되고탐독이 되고-
이석기현행법의 한계자나현행법의 한계잖아-
이석기자유로움의 정도는 또 다르다그 자유로움의 정도는 구체적으로 또 다르다-
이석기예를 들어 내 직계동지들 많지 않습니까예를 들어 내 직계동지들 많지 않습니까 (웃음)-
이석기그야말로 선빵을 날려라그야말로 선빵으로 가는거야, 이왕 갈 거-
이석기ML주의 왔더니 ML주의가 뭐라고 그러고ML주의 유행할 때는 ML주의를 들고 나오고-
이석기주체사상 왔더니 주체사상한테 뭐라고 그러고주체사상 유행할 때는 주체사상을 들고 나오고-
이석기오지 않는 승리오지 않은 승리-
이석기낡은 세상을낡은 사회를-
이석기새로운 세상을새로운 사회를-
이석기훈장을 주려고훈장을 쥐려고-
이석기자식들 우리 후배들다가오는 자식들 우리 후대들-
이석기의지와 물질 간의 싸움의지를 물질화하는 싸움의지와 물질 간에서 싸움
이석기구체적으로 하면 물질, 기술적 준비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물질, 기술적 준비-
이석기객관적인 정태를객관적인 정세를-
이석기결정체라고 부르는결정체라고 표현되는-
이석기자주된 세상자주화된 세상-
이석기착취와 허위착취와 억압이-
이석기10년, 30년10년, 20년, 30년-
이석기선두의선구적인-
이석기북에 대한 도발에 대한 도발-
이석기우리 손으로 만든 것에 대한우리 손으로 만들 데 대한-
이석기다음 대격변기를다가온 대격변기를-
이석기민족사의 혼을 승리로 혁명하는데민족사의 고난을 승리적 국면으로 여는데-
이석기역사의 새로운 장으로 기억했던역사의 새로운 장으로 기억할 거라고 봅니다-
이석기인생을 추구하는인생을 총화하는-
김OO우리가 중국이라든가 우리나 중국이라든가-
김OO우리가 외국에다 경제문제를 통해서 우리가 앞서 나가면북에 대한 경제봉쇄를 통해서 고립 압살하면-
윤OO정치, 군사적-물질 기술적
이석기무리해서-우회해서
이석기(·) 단위에서 어떻게 할까 하는-분단 단위에서 어떻게 토론할까의
이석기그래서 강의를 똑똑히 잘 들어야 해요그래서 강의를 똑똑히 잘 들어야 해요 (웃음)그래서 강의를 똑똑히 잘 들어야 한다고
이석기전략정치가전략적 인내가-
이석기새로운 단계의 전면이다새로운 단계의 전변이다-
이석기경제적가 큰일 났다 그러면경제봉쇄는 끝났다고 보는 거예요경제가 큰일 났다 그러면
이석기(·)라는게냉엄한 현실이라는 게-
이석기타협대타격대-
이석기이분화적인일면적인-
이석기지배구조가 붕괴되는 거고지배구조가 금새 붕괴되는 거고-
이석기정리된 거는 뭐고 정리 안 된거는 뭐고정리된 거는 뭐고 정리 안 된거는 뭐고 (웃음)-
이석기그건 토론에서 나중에 물어보세요그건 토론에서 나중에 물어보세요 (웃음)-
이석기지배적인 두려움의 선택이 물질, 기술 문제?(·)-
권역별 토론
이상호물질, 기술 준비하자는 얘기, 답이 나와있는 것처럼물질, 기술 준비하자는 얘기, 강의에 나와있는 것처럼-
이상호무엇을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입니다무엇을 준비할 것인가인데요-
이상호여러가지 보완을여러가지-
이상호[누락]술 한잔 하면서-
이상호예비검속에 1인자다예비검속에 (·)-
이상호국정원이 따라다니는 것 보니깐 자기가 이기 것 같다국정원이 따라다니는 것 보니까 자기가 이긴 것 같다 (웃음)-
이상호합법주의에 빠진 게 아닌가?합법주의에 빠진 게-
김OO무기들은(·)-
김OO그 보이지 않는(·)-
김OO역량상 보안은역량상 (·)-
미상녀청와대건 의사당이건(·)-
미상녀빨리 조치빨리 (·)-
이상호북부는(·)-
이상호공유할 부분이 있을 겁니다공유할 부분이 (·)-
이상호다른 지침이 있거나 그러면?다른 지침이 있거나 (·)-
최OO폭력적인 대응통일적인 대응-
최OO기본 계획을기본 메뉴얼을-
최OO만들어 줘야만들어져야-
임OO핸드폰이라든가 이 자체도 안 되고일단 핸드폰이라든가 이 자체도 안 되고-
임OO거리가 (·) 걸어서막상 모이자고 해도 걸어서-
최OO가능한 장구를 (·)가능한 (·)-
이상호보안만(·)-
이상호그것을 구체적인 것을그것을 (·) 구체적인 것을-
이상호동의를 하겠는지?동의되는 분이 있다면-
이상호재료들이재능이-
이상호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이상호파괴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 방법이다파괴하는 것이 (·)-
이상호상황이 된다고 하면은상황(·)-
이상호앞으로 된다고 하면(·)-
이상호거기에 맞는거기에 (·)-
이상호(·)에 대해서 (·)를 제조하면 된다, 그런 식으로.(·)-
이상호정규전-전면전
한동근일터사회에서(·)-
한동근수군거리는데(·)-
한동근물질, 군사적인군사적인-
한동근우리 조직 보호에 있다우리 (·)-
한동근절반이 지금절반이-
한동근(·) 아이 쳐봤잖아(·) 쳐봤잖아-
한동근파출소도 있고 좋잖아(·) 있고 좋잖아-
미상남저격, 저격 또는[미상남 부분 삭제]-
이상호안에 있는 사람하고 협조관계가 있으면안에 있는 사람(·)-
이상호굉장히 준비를굉장히 (·)-
이상호과도한 투쟁적인과도한 (·)-
이상호통제불능의 저기가 아닌 것들이(·)-
이상호군사 조치가 굉장히군사 (·)-
이상호어떤 화약, 생산하는어떤 (·)-
이상호정보가 들어와서 거기에 대해서 같이 내려오는 거지정보가 들어와서 (·)-
홍OO일주일에 하루 자는거일주일에-
이상호터치를 하는데 있어예를 들면 터치를 하는데 있어-
한동근간부의 역량을(·) 역량을-
한동근계급적 역량과대중적 역량과-
이상호획일적인통일적인-
이상호지침이든 대비할지침이든 제기할-
이상호적어도 모여야 어디 적어도 모여야-
이상호지침을 마련해 주었으면지침을 마련했으면-
이상호이런 의견이이런 얘기도-
이상호필요하면필요하다고 한다면-
이상호이러한 것부터이러한 것도-
이상호문제가 논의됐고요문제가 거론이 됐고요-
이상호화공과 나온 사람은 없어요화학, 화공과 나온 사람은 없어요-
이상호비상시기에이렇게 비상한 시기에-
이상호확인되어서 나온다고요확인되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상호나오는 이야기는뭐 나왔던 이야기는-
이상호고민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는고민에 들어가야 할 영역인 것 같다는-
홍순석중서부는 첫 번째 주지인중서부는 소감, 그 다음에 첫 번째 주제인-
이OO가까이 실탄이가까이 시 단위에가까이 시 단위에
이OO식당이나시당이나-
홍OO예비공격-예비검속
박OO물질, 기술적 준비가-물질적 준비가
박OO배후를 확대해서대오를 확대해서대오를 확대해서
박OO본질과 함께동지들과 함께동지들과 함께
우OO이런 준비가 되었습니다이런 준비가 (·) 나왔습니다-
우OO혁명전을 준비한혁명전을 준비하는-
조양원많이 이야기 했는데많이 이야기가 되긴 했는데-
조양원수뇌부를 지키는 문제지키는 문제-
이석기공산주의 등-온갖 기회주의 등
이석기폭파를 시켜놔도-(·)을 숨겨놔도
이석기잡사상주의가잡사상들이-
이석기이런 기본 가치만이런 기본 관점만-
이석기현실 관계를현실의 이해관계를-
이석기더 자세한 이야기는 보안사항이다더 자세한 이야기는 보안사항이다 (웃음)-
이석기이 관념적인이 관념적으로 이해하는-
이석기혁명적 표현을 해혁명적으로 표현을 해-
이석기표현에 물질이란 단어가 많이 나와표현에 급진적(·)적 단어를 많이 넣어물질이란 단어가 나와
이석기한 자루 권총을 기억하십니까?하나는 한 자루 권총을 기억하십니까?-
이석기일제에 강고압적으로일제에 강고하게-
이석기어떤 철탑 하나를 예를 들어서, 보안사항입니다어떤 철탑 하나를 예를 들어서 (·) 보안사항입니다 (웃음)-
이석기[누락]참석자 : (웃음)-
이석기(·) 그 철탑을 파괴하는토론과는 무관하겠는데, 그 철탑을 파괴하는-
이석기북한 미사일(·)북한 미사일부터
이석기[누락]참석자 : (웃음)-
이석기엄청난 무기가엄청난 위력이-
이석기반혁명하는 자유당 사람들도혁명가를 자임하는 사람들도-
이석기전쟁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지전쟁에 나서야 한다는 거였잖아-
이석기그 일정을 전개하면서그 입장을 견지하면서-
이석기전국적인 혁명의종국적인 혁명이-
이석기제일 쉬운게 불령선인을 (·)거야들씌운게 불령선인이야-
이석기항일유격대항일유격대를 비적이라 그랬다고-
이석기무너뜨리는 세력으로 종북세력무너뜨리는 세력을 보고 종북세력이라 그래-
이석기명예롭게 받아야되명예롭게 받자 이거야-
이석기분단을 무너뜨리고 자기가 힘과 지휘가 빵빵하다고분단을 무너뜨리려고 자기의 힘과 지혜와 땀방울을 바쳐-
이석기저놈들이 썼던 게 종북이라면 그 명예는 받아야 돼저놈들이 떠드는 게 종북이라면 영예롭다는 거야-
이석기명예라고영예라고-
이석기가방에 칼 갖고 다니지 마(웃음) 가방에 칼 가지고 다니지 마-
이석기미 제국주의와 전면으로 붙어서미 제국주의와 정면으로 붙었던-
이석기위엄과 그 존엄을 시험하는위용과 그 존엄을 시위하는-
이석기불화 없이굴함 없이-
이석기이런 통일로부터이런 본질로부터-
이석기그리고 지금지금-
이석기대중의 정치를 논할 것이냐?대중의 전취를 누가 할 것인가-
이석기전선이 와해되든전선이 교란이 되든-
이석기승리할진행할-
이석기구축 토대를구축 물적 토대를-
이석기다수의 대중들이 동지들이다수의 대중 및 동지들이-
이석기물질, 기술적 총은 어떻게 준비하느냐? 하는 부담가는 총을 만들어서 어? 다들 알겠지? 아 물론 부산가서 총만 받아도 (·)물질기술적', '총은 어떻게 준비하느냐' 하는, '부산가면 총을 만들어서', 어? 하는 말이겠지? 아, 물론 부산가서 총을 구한다 하더라고-
이석기그걸 이미 예상한다고그걸 이미 내사한다고내사한다고
이석기주먹만 지르는 거에요주먹만 쥐는 거에요-
이석기무엇을 해야할까가 아니라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이석기상층에 있는 친구들, (·) 없는상층에 있는 친구들, 여의도 가면-
이석기대중문화라는 게여의도문화라는 게-
이석기거기서 책략이 굉장히 많아요거기서 취약한 것이 굉장히 많아요-
이석기자존심자부심-
이석기제대로 모여봐제대로 (·)-
이석기도움이동지들이-
이석기이 싸움을 (·)이 싸움은 (·)-
이석기속도전의 주체성속도전의 실체성-
이석기대오의 일체성대오의 일치성-
이석기속도 얘기하지 말고속도 얘기만 한다고-
이석기집단의 우월성집단력의 우월성-
이석기일체감으로일체화된-
이석기여러분을 믿고 마치겠습니다여러분을 믿고 마치겠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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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논란이 된 ‘지휘원’

그러나 검찰은 이 의원이 ‘5.10 곤지암 모임’에서 김근래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을 ‘지휘원’이라고 불렀다는 주장은 수차례 녹취록 수정 과정에서도 끝까지 굽히지 않고 있다. 검찰은 “김근래 지휘원, 자네 뭐하는 거야 지금!”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변호인단은 “김근래 지금 오나, 자네 뭐하는 거야 지금!”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정에서 재생된 녹음으로는 두 가지 주장 어느 쪽에도 손을 들기 어려웠다. 잡음과 아이울음, 웅성거림 등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김근래 지휘원’이라는 부분은 명확하게 들린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녹취록 작성자인 국정원 직원은 “수십 번을 들어도 지휘원으로 정확히 들린다”고 증언했다. ‘김근래 지휘원’으로 불렸다면, 이는 RO가 이석기 의원을 총책으로 상하 명령체계가 명확한 지하조직이라는 증거가 된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검찰은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지휘원’이라는 호칭이 통합진보당 중앙당이나 경기도당의 당직, 직책과는 무관한 것으로 지휘통솔체계를 갖춘 특정의 조직체를 전제로 하다는 점을 볼 때, 이 회합의 참석 대상자가 당원들이 아니라 특정한 조직의 조직원이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또 이 의원이 당시 ‘격앙’된 목소리였고, 김 부위원장은 ‘음주상태’였다는 점을 지적하며 “(김근래 지휘원이라고 부른) 그 경위가 지극히 자연스럽고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황이어서 그와 같은 용어 사용이 실제 김근래의 조직 내의 지위나 역할에 부합함이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변호인단은 이 의원이 “김근래 지금 오나”라고 말한 부분을 검찰이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의원도 피고인 신문에서 검찰의 주장에 대해 “검찰이 왜 여기에 집착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저도 몇 번을 들어봤는데, ‘지휘원’이라는 말 자체를 모른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지휘원이라는 말은 운동권도 안 쓰는 말”이라며 “굳이 유사한 말을 찾자면 ‘지휘 성원’이라는 말은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변호인 측 증인들은 당시 김 부위원장이 모임에 지각했었다고 한 목소리로 증언했다. 모임 참가자인 문모 씨는 “지휘원이라고 부르는 건 듣지 못했고 김 부위원장 이름을 이 의원이 크게 말하길래 뒤를 돌아서 봤더니 김 부위원장은 제일 뒤쪽에 서 있었다”며 “그래서 늦게 오셔서 불렀나보다, 그 정도로 생각했었다”고 증언했다. 이 의원의 발언에서 이어지는 “자네 뭐하는 거야, 지금!”이라는 질책을 보더라도 변호인 측 주장에 다소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이 의원이 진보당의 2012년 총선 성적표를 "혁명의 진출"이라고 말했느냐, 아니면 "혁명적 진출"이라고 말했느냐도 녹음을 듣고도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은 대목이다. 검찰은 일부 녹취록을 수정하면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혁명의 진출"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반면 변호인단은 이 부분에 대해 "혁명적 진출"을 검찰이 고의적으로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광명성 2호' 발사에 대한 평가를 두고도 같은 문구가 쟁점이 되고 있다. 검찰은 이 의원이 "그런 엄혹한 조건하에서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최고의 혁명 투쟁을 했던 것이 이번 우주과학의 승리, 북남외교"라고 말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 의원이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와 핵개발에 대해 시종일관 '찬사'를 보내고 있어 문맥상으로 '혁명 투쟁'이 자연스럽다는 주장이다. 반면 변호인단은 이 의원이 "그런 엄혹한 조건하에서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최고의 혁명적 표현을 했던 것이 우주과학의 승리였던 광명성 2호"라고 말했다고 반박했다. 이 의원이 언급한 "혁명적 표현"은 광명성 2호 발사에 대한 과학적 평가라는 게 변호인단의 설명이다. '북남외교'인지 '광명성 2호'인지도 쟁점이 되는 부분이다.

광명성 2호
북한이 2009년 4월 5일 발사한 인공위성이다. 당시 북한은 "국가우주개발전망계획에 따라 운반로켓 '은하 2호'로 인공지구위성 '광명성 2호'를 궤도에 진입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북한이 사실상 장거리 미사일 발사시험을 했다'며 비난했다.

검찰은 이 의원이 "작년에 내가 찍은 사람 다 찍는댔어"라고 말했다는 입장도 고수했다. 여기서 '작년'은 이 의원이 당선된 총선이 있었던 2012년이다. 이에 대해 변호인단은 "작년에 나를 찍은 사람은 다 종북이 됐다"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강연에서 자신이 '종북'으로 몰리고 있는 현실을 소상하게 설명한 점은 변호인단의 주장에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연장선상에서 이 의원이 "가드투쟁을 안 해서 서래. 가드확보라고"(검찰) 말했는지 "실천연대친구들, 참 가슴아프다고"(변호인단)라고 말했는지도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변호인단은 이 의원이 당시 '종북 몰이'를 설명하던 도중 '실천연대'라는 단체를 예로 제시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검찰은 '가드투쟁'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치지 않았다.

'어떻게 들리나'를 넘어 '들리나 안 들리나'가 논쟁이 되는 대목도 있다. 변호인단은 녹취록 중 "4대 혁명세력이 비슷하게 역할을 할 수 있는 거야" 부분과 "그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같은 거라는 거야" 부분은 청취가 정확히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이 의도적으로 삽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맥락상 예비검속으로 탄압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하는 대목이기 때문에 이 같은 내용이 나올 수 없다는 게 이유다. 반면 검찰은 '청취 가능하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녹취록을 둘러싼 쟁점들

란음모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수원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김정운)는 ‘5.12 마리스타 수도회 모임’을 포함한 녹음파일과 녹취록을 해를 넘긴 증거조사 막바지에 증거로 채택했다.

재판 전반부에서 검찰과 변호인단은 녹음파일과 녹취록의 증거능력을 둘러싸고 첨예한 공방을 벌여왔다. 변호인단은 검찰이 신청한 녹음파일과 녹취록에 대해 취득 과정이 위법하거나 진정성, 무결성, 신뢰성 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검찰은 녹음파일을 제공한 프락치를 비롯해 국정원 수사관, 감정 전문가 등의 증인 신문을 거쳐 위법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며 이 사건의 핵심 증거가 될 수 있는 녹음파일과 녹취록에 대한 증거채택 결정을 미루며 신중을 기해왔다. 재판부는 결국 검찰 측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여 녹음파일과 녹취록을 증거로 채택했지만, 법리적 논란은 상급심에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쟁점1. 프락치가 국정원에 제출한 녹음파일은 적법하게 취득됐나?

국정원 수사관 문모 씨는 2011년 1월부터 2013년 9월까지 프락치 A씨를 통해 44차례에 걸쳐 47개의 녹음파일을 넘겨받아 12개의 녹취록을 작성했다.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문씨는 녹음파일 중 11개는 A씨가 임의로 건넨 것이고, 나머지는 법원의 통신제한조치 허가서(감청 영장)를 받은 뒤 프락치에게 녹음을 요청해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엔 사건의 핵심 사안인 ‘5.12 모임’에 대한 녹음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문씨는 “녹음기에 저장돼 있던 녹음파일을 다른 장비로 옮긴 뒤 지워 (일부 녹음파일의) 원본은 남아있지 않다”고 증언해 논란을 빚었다. 그는 A씨의 요구에 따라 그동안 4종류의 녹음기를 제공했는데, 그중 초기에 제공한 녹음기는 별도의 외장메모리 장치가 없이 기기 자체에 녹음이 됐는데 녹음 용량의 한계로 인해 계속 원본 파일을 지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핵심 증거로 제기된 ‘5.12 모임’에 대한 녹음파일은 녹음기 안에 원본으로 남아 있다고 문씨는 강조했다.

이에 대해 변호인단은 A씨가 초기에 임의제출한 녹음파일들이 사실상 수사기관이 주체가 돼 프락치의 동의만 받고 상대방인 피고인 등의 동의는 없는 상태에서 그들의 대화 내용을 녹음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사실상 ‘제보자의 임의제출’이 아닌 ‘수사시관이 직접 녹음한 것’과 다름없다는 의미다. 변호인단은 A씨가 녹음파일을 국정원에 임의제출하기 이전인 2010년 5월 문씨를 만나 그에게 녹음기를 사달라고 요구했고, 이에 문씨는 “적발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까지 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녹음파일이 원본일 경우나 디지털포렌식 전담 수사관이 투입된 경우에는 녹음파일을 증거로 채택했다.

국정원은 그동안 이른바 ‘RO 회합’에 참석했던 내부 제보자가 스스로 문제의식을 느껴 녹음파일을 건넸다고 주장했지만, 그 이전에 그가 국정원이 직접 건넨 녹음기를 가지고 녹음을 했다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수사기관인 국정원이 범죄수사를 위한 통신제한조치 허가서 등을 법원으로부터 발부 받아야 했지만, 그것이 없었기 때문에 해당 녹음파일은 ‘불법녹음’에 해당된다는 게 변호인단의 주장이다.

불법 녹음 파일?
변호인단은 이와 관련 2010년 대법원 판례를 들었다. 당시 녹음자 O씨가 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상태에서 검사가 O씨를 불러 이미 압수된 그의 휴대전화기를 다시 건네주면서 검사가 보고 있는 앞에서 피고인과 통화를 하도록 하고, 그 통화내용을 녹음하도록 한 사건이 발생했다. 녹음 여부와 녹음 시기, 장소, 상대방 등의 모든 결정이 수사기관인 검사에 의해 이뤄졌을 뿐 아니라 녹음과정 자체에도 검사가 적극 관여했고, 녹음파일의 증거 사용 여부도 녹음 이전에 검사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범죄수사를 위한 통신제한조치 허가서 등을 받지 않은 불법감청에 해당된다며 해당 녹음파일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한편, 이번 내란음모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검찰은 이 대법원 판례를 반대로 해석해 통신제한조치 허가서를 법원으로부터 받은 경우에는 이 같은 제3자에 위탁을 통한 집행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제보자가 직접 주체가 돼 녹음했기 때문에 위법한 것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수사기관의 아무런 관여 없이 제보자가 스스로 국정원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제보함으로써 국정원이 내사에 착수하게 됐다는 것이다. 또 국정원 수사관들은 제보자가 협조다 요청해 왔기 때문에 이후 녹음장비를 지원한 데 불과하다고 항변했다.

변호인단은 제보자가 수사기관의 ‘위탁자’ 신분으로 녹음해 제출한 점에 대해서도 불법적 조치라고 주장했다. 통신제한조치 허가서를 받은 경우라도 수사기관이 아닌 제3자에게 녹음을 위탁하는 것은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프락치가 녹음한 내용은 그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변호인단은 A씨가 통신제한조치 허가서에 명시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아닌 내란음모 혐의로, 또 불특정 다수의 대화를 녹음한 것은 위법이기 때문에 증거가 될 수 없다고도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우편물 검열 및 전기통신 감청과 관련해 ‘통신기관 등’에 집행 위탁이나 협조 요청을 할 수 있도록 명시돼 있는데, 이는 집행의 실효성 확보를 위한 것일 뿐 우편물 검열 및 전기통신 감청 이외에는 집행위탁·협조 요청을 금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없다며 녹음 위탁은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특히 “이 사건은 수사관이 직접 현장에 침입해 감청하거나 사전에 침입해 감청 시설 설치, 고도장비를 이용해 원거리 감청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감청을 집행한다는 의미는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집행을 주재한다는 뜻이지, 직접 손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통신제한조치 허가 범위와 관련, 검찰은 통신비밀보호법은 대화 참여자 수나 ‘대화’의 구체적 행태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고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허가의 범위 내에서 수사기관이 목적에 맞게 선택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또 국가보안법 위반과 내란선동, 내란음모는 동일한 범죄 주체에 의해 발생하고, 인적·물적·인과적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관련된 범죄’라고 규정했다.

이 같은 논쟁 속에서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을 대부분 수용했다. 재판부는 녹음파일을 증거로 채택하는 데 있어 먼저 국정원이 프락치 A씨에게 통신제한조치 허가서에 따른 수사기관의 녹음 집행을 위탁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통신비밀보호법의 취지가 제3자의 집행위탁 배제로 해석되지 않는다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재판부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와 같이 은밀히 행해지는 조직범죄와 관련돼 있거나 그 집행 주체(국정원 수사관)가 녹음 청취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할 경우 (제3자에게 집행을 위탁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녹음된 대상과 내용이 통신제한조치 허가서에 명시된 범위를 직접적으로 벗어나더라도 증거로 인정될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5.12 모임’의 경우 “A씨가 자신이 있던 자리에서 그가 들을 수 있었던 발언을 녹음한 것은 집행의 범위에 포함된 것으로 적법한 것”이라고 밝혔다.

쟁점2. 녹음파일 원본 및 사본의 위변조 가능성은 없나?

녹음파일 원본 및 사본의 조작·편집 가능성은 증거채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다. 재판부는 증인 신문 등을 통해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변호인단은 우선 녹음된 대화내용이 모두 ‘디지털 증거’라고 전제했다. 일반적인 디지털 파일은 위변조가 가능하기 때문에 음성 녹음파일 역시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변호인단은 디지털 파일처럼 녹음파일도 원본이 없거나, 원본이 있더라도 ‘원본 절대보전의 원칙’에 의한 원본성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증거능력을 가질 수 없다고 역설했다.

부득이 원본을 폐기할 수밖에 없어 사본이 증거로 제출된다고 하더라도, 원본에서 사본을 만들고, ‘해시값’을 산출해 서명 및 봉인하는 일련의 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등 신뢰성을 담보해 낼 수 있는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는 게 변호인단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조치가 이 사건에선 전무하기 때문에 해시값이 존재하는 녹음파일이라도 증거능력을 부여할 수 없다고 강변했다.

해시값(Hash Value)
디지털 증거의 동일성을 입증하기 위해 파일 특성을 축약한 일종의 고유번호로, 특정 파일의 손실·압축 과정을 드러냄으로써 전자 기록의 변조 여부를 보여준다. 조작되지 않은 사본은 원본과 해시값이 같이 나오기 때문에 신뢰할만한 참여인의 입회 하에 원본 파일의 해시값을 미리 산출해놓을 경우 사본의 무결성을 입증할 수 있다.

이와 관련 변호인단 측 증인인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 김인성 한양대 교수는 “(녹음파일 원본을) 취득한 시점에서 해시값을 산출해 종이에 적고, 그 종이에 날짜와 작업자, 그리고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제3의 사람들이 사인한 것이 해시값”이라며 “해시값이 효력을 가지려면 그 종이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원본과 동일한 해시값이 있기 때문에 사본도 증거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김 교수는 “만약 하드디스크를 떨어뜨리고 나면 데이터가 변경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원본이라고 해도 똑같은 해시값을 낼 수 없다”며 “디지털 자료는 훼손이 굉장히 쉽기 때문에 사인하고 봉인하는 절차가 이뤄지고, 또 증거조사를 할 때도 그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매 과정마다) 동영상으로 촬영돼야 한다. 그것이 ‘보관의 연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디지털 포렌식
‘컴퓨터 법의학’이라 불리며, 전자증거물을 사법기관에 제출하기 위해 휴대폰, PDA, PC, 서버 등에서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는 디지털수사 과정을 뜻한다. 대검찰청 등 주요 수사기관마다 포렌식 센터(forensic center)가 개설돼 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일반 디지털파일과 달리 음성 녹음파일은 위변조가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위변조 시도가 있을 수 있는 파일 관리를 어떻게 했느냐 보다는 결과적으로 녹음된 내용에 편집·조작이 있느냐를 확인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검찰은 특히 대법원 판례를 들어 원본이 사본으로 복사되는 과정에서 편집되는 등의 인위적 개작 없이 원본의 내용 그대로 복사된 것이 입증된다면, 사본에 녹음된 대화 내용에 대해서도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입증 방법이 구체적으로 법에 명시돼 있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 그동안 녹음파일을 건넨 제보자(프락치), 녹음파일을 건네 받거나 해시값을 산출한 국정원 수사관들, 위변조 여부를 감정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전문가 등의 증언을 토대로 원본 및 사본의 ‘무결성’을 주장했다.

2012년 9월 대법원 판례
2012년 9월 대법원은 “대화 내용을 녹음한 파일 등의 전자매체는 그 성질상 작성자나 진술자의 서명 또는 날인이 없을 뿐만 아니라 녹음자의 의도나 특정한 기술에 의하여 그 내용이 편집, 조작될 위험성이 있음을 고려하여, 그 대화 내용을 녹음한 원본이거나 원본으로부터 복사한 사본일 경우에는 복사과정에서 편집되는 등의 인위적 개작 없이 원본의 내용 그대로 복사된 사본임이 입증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디지털 증거 전담 수사관이 투입되기 전 이뤄진 원본파일 삭제, 해시값 불일치, 수사관 임의의 파일명 변경 등으로 인해 원본 훼손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본이든 사본이든 가리지 않고 ‘5.12 모임’을 포함해 44개 중 32개 녹음파일을 증거로 채택했다.

재판부는 이들 녹음파일의 감정 결과 편집 흔적이 발견되지 않고 주파수와 해시값이 일치한 것으로 보아 원본과의 동일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또 녹음파일이 봉인되지 않는 등 관리에 소홀했던 점은 부적절하나, 당시 사건을 관여했던 국정원 수사관과 프락치 A씨 등이 법정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위변조는 없었다는 것을 소상히 설명한 점을 받아들여 원본과의 동일성, 무결성을 인정했다. 채택된 녹음파일에 해당되는 녹취록에 대해서는 일부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증거능력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보는 한편, 대화내용이 100% 일치할 수 없다는 본질적 한계를 인정해 모두 증거로 함께 채택했다.

재판부는 결국 녹음된 음성은 다른 디지털파일과 달리 조작되기 어렵다고 보고, 결정적인 하자가 없는 한 증거채택 기준을 완화해 적용한 셈이다. 변호인단은 음성 녹음파일은 디지털파일처럼 조작되기 쉽고 감정을 통해서도 위변조 여부를 확인하긴 어렵다는 것을 직접 실험을 통해 증명해보이기도 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 판례는 음성 녹음파일과 일반 디지털파일을 구분하지 않고 있어 향후 법리적 논쟁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재판부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녹음파일이 내란음모 혐의를 입증할 핵심 증거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가 ‘5.12모임’ 녹음파일 등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을 경우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혐의는 아무런 증거가 없어지고 재판 자체가 사실상 끝나게 되는데, 재판부가 이런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법원 안팎에서 나온 바 있다. 재판부로서는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정부가 직접 제기한 사건이라는 ‘현실’을 고려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결국 재판부의 녹음파일 증거채택은 ‘재판부가 직접 들어보고 판단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재판부가 “녹음파일은 내용의 진실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런 진술을 했는지에 관한 것”이라며 ‘전문법칙(傳聞法則)’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힌 것도 같은 의미다. 즉, 재판부는 녹음파일을 통해 당시 어떤 대화가 오고갔다는 ‘사실’을 확인하되, 실제 내란음모라는 행위를 했느냐는 따로 판단하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5.12 모임’의 경우 통합진보당 당원이 포함된 변호인 측 증인들도 모임의 존재나 강연의 주요 내용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았다. 다만 변호인 측 증인들은 증언을 통해 당시 강연이 ‘내란 음모’가 아닌 ‘반전평화 운동’이 중심이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 vs 검찰

5월 12일,

이석기가 말하려 한 것

른바 ‘5.12강연’ 혹은 ‘5.12 회합에서의 연설’은 내란음모 사건의 가장 중요한 증거가 되었다. 애초 녹취록 이외에도 ‘결정적 증거’가 있음을 호언했던 국정원은 재판 과정에서 이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에 따라 5.12 강연의 내용은 내란음모 혐의의 유무죄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 의원은 그날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일까?

5.12 강연을 해부해보기 전에 들어보아야 할 또 하나의 연설이 있다. 강연이 있기 2주 전 국회에서 이석기 의원이 한 연설이다. 대정부 질의의 형식을 띤 이 연설에서 이 의원은 몇 가지 아이디어를 발표했다.

동영상 - 이석기 의원의 대정부질의

2013년 4월 25일 국회 본회의장. 이 자리에서 이 의원은 2주 뒤 5.12 강연에서 나오는 주요한 아이디어를 모두 꺼낸 바 있다.

이 의원은 이 연설에서 진보당 소속 국회의원으로서는 다소 이례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하면서 “북의 핵 보유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기존의 해법은 실패했다”는 것을 전제로 노무현 정부 당시 합의된 10.4 선언을 인용해 “한반도의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서 남․북․미․중 4자회담을 제안”했다.

이 의원이 이 연설에서 내놓은 주요 주장은 이렇다.

- 북한의 핵은 인정하기 싫더라도 하나의 객관적 현실이다
- 국제제재는 도움이 되지 않았고, 6자회담이나 9.19 공동성명은 이제 작동할 수 없다
- 2013년 3월은 북한의 핵 억제력과 미국의 핵우산이 맞대결한 시기였다
- 여진이 이어지고 있는 현재(2013년 4월)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위기이다
- 한반도의 전쟁 위기는 역설적으로 민족사의 대전환기라는 새로운 기회를 열어 놓았다
- 2013년 7월 27일(정전 60주년)을 한반도 종전을 선언하는 계기로 활용하자
- 한국이 앞장서서 남북미중의 4자 대화를 시작하자
-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신뢰프로세스라는 접근법을 발전시키면 이런 변화는 가능하다

새삼스레 지난 해 4월의 국회 연설을 짚어보는 이유는 이 연설이 내란음모의 핵심 증거가 된 5.12 강연의 요지와 많은 부분에서 겹치기 때문이다. 4월 25일의 국회연설이 박근혜 정부를 상대로 한 연설이라면, 5월 12일의 마리스타 강연은 진보당 당원을 상대로 한 연설이다. 말투나 문구에서는 큰 차이가 있지만 그 요지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는 것이다.

4월 25일의 국회연설 vs 5월 12일의 마리스타 강연

법정에서 공개된 이 의원의 강연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됐다.

우선 2012년 3~4월의 전쟁위기에 대한 분석, 그리고 전쟁을 의식한 사회 분위기가 경색될 경우 진보당원들에게 닥칠 ‘예비검속’에 대한 우려, 마지막으로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물질 기술적 준비'의 강조가 그것이다.

강연에서의 정세분석은 4월 25일 국회 연설과 큰 차이가 없다.

국회 연설 당시 이 의원은 정 총리에게 “지난 1월 척 헤이글 미국 국방부장관이 자신의 인준청문회에서 북한을 실질적 핵 파워로 규정했습니다. 알고 계시지요?”라고 질문한 후 “북한 핵을 인정할 것인가의 여부는 객관적인 사실을 어떻게 다룰지에 관한 문제입니다. 설사 불편하고 인정하기 싫은 진실일지라도 냉정한 이성으로 현실과 마주해야 합니다. 북의 핵 보유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기존의 해법은 실패했다고 봐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5.12 강연에서도 이 의원은 미국 측 자료를 여러 차례 인용하면서 “북은 핵 보유 강국이 되었다는 것, 북은 미국의 위협세력이라는 것, 3월의 정전협정 무효화를 통해서 이제는 조미간의 기존의 낡은 관계를 기대할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긴 시간의 강연이었던 만큼 인용한 근거들이 자세하고 표현이 다소 거칠어진 면이 있지만 내용은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이 의원이 3~4월의 전쟁 위기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의원은 국회 연설에서도 ‘한국 전쟁 이후의 최대 위기’라고 표현했고, 5.12 강연에서도 “실제 4월 달은 전쟁이었다”면서 “한반도의 핵 현실이 4월 달에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이 국회연설에서 사용한 ‘북의 핵 억제력과 미국의 핵우산의 충돌’이라는 관점은 5.12 강연에서도 반복됐다.

두 연설에 모두 드러난 이 의원의 관점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전쟁이라는 ‘위기’가 다른 차원에서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사고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사실 어떤 갈등이 해결에 이르자면 반드시 위기를 지나게 된다는 사고는 이 의원만의 독특한 시각은 아니다. 1980년대 운동권에게 익숙한 ‘변증법적 사고’이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국회 연설에서 “한반도의 전쟁 위기는 역설적으로 민족사의 대전환기라는 새로운 기회”라고 지적했는데, 5.12 강연에서도 질의응답과 마무리 발언을 빼고서도 12번이나 ‘전환기’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전쟁이라는 파국이 닥쳐올 수도 있지만, 북미간의 대결 양상이 바뀌면서 평화와 통일이라는 민족사적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전환기’라는 표현에 담겨 있었다.

국정원과 검찰은 이 의원의 발언에 담긴 위기와 기회라는 두 측면에서 위기의 면에 주목했다. 이 의원 등이 “정세를 전쟁 상황, 즉 혁명의 결정적 시기가 임박한 것으로 보고 전쟁에 대한 물질적 준비, 빨치산과 같은 배후 군사전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의 주장은 두 가지 면에서 오해로 보인다. 우선 이 의원이 거론한 전쟁 위기는 미국과 북한, 특히 미국에 의한 북한 공격이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법정 진술에서도 “북이 독자적으로 침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면서 그 이유로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공격한 역사적 사례가 없으며, 시진핑 체제 하에서 중국의 협력을 얻기는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한반도의 긴장 격화에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세력은 미국”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검찰은 6.25와 같은 상황, 즉 북한이 전면적으로 남침을 해 올 때 남측에서 이에 동조한 세력들이 ‘빨치산’과 같은 배후 군사전을 벌이는 상황을 염두에 뒀다.

검찰의 오해는 ‘혁명의 결정적 시기’라는 표현으로 이어진다. 사실 ‘혁명의 결정적 시기’라는 표현은 강연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결정적 시기’라는 표현은 오랜 공안 사건의 경험에서 나온 것인데, 검찰과 1980년대 운동권 모두에게 꽤 익숙한 표현이다. 혁명의 시기를 준비기와 결정적 시기로 나누고, 준비기에는 역량 축성에 주력하고 결정적 시기에는 봉기를 통해 정권을 전복한다는 것이 1980년대 이른바 ‘NL’론의 일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 이론은 아직 결정적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과격한 투쟁을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했고, 이른바 ‘NL’론이 운동권의 다수를 점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검찰이 내세운 ‘NL’론에 따르더라도 결정적 시기는 정권에 비해 운동권의 역량이 압도적 우위에 있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인데, 2013년 상반기의 상황이 그러했다고 볼 근거는 없다. 이 의원도 법정 진술에서 “박근혜 정부 초기에 국내 지지율이 50% 이상인데, 당시를 결정적 시기로 보는 바보는 없을 거라고 본다”고 반박했다.

‘물질 기술적 준비’라는 신조어가 낳은 혼란

국회 연설과 5.12 강연이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었다. 듣는 사람이 다른 만큼 주문 사항도 달랐다는 의미다. 이 의원은 박근혜 정부를 대상으로 한 국회연설에서는 정부의 주도적 역할과 남북미중 4자회담이라는 해법을 주문했지만, 진보당의 당원을 대상으로 한 5.12강연에서는 전쟁이 일어날 경우 예상되는 ‘예비검속’과 같은 탄압에 대한 우려와 전환기에 어울리는 ‘물질 기술적 준비’를 강조했다.

2012년 이후 집중적인 ‘종북몰이’에 시달려왔던 진보당원들이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의 ‘탄압’에 쉽게 공감했던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 의원은 강연에서 “우리가 역사적인 대전환기이고 승리의 국면이기는 한데 남측의 혁명하는 사람들은 고난의 행군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고, 이런 의미의 발언은 여러 차례 이어진다.

문제는 ‘물질 기술적 준비’라는 신조어에 있었다. 물질 기술적 준비라는 표현은 그 동안의 공안 사건에도 나오지 않고, 5.12 강연 참석자들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법정에서 공개된 녹음 파일을 들어보면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던 강연이 물질 기술적 준비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상당히 경직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강연 현장에서도 상당한 긴장이 흘렀다는 의미다.

검찰은 ‘물질 기술적 준비’라는 표현을 군사적 준비와 동일시했다. 마리스타 강연의 목적 자체가 “전쟁 상황에서 국가기간 시설 파괴 등 구체적 준비방안을 논의하고 후방교란 사회혼란 책동을 수행하기로 결의”한 것이라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 의원의 주장은 전혀 다르다. 이 의원은 법정 진술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우리가 실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오직 공멸일 뿐”이라면서 “전쟁이 발발하지 않도록 나서야 되는데, 빈손으로 맨주먹으로 나서야 되겠는가, 전쟁 가능성을 제압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물질 기술적인 준비를 해야 된다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동영상 - “나는 이렇게 들었다”

‘말’은 상대와의 소통을 위한 도구다. 5.12강연의 참석자 문예련씨에게 그날의 말은 과연 내란음모였을까?

그러나 ‘물질 기술적 준비’를 오해한 것은 검찰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5.12 강연에서 이뤄진 분반 토론에서 검찰이 근거로 든 여러 아이디어들이 나온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총을 드는 것부터 시작해서”(김근래 경기도당 부위원장), “군사 매뉴얼 마련”(이영춘)과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물론 이런 과격한 발언 뒤에 웃음이 이어지거나 아예 “뜬 구름 같은 이야기”(홍순석 경기도당 부위원장)라는 평가도 있었다. 종합적으로 볼 때 분반토론의 사회를 본 간부들도 물질 기술적 준비가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대해서는 혼란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정치군사적이란 말을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물질 기술적이란 표현을 썼는데, 오히려 생소한 개념이라 상당한 혼란이 있었던 것 같다”고 인정했다. 이 의원은 법정 진술에서 “총, 칼과 같이 굉장히 모험주의적, 운동권식 표현으로 말하면 좌경 맹동주의적 발언을 하는 걸 보면서, ‘아, 이게 강연 취지가 전혀 엉뚱하게 해석하고 있구나’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5.12 강연 현장에서도 이 의원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 “총, 갖고 다니면 안 된다”, “표현에 급진적 단어를 많이 넣지만 현실은 첨예한 이해관계에 비껴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 것으로 확인된다.

강연의 전체 취지와 무관하게 이 의원이 ‘전투적’ 표현을 즐겨 쓰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처음 녹취록이 언론에 공개되었을 때 여론의 큰 반향을 얻은 데는 이런 표현들이 큰 영향을 끼쳤다. 검찰은 이 의원이 “총화, 초소, 자력갱생, 간고분투 등 북한식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볼 때 내면화된 북한 추종의식을 드러낸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그 말도 잘 들으면 상당히 재밌는 말도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단어와 표현을 가지고 사람의 사상을 규정하는 것만큼 위험한 건 없다”고 반박했다.

5.12 강연은 ‘내란음모’가 될 수 있나

정의 핵심 공방은 5.12 마리스타 수도회에서 열린 정세강연회가 과연 내란 결의를 모의(음모) 혹은 선동한 것에 해당하는 지의 여부에 있다. 여기서 하나의 전제는 ‘내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내란과 관련해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두 가지의 판례가 있다. 하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씌워진 1980년의 ‘내란음모’이고, 또 하나는 1997년 확정된 전두환 노태우의 ‘내란죄’다.

우선 형법의 조문은 아래와 같다.

제87조(내란)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자는 다음의 구별에 의하여 처단한다.
1. 수괴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한다.
2. 모의에 참여하거나 지휘하거나 기타 중요한 임무에 종사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 살상, 파괴 또는 약탈의 행위를 실행한 자도 같다.
3. 부화수행하거나 단순히 폭동에만 관여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한다.

제88조(내란목적의 살인)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한다.

제89조(미수범) 전2조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제90조(예비, 음모, 선동, 선전) ① 제87조 또는 제88조의 죄를 범할 목적으로 예비 또는 음모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나 유기금고에 처한다. 단, 그 목적한 죄의 실행에 이르기 전에 자수한 때에는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한다.
②제87조 또는 제88조의 죄를 범할 것을 선동 또는 선전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

제91조(국헌문란의 정의) 본장에서 국헌을 문란할 목적이라 함은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함을 말한다.
1.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
2.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

형법에서 내란죄는 각칙의 첫 번째 항목이다. 1조에서 86조까지가 총칙인데, 여기서는 죄의 성립과 형의 감면, 미수범, 공범, 누범, 형의 종류와 같이 형법 전반에 적용되는 원칙을 다룬다. 각칙의 첫 번째에서 내란죄를 다루는 것은 법질서가 결국 ‘국가의 존립’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첫 번째가 국가 자신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87조에 따르면 내란이란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하는 행위다.

국토의 참절은 일부 영토에서 ‘해방구’를 선언하거나 ‘임시 정부’를 수립하는 행동 같은 것인데, 일제 치하의 독립운동이 여기에 해당한다. 식민지 시기 조선은 당시의 현행법으로는 일본의 국토였는데, 조선의 독립운동은 국토를 참절하자는 것이 된다. 실제 일제 당시 조선고등법원은 3.1운동에 대해 ‘내란’이라고 판단하기도 했다. 이석기 의원의 강연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남은 것은 국헌문란이다. 형법 91조는 국헌문란에 대해 따로 규정을 두고 있다. 쉽게 말해 ‘정권 타도’나 ‘전복’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조항은 다소 논쟁적이다.

이를테면 1960년의 4.19는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로 이어졌는데, 이것은 내란일 수 있을까? 4.19는 내란죄로 기소되지 않았고, 따라서 법원의 판례도 없다. 우리 사회에서 사법 기관이 정상화되었다고 할 1987년 이후의 유일한 판례는 전두환, 노태우의 군사반란을 내란죄로 판결한 것이다. (대법원 1997.4.17. 선고 96도3376)

대법원은 이 사건 판결에서 전두환 씨 등이 헌법기관인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을 강압하여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한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국헌문란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사실 전 씨 등이 실권을 장악한 1979년 12월 12일의 이른바 ‘12.12사태’는 군사 쿠데타의 전형에 해당한다. 이처럼 군대를 동원해 권력을 장악한 행위가 ‘내란’에 해당한다는 것은 복잡한 법리를 동원하지 않아도 쉽사리 이해할 만한 일이다. 마리스타 수도회에서 강연이 있었던 2013년 5월 전후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도 물론이다.

반국가단체가 특정되지 않은 내란음모

법리가 다소 복잡해지는 것은 ‘내란’이 ‘내란음모’로 내려오면서다. 형법은 별도의 규정이 없는 한 실행하지 않은 ‘음모’는 처벌하지 않는다.(28조) 생각만 한 것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내란이나 폭발물을 사용한 범죄, 구금된 자의 탈주, 방화, 기차 전복, 비행기 탈취, 통화 위조, 살인 등 중죄의 경우엔 ‘음모’에 대한 처벌을 별도로 두고 있다.

과거 군사정권은 민주화운동 세력을 상대로 ‘내란음모’를 여러 차례 적용했다. 비록 독재정권 시절이긴 하지만 법원의 판례도 꽤 축적되어 있다는 의미다. 그 대표적 사건이 1974년의 인혁당 재건위 및 민청학련 사건과 1980년의 김대중내란음모 사건이다.

1974년 박정희 정권은 “민청학련이라는 지하조직이 불순세력의 배후조종 아래 사회 각계각층에 침투해 인민혁명을 기도한다”라는 특별 담화를 발표하고 곧이어 긴급조치 4호를 발령했다. 민청학련의 배후 조직으로 지목된 것이 바로 인혁당 재건위인데 군사정권은 인혁당 재건위와 민청학련을 정부 전복을 기도한 ‘반국가단체’로 지목하고 이들의 시위 계획을 내란음모로 규정했다. 이 사건으로 도예종, 서도원 등 8명은 결국 사형을 당했고, 이는 명백한 ‘사법살인’으로 우리 사법부의 오점으로 남았다. 대법원은 2010년 12월 전원합의체를 거쳐 이 판결을 폐기했다.

김대중내란음모 사건도 유사하다. 다만 김대중 사건에서는 재일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이 반국가단체로 지목됐고, 김대중이 이 단체의 결성을 준비하고 의장 활동을 했다는 부분이 강조됐다. 시위계획 등이 내란음모로 간주된 것은 마찬가지다. 이 사건 판결 역시 2004년 대법원에 의해 폐기됐다.

두 사건에서 ‘반국가단체’가 특정된 것은 왜일까? 반국가단체는 국가보안법상의 규정으로 “정부를 참칭(僭稱)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단체”를 말한다. 즉 반국가단체의 존재는 그 자체로 ‘내란음모’를 뒷받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석기내란음모 사건에는 반국가단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검찰은 지하혁명조직이라는 ‘RO’를 상정하였는데, 그렇다고 이석기 의원 등에게 ‘RO’ 구성이나 가입죄를 적용하지는 않았다. ‘RO’가 반국가단체라는 규정은 물론 없다. 매우 모호하게 처리한 셈이다.

그렇다고 ‘공인된’ 반국가단체인 북한이 등장한 것도 아니다. 물론 국정원이 이석기 의원과 북한과의 연계를 찾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건의 초기에 국정원이 장담하던 ‘녹취록 이외에도 더 있다던 결정적 증거’는 아마 이것이었을 테다. 하지만 국정원은 이를 찾아내지 못했다. 내란음모 사건의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놀라운 논리를 내놓았다. 이른바 ‘RO’와 북한의 연계는 밝혀내지 못했지만, 북과의 연계가 없이 독자적인 정세판단으로 내란을 음모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위험한 집단이라는 것이다. 원래 ‘북과 연계된 종북세력’이어야 마땅했던 이들은 이렇게 ‘독자적이므로 더 위험한 내란세력’이 되었다.

시간을 최근으로 돌려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가 ‘내란’ 혹은 ‘내란음모’에 해당하는 지도 생각해 볼 대목이다. 이를테면 2008년 촛불 시위 당시 시위대는 ‘MB OUT’이라는 구호를 외쳤고, 청와대 앞으로 행진을 시도하기도 했다. 당시 참가자들 전부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일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하야’를 진심으로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경우에 ‘내란음모’는 적용될 수 있을까?

여기에는 참고할 만한 흥미로운 판례가 있다. 1964년 벌어진 한일회담 반대 시위, 이른바 6.3사태 주역인 김중태 씨의 경우다. 김 씨는 이 사건으로 잠시 옥고를 치렀지만 곧 출옥했는데 이듬해인 1965년엔 이른바 ‘민비연’ 사건으로 다시 구속된다. 검찰은 그에게 내란음모 및 선동죄로 징역 15년을 구형했으나 김 씨는 1966년 대법원의 무죄 판결로 석방된다. 당시 대법원의 판결 요지는 이렇다.

“일부 피고인의 의도는 학생시위를 체계 있고 조직화된 것으로 광범위하게 전개하여 한일협정비준의 무효화를 하자는 데 있었을 뿐, 직접적으로 국가의 기본조직을 강압으로 해산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케 하자는 것이 아니었고 다만 민중이 시위에 호응함으로써 폭동화하면 국회가 스스로 해산하게 되리라는 사태의 현출(顯出)을 예상한 것에 불과한 것이라 할 것이므로 국헌을 문란케 할 목적으로 폭동할 것을 음모하였다거나 선동한 것이라 볼 수 없다”(대법원 1968.3.5. 선고 66도 1056)

정세가 바뀌어 실행되지 않은(?) 내란음모

시위 계획과 내란 사이의 불분명한 관계와는 별도로 실제 이석기 의원 등이 5.12 강연에서 전국적이고 대규모적인 시위를 계획했다는 흔적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분반으로 나뉘어 토론한 참가자들 역시 비슷하다. 오히려 분반토론에서 나온 의견들은 과격하지만 다소 분산적인 아이디어들이었다. 총이 거론되거나 시설 파괴를 암시하는 단어들이 나온 것도 이 때다.

그렇다면 대규모 시위가 아닌 개별적 행동의 급진성(과격성)은 내란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이와 관련해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사건 초기 영국에서 벌어진 ‘트라이던트 사건’을 거론한 적이 있다. 트라이던트 사건은 제주 강정마을을 방문한 적도 있는 영국의 반전운동가 앤지 젤터가 1999년 6월에 영국의 핵 잠수함을 부순 사건이다. 젤터는 다른 여성활동가 두 사람과 함께 스코틀랜드 파슬레인의 해군 기지에 정박해 있던 핵 잠수함에 잠입해 컴퓨터와 서류 등을 파손했다. 이 사건으로 젤터는 5개월 간 수감되었지만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젤터는 이 외에도 인도네시아로 수출되기 위해 제작되고 있었던 전투기를 파손한 적도 있었다. 영국 법원은 그녀가 핵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세계시민으로서 행동한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인 것이다.

당연히 이런 행동은 내란과는 관계가 없다. 이런 탓인지 사건 초기에 보수층에서도 내란음모 대신 ‘여적죄’를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여적죄는 형법 93조에 나오는 ‘적국과 합세하여 대한민국에 항적한 죄’를 의미하는 데, 법정형도 사형뿐인 중범죄다. 그러나 여적죄는 외환의 죄에 속하는 데 교전 중이 아닌 상황에서 외환의 죄를 적용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판례는커녕 학계의 검토도 거의 없는 상태다. 그래서인지 국정원과 검찰은 이번 사건에 이를 적용하지 않았다.

분반토론에서 나온 의견들이 과연 내란죄에 해당할 만큼 ‘위험한 행위’인가에 대해서도 검찰과 변호인은 의견을 달리 했다. 검찰은 이 의견들이 “한 지방의 평온을 해치기에 충분한 논의 내용”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변호인들은 이 의견들이 산발적으로 나온 아이디어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증인으로 나온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은 피고인들의 의견이 진지한 것이었다는 전제 위에서 보더라도 “소꿉장난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 했다. 김 편집장은 “국가 핵심기간 시설을 타격하려면 적어도 특전사 3개 여단 정도의 잘 조직된 무장력이나 그를 지원하는 치밀한 계획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일축했다.

검찰의 공소가 5.12 강연 전후의 정황으로 내란음모를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것도 문제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이른바 ‘RO’가 2013년 3월 경 ‘3대 지침’을 내리고 세포별 결의대회를 진행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5월 12일에 내란의 음모에 이르렀다고 주장해왔다. 이러한 검찰의 인식은 프락치 A씨의 진술에 의한 것이다.

A씨는 법정에서도 “구체적인 것은 3월 달에 3대 지침을 전체적으로 받았었고 5월 12일 마리스타에서는 지금의 이 대격변기 반미대결전을 맞을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결의를 논의했던 자리”라고 진술했다. A씨에 따르면 3대 지침은 △전쟁에 대비해서 연대 조직을 급하게 시급하게 꾸릴 것, △광우병 사태처럼 대국민 선전전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 △지역에서 미군 기지나 통신시설 등을 조사할 것으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A씨에게 지침을 전달했던 홍순석 피고인은 3대 지침이 2013년 3월 6일자로 한국진보연대에서 작성한 ‘한반도평화수호 비상행동지침’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 문서에는 연대 조직의 구성이나 대국민 선전활동은 있지만, 미군기지 등에 대한 조사 활동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A씨 역시 법정에서 “3대 지침에 따른 시설 조사와 같은 행동을 5.12 강연 전후에 했느냐”에 질문에 “(자신이 활동해 온) 수원에는 그런 시설이 없어서 따로 조사 같은 걸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A씨는 또 “5월 이후 정세가 순화되는 측면이 있어서 마리스타 강연 이후에 별다른 행동은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정세가 바뀌어 내란음모는 실행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정원이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공개수사로 전환한 것은 8월 말이니 내란음모가 행동에 옮겨지는 것을 막은 주체가 국정원이 아니었음은 확실하다. 국정원은 내란음모를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저지하지 않고 3개월 넘게 기다린 셈인데, 이런 경우는 군사정권 시절의 판례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변호인 vs 검찰 RO의 실체

RO(Revolution Organization:혁명 조직). 국가정보원과 핵심 증인인 A씨가 이른바 ‘내란음모’ 사건의 주체로 지목한 조직의 명칭이다. 이들은 RO가 ‘민혁당(민족민주혁명당)에 뿌리를 두고 주체사상 등이 이념이며 단선연계 복선포치 등 지하당 운영 방식을 따르는 혁명조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국정원은 문제의 지난해 5·12 서울 합정동 마리스타 교육수사회 강연을 바로 RO의 ‘내란음모’를 위한 회합으로 보고 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은 이 같은 국정원과 A씨의 주장을 기반으로 작성됐다.

검찰은 이 의원에 대한 공소장에서 총 68쪽 중 22쪽 분량을 할애하며 ‘RO의 실체’ 규명에 공을 들였다. ‘내란음모죄’가 구성되기 위해선 내란음모 주체의 조직성이 입증돼야 한다. 그러나 정작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는 기소에서 제외됐다. 검찰은 ‘내란음모’의 사전 단계로 RO의 존재가 중요하기 때문에 공소장 내용에 포함시켰다는 입장이지만, 그 실체에 대해서는 재판이 마무리된 현재까지도 오리무중이며 오히려 의구심만 증폭된 상황이다.

동영상 - 이석기 구속동의안 처리를 위해 본회의장에 선 황교안 법무장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이 처리되던 지난해 9월 4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이 RO의 결성시기, 결성장소, 결성인원을 묻자 “수사 중”이라고만 답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이 처리되던 지난해 9월 4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이 RO의 결성시기, 결성장소, 결성인원을 묻자 “수사 중”이라고만 답했다. 검찰 역시 같은 달 26일 수사결과 발표 당시 RO의 결성시기, 북한과의 연계성, 자금 등을 묻는 질문에 “수사 중”이라는 답변만 반복했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피고인(이석기 의원)은 2003. 8. 출소를 전후하여 민혁당의 실패 원인을 분석하며 ‘영도체계’, ‘조직보위’, ‘사상학습과 검열’, ‘대중적 혁명역량’ 등이 한층 강화된 새로운 지하혁명조직의 사업방향을 구상하였고, 이와 같은 구상은 현재 ‘RO’ 조직을 통해 상당부분 실현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과거 민혁당과 RO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또 RO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결성됐는지 검찰은 밝혀내지 못했다. 변호인단은 공소장의 내용에 대해 “RO의 결성 주체, 시기, 장소를 특정하지 못했다”며 “(민혁당을 언급한 것은) 결성 시기를 이석기 의원 출소 시기에 짜 맞추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재판 과정에서 핵심 증인인 국정원 프락치 A씨의 진술은 RO의 실재 여부에 대해 더욱 의문을 자아냈다. A씨는 조직성원이나 총책, 조직체계 등 실체에 대한 근거를 묻는 질문에 자신의 ‘추측’이 근거라고 진술했다. 이는 사실상 RO가 ‘상상 속의 존재’라는 점을 반증하는 대목이었다. A씨의 오락가락하는 모습은 진술의 신빙성에 의구심을 더했다.

‘RO’ 조직성원·총책·체계의 근거는? A씨의 ‘추측’

◇‘저 정도’면 조직성원?

A씨는 지난해 11월 21일 열린 6차 공판에서 처음으로 증언대에 섰다. 이 날 공판에서 검찰은 ‘광우병이나 쌍용차 집회를 주도하거나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이 RO 조직원임을 어떻게 아느냐’는 취지로 묻는다. 이에 A씨는 “아, 저 정도 활동을 했고 저 정도(지위)면 조직원이구나,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는 조양원 피고인(사회동향연구소 대표)이 RO 조직원이라는 근거에 대해서는 “주요 행사에 나타났고 곤지암이나 마리스타 (강연) 때 왔기 때문에, ‘아, 역시 그렇구나’, 그렇게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다음날 7차 공판에서 그는 ‘곤지암 모임에서 얼굴을 본 것이 RO 조직원이라고 본 근거냐’는 변호인단의 질문에 “지역에서 20년 이상 알아왔던 사람들이 대다수이고, 열심히 활동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추측했다”고 답했다.

◇RO의 총책은 누구?

A씨는 이석기 의원을 RO의 총책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그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처음에는 다른 이모씨를 총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국정원이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2013년 7월 26일자 통신제한조치허가서에도 이 의원이 아닌 다른 인물이 총책으로 기재돼 있었다.

8차 공판에서 변호인단이 이 사실을 아는지 묻자 A씨는 “잘 모르겠다”며 “집행조서는 제가 만든 것이 아니어서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얼버무렸다. ‘총책이 바뀐 것이냐’는 질문엔 “총책이 누구라고 정확하게 들은 바는 없다”며 “추론을 하면서 이○○씨일 수도 있고, 지금은 이석기 대표라고 확실히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가 있었을 때 이석기 대표가 총책이었는지 부분은 잘 정리를 하지 못하겠다”며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그런 얘기를 들은 바 없다”고 덧붙였다. ‘잘 모르겠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A씨는 “네”라고 답했다.

◇RO 조직체계는? 중앙위원회는 어디로

“피고인(이석기 의원)을 정점으로 경기동부, 경기남부, 경기중서부, 경기북부 등 4개 지역별 조직과 중앙팀, 청년팀 등 개별조직 등으로 구성돼 있다.” (2013.9.26 검찰 공소장)

A씨는 이와 관련해 6차 공판에서 “문서로 된 것을 본 것도 아니고, 누가 얘기해 준 것은 아니다”라며 “그러나 20년 넘게 운동하고 10년 넘게 조직원 활동을 하면서 이렇게 됐겠구나 하는 것”이라고 진술했다. ‘추정’이 근거인 셈이다.

RO의 ‘중앙위원회’ 존재 여부도 마찬가지다. A씨는 국정원 조사에서 (진술조서 1회, 2013.7.9) “조직의 총책을 정점으로 그 아래 ‘중앙위원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고”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 ‘중앙위원회’는 국정원의 구속영장청구서(2013.8.30)에는 적시돼 있다가 공소장(2013.9.26)에는 빠져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A씨는 6차 공판에서 “왕재산 사건이 터졌을 때 홍순석씨가 ‘왕재산은 중앙위원회도 없는 조직’이라고 얘기했다”며 “그 때 내가 속한 조직은 중앙위원회도 있고 조직체계가 튼튼하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8차 공판에서 ‘RO에 중앙위원회가 있다는 말을 직접 들은 일이 있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 또 재판부가 ‘홍순석이 RO의 중앙위원회에 대해 언급한 게 있느냐’고 다시 확인하자 “없다”고 답했다. 이 역시도 결국 ‘추정’에 근거한 내용이던 것이다.

◇ 단선연계 복선포치 (單線連繫 複線布置)

RO의 조직구축 방식으로 언급되는 ‘단선연계 복선포치’ 역시도 A씨가 다른 공안사건들을 보고 추정한 결과였다. A씨는 8차 공판에서 ‘홍순석으로부터 이 말을 들은 적이 있느냐’는 변호인단의 추궁에 “직접 그런 표현을 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전 영남위 사건이나 민혁당 사건들이 공안기관에서 발표됐을 때 조직운영 원리가 이런 것이고, 내가 속한 곳도 이렇게 운영되는 것이구나 해서 그 단어를 알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해 12월 2일 열린 12차 공판에는 90년 후반 검거돼 전향한 남파공작원 김모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5·12 모임과 같은 대규모 모임이 이른바 ‘혁명의 준비기’에서는 일반적인 지하조직 운영 논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김씨는 ‘130여명이 한꺼번에 모여 조직을 노출시키는 모임의 형태는 단선연계 복선포치의 지하당 조직구축 방법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 아니냐’는 변호인단의 질문에 “혁명의 준비기 시점에 봤을 때는 위배가 된다”고 답했다. 그는 “준비기에는 혁명 역량을 보호·보존하고 축적·장성시켜야 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최대한 조직을 잘 은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RO’는 조직의 정식 명칭인가?

국정원은 내란음모의 주체로 지목한 조직의 명칭으로 ‘RO’를 특정했다. 그러나 재판과정에서 ‘RO’가 과연 정식 명칭인지 여부는 오히려 아리송해졌다. A씨의 진술이 오락가락했기 때문이다.

그는 6차 공판에서 “조직의 보안을 지키기 위해 명칭은 신경쓰지 않았다”며 “‘RO’는 (2004년) 가입할 때 들었다. 이상호씨의 경우 ‘내일회’라는 명칭도 얘기했다”고 말했다. 재판부가 ‘RO라는 이름의 조직이 있느냐’고 확인 질문을 던지자 그는 “통칭 ‘RO’라고 하고 있다. ‘O’나 ‘산악회’, ‘내일회’라고도 표현했다”고 답했다. ‘RO라고 하는 사람도 있느냐’고 재판부가 다시 묻자 “(상급성원인) 도○○씨가 처음으로 제게 얘기했고, 그 이후에 한두 번 정도는 들은 것 같다”고 진술했다.

검찰이 부르는 RO의 명칭
검찰도 이후 피고인들에 대한 신문 과정에서 “‘RO’, ‘O’, ‘산악회’, ‘내일회’ 등으로 불리는 단체에 가입해 활동한 사실이 있나”라고 질문했다.

그러나 ‘RO라는 단어를 도○○씨로부터 가입할 때 들었다’는 진술은 다음날 공판에서 바뀐다. A씨는 도씨 이전 자신의 상급성원(또는 지휘성원)으로 채모씨를 지목했는데, 변호인단이 ‘2003년에 채씨로부터 RO라는 단어를 들었나’라는 취지로 묻자 “‘RO’라는 단어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변호인단이 다시 “‘RO’라는 단어를 들었느냐”고 확인하자 “예”라고 답했다.

동영상 - “강연 시작 전에 휴대폰을 끄면 RO라는 건가”

진보당 부천 원미갑 지역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백현종씨. 그는 5.12강연에 참석한 ‘증인’이다.

이 날 공판에서 A씨는 도씨가 이른바 ‘가입식’ 당시 ‘RO’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도 시인한다. 재판부는 A씨에게 ‘도씨가 가입식 때 RO라는 명칭을 썼느냐’고 묻자 “예”라고 답했다. 그러나 재판부가 다시 ‘영문자까지 다 얘기해줬느냐’, ‘RO라는 단어를 사용했느냐’고 묻자 그는 잠시 버벅대다가 “‘혁명조직’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혁명조직’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거냐”는 확인 질문에 그는 “예”라고 답변했다.

한편, A씨는 국정원 조사(2013.7.15 진술조서 3회) 때는 채씨를 ‘RO’의 정식 조직원이자 자신의 지휘성원으로 지목했으나, 이후 검찰 조사(2013.9.17 진술조서 3회)에서는 지휘성원이었는지 불분명하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그것은 채씨가 ‘RO의 지휘성원’은 아니라는 의미라는 것이 A씨의 주장이다. 그는 검찰 조사와 공판 과정에서 그동안 채씨가 ‘RO’의 조직원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었으나, 채씨가 문제의 5월 모임에 참석하지 않은 것을 볼 때 ‘RO’의 조직원은 아니었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역시 채씨로부터 ‘RO’라는 단어를 들었다는 주장과 엇갈리는 대목이다.

A씨는 ‘RO’에 가입했나?

◇‘조직가입’ 언급 없었지만 가입했다?

A씨는 자신이 2004년 12월 도모씨 등과 함께한 강원도 수련회에서 ‘약식’이지만 RO ‘가입식’을 치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사전에 ‘RO’에 대해서 몰랐고 가입 의사를 표명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A씨는 7차 공판에서 ‘도○○과 수련회를 가기 전에 RO의 존재를 알았느냐’는 변호인단의 질문에 “몰랐다”고 답했다. 재판부가 ‘수련회 가기 전에 RO든, 어떤 조직이든 가입하겠다는 말을 도○○에게 한 적이 있느냐’고 묻자 “조직 가입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혁명의 한 길에서 비껴나지 않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에둘러 답변했다. 변호인단은 A씨가 주장하는 ‘RO 가입식’이라는 것이 추측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국정원 수사관과 함께 사진까지 찍은 ‘가입식’ 장소…“이 집이 아닐 수도…”

A씨가 RO 가입식 장소라고 주장했던 민박집 사진

변호인단은 7차 공판에서 A씨의 국정원 진술조서 3회(2013.7.15)에 첨부된 사진 한 장을 제시했다. 이 사진은 A씨가 ‘가입식’이 이뤄졌다고 지목한 강원도 원주시 소재 한 민박집을 찍은 사진이었다.(촬영일자 2013.5.30) 이와 관련해 해당 진술조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이때 수사관은 진술인에게 원주 치악산 주차장 입구에서 촬영한 민박집 사진을 건네주어 자세히 살펴보게 한 후

문(국정원 수사관) = 이 사진에 있는 민박집 중에 진술인이 RO식을 했다는 민박집이 있나요.

진술인은 민박집 사진을 한참 동안 살펴보며 기억을 되살리는 듯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긴 후 사진에 있는 민박집을 가리키며

답(A씨) = 예, 이 위치가 맞습니다. 그 때보다 집들이 조금 적어진 것 같은데 여기 유난히 쪽 들어갔던 집이 생각납니다.

변호인단은 ‘국정원 수사관은 이 민박집 사진을 촬영한 사진을 제시했는데, 어떻게 그 집인 줄 알고 찍어왔느냐’고 추궁했고, A씨는 “제가 같이 가서 촬영을 했다”고 답했다. 이에 변호인단은 “그렇게 정직하게 말씀하셔야 한다”며 조서가 “작위적”으로 꾸며졌다고 지적했다. A씨는 “한참 동안 기억을 되살리면서 그 집 문 앞까지 가면서 확인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시간이 갔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변호인단은 이번엔 다른 사진을 제시했다. 이는 같은 민박집을 변호인단 측이 촬영한 사진이었다. 그러자 A씨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는다.

“미닫이 문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여닫이 문인 것으로 봐서 이 집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변호인단이 ‘수사관이 제시한 사진이 변호인단이 제시한 사진과 동일하다면 수사관이 제시한 사진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말이냐’고 묻자 A씨는 “예, 그럴 수도 있다. 그 안까지는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라고 답했다. 변호인단이 ‘가입식 장소가 이 집이 맞느냐’고 거듭 추궁하자, 그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겠다”며 “‘저 집이 맞을 거다’ 생각해서 사진을 찍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2003년 가을, 채모씨와는 무슨 일이?

A씨는 채모씨와 2003년 가을 북한산에서 모종의 ‘의식’을 치렀다고 주장했다. 그가 2004년 도모씨와의 수련회에서 있었던 일을 ‘RO 가입식’이라고 주장하는 근거 중 하나가 바로 채씨와 함께했던 ‘의식’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채씨는 A씨가 RO에 ‘가입’했다는 2004년 이전 시기 자신의 ‘지휘성원’으로 지목한 인물로 A씨와는 같은 대학 단과대 출신이다. A씨는 채씨보다 한 학번 위 선배이지만 나이는 같고, 대학 졸업 후에는 가입 시기에 시차가 있지만 지역 청년회 활동을 같이 했다.

A씨는 국정원 조사에서 나이가 같은 채씨가 자신의 지휘성원이라는 근거에 대해 “채○○은 학생운동을 할 때부터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졸업 후에도 저보다 위 단계에서 활동했다”며 “지휘성원으로 표현한 것은 RO 가입식 때와 비슷한 ‘의식’을 했기 때문”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A씨는 채씨를 지휘성원으로 사상학습을 진행했고 2002년에 지방선거 제안을 받아 출마도 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그는 국정원 조사에서는 채씨가 ‘RO 조직원’이자 지휘성원이라고 주장하지만 이후 검찰 조사에서는 조직원은 아니라고 말을 바꾼다.

모종의 ‘의식’과 관련해 A씨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2003년 가을께 어느 날 채씨가 수련회를 가자고 하면서 북한 혁명가요인 ‘동지애의 노래’를 숙지해오라고 했다. 이후 단둘이 서울 우이동 북한산 입구 민박집에서 1박2일 합숙을 가서 도착 당일 밤 사상학습을 진행했다. 사상학습에 이어 채씨는 ‘우리의 수(首)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고 “(김일성) 장군님입니다”라고 답했다.
다음날 북한산 등반을 했는데 비가 조금 내렸다. 채씨는 등산로 입구에서 모자를 2개를 산 뒤 하나를 건네주면서 ‘뜻 깊은 날이니까 잘 간직하라’고 했다. 둘은 백운봉 입구까지 올라갔다가 ‘크리스찬 아카데미하우스’ 방향으로 내려왔는데, 도중에 채씨는 A씨와 함께 등산로를 벗어나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했다. 이어 채씨는 “의식을 시작하겠다”고 하더니 서로 마주 본 상태에서 두 손을 맞잡고 ‘동지애의 노래’를 부르면서 결의를 다지는 의식을 진행했다.

하지만 채씨는 재판에서 A씨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24차 공판(2013.12.23)에 증인으로 출석한 채씨는 2003년 있었다는 북한산행 관련해 “2003년도는 한창 여중생범대위 사무국장으로 활동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A씨는 잘 보지 못하는 때였다”며 “전화 연락 한 두 번 받은 기억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단 한 번도 A씨와 (북한산에) 간 사실이 없다”며 “북한산에 간 것은 청년회 회원들과 한 번 간 것밖에 기억이 안 나고, 아마 2000년도였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그는 “무릎 인대가 안 좋고 98년인가 허리 디스크 수술을 했기 때문에 계단을 오르거나 산에 오르거나 할 때 무릎에 통증이 오고 해서 (산에) 잘 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산하는 길에 A씨와 손을 맞잡고 ‘동지애의 노래’를 불렀다는 주장에 대해선 “진짜 황당한 얘기”라며 “남녀 사이에 언약식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남자 둘이 손잡고 노래를 하는 게 어이없는 일 아니냐. 그런 사실 없다”고 반박했다. 또 ‘동지애의 노래’ 자체를 모른다고 덧붙였다. A씨에게 ‘우리의 수는 누구입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느냐는 변호인단의 질문엔 “제가 그것을 왜 물어보겠나”라고 반문했다. A씨가 주장하는 주체사상 학습모임에 대해선 “거짓말”이라고 일축했다. 채씨는 “학교 다닐 때도, 청년회 활동을 했을 때도 그랬고, A씨와 같이 지내는 과정에서 단 한 번도 그런 것을 한 적이 없다”며 “이념 서적은 학교 다닐 때 도서관에서 빌려본 적은 있지만 북한 서적이나 주체사상 관련한 서적은 본 일이 없다”고 부인했다.

채씨는 A씨가 자신을 ‘지휘성원’으로 지목한 데 대해선 “청년회를 비롯해 지역 여러 활동을 하면서 서로 싸우기도 하고 갈등이나 마찰도 굉장히 많았다”며 “지시하고 지시받는 사이였다면 멱살 잡고 사람을 끌어내는 등의 일이 벌어졌겠나”라고 반박했다. 2002년 지방선거 출마 지시 여부 관련해서도 “A씨가 청년위원장인데 한 번 후보로 나가고 싶다고 강력히 주장해서 자연스럽게 청년회에서 결정하게 됐다”고 A씨 주장을 부인했다. ‘RO’라는 조직명칭에 대해선 “이번 사건이 나고 처음 듣게 됐다”고 진술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국정원이나 검찰 등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은 적 있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엔 “없다”고 답했다.

롯데리아, 카페베네, 설렁탕집…‘지하혁명조직 RO’의 모임 장소?

롯데리아, 카페베네, OO설렁탕, OO돈까스, 탐앤탐스, 파스쿠찌, OO순대국밥, OO소문난족발……. 수원역과 아주대학교 인근에 소재한 이들 장소는 A씨가 홍순석을 지휘성원으로 한동근과 함께 이른바 ‘RO의 세포모임’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곳이다.

그러나 RO라는 ‘지하혁명조직’ 산하 모임이 ‘내란음모’와 같은 음험하고 무시무시한 일을 벌였다고 보기에는 대중적이며 개방된 장소들이며, 주변 분위기는 너무도 산만하다. 실제로 녹음파일들을 청취해 보면 주위 잡음들이 심해 대화 내용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롯데리아에서는 음악소리나 아르바이트생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린다. 식당에서 녹음된 파일에서는 가까이 붙은 옆자리 손님들의 대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롯데리아 모임 녹취록 중 일부
2012.8.30
클릭하면 볼 수 있습니다.
롯데리아 모임 녹취록 중 일부 (2012.8.30)
……(전략) 봐가지고 나머지 당원들 50명이래도 60명이래도 끌어안고 가야지(00:22:45)
아르바이트생 : 안녕하세요 롯데리아입니다. 안녕하세요 롯데리아입니다.
홍순석 : 그런 상황이라서 뭐 특별히 그런 건 없어. 9월달도 그럴거 같고. 추석 전에 이런 상황들이 정리가 되면 좀 좋은데.
아르바이트생 :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핸드폰은 꺼놓는다?

“조직원 회합시는 위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일반 핸드폰 전원은 끄고, 비상시를 대비하여 반드시 비폰(지휘성원 이상만 소지)만 켜놓은 상태를 유지한다.”비밀폰

A씨가 주장한 ‘보위 수칙’ 중 ‘통신 보안’의 내용이다. 그러나 홍순석 피고인과 A, 한동근 피고인 3인이 첫 모임으로 만났던 2012년 9월 5일 당시 홍순석 피고인은 전화기를 꺼두지 않고 있었다. 홍 피고인이 얘기를 하다가 잠시 멈춘 사이 휴대폰 벨이 울리고, 전화를 받은 홍 피고인은 약 8분 정도 그 자리에서 통화를 한다. 그 사이에 A씨는 한씨에게 자신의 일과 관련된 고민을 길게 얘기한다. 이처럼 모임 중에 통화를 하는 상황은 다른 날 모임에서도 수차례 확인할 수 있다.

○○설렁탕 모임 녹취록 중 일부
2012.9.5
클릭하면 볼 수 있습니다.
○○설렁탕 모임 녹취록 중 일부 (2012.9.5)
[녹취파일 상 시간 : 54:08 ~ 1:01:54]
홍순석 : 여보세요. 어. 아니 아직 안갔어. 어. 어.(전화통화중)
제보자[A씨] : 참. 오늘 네트. 뭐 이사회 안건은 뭐야? 그냥 하는거야?
한동근 : ( · )
……(중략)……
제보자[A씨] : 그럼 하지 말자 그럴까? 나두 안하고 싶어
한동근 : ( · ) 이런 예기를 ( · ) 법원에서 ( · ) 그런 이야기를 해서 ( · ) 웃기더라고( · )
홍순석 : 스펙이 있어야 되나? (전화통화중)

……(중략)……
홍순석 : 그래 알았어 이따가 내가 ( · ) 위원장 만나가지고 이야기를 해볼게 어
[전화통화 끝]

◇비밀폰? 비상폰?

이른바 ‘비폰’ 문제와 관련해 A씨는 국정원 조사 과정에서 “(홍순석 이전 지휘성원이라는) 이상호로부터 비폰 번호를 받거나 직접 가지고 있는 것을 목격한 적도 있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이상호 피고인은 42차 공판(2014.1.24) 피고인 신문에서 ‘비밀폰’이 아닌 ‘비상폰’이라고 반박한다. 이 피고인은 2009년 8월 비상폰을 만든 이유에 대해 당시 쌍용자동차 옥쇄파업 과정 등에 적극 가담한 사람들을 체포한다는 정보가 있었고 실제 민주노총 경기본부 주변에서 정보과 형사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며, 수배 등에 대비하기 위한 일환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피고인은 당시 민주노총 경기본부 부본부장이었다.

A씨에게 이 휴대폰의 번호를 알려준 경위와 관련해선 같은 해 10월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하는 후보 지원 과정에서 A씨를 비롯한 선본 관계자들에게 “연락이 안 되면 비상폰으로 연락달라”는 차원에서 알려준 것이라고 진술했다. 이후 2011년 2년 약정이 끝나면서 이 휴대폰을 해지했고 그 이후에는 비상폰을 만들지 않았다고 밝혔다.

◇시간차 이탈? 상호간 존칭?

“홍순석 등과 회합이후 헤어질 때 홍순석이 먼저 회합 장소를 빠져나가는 등 시간차를 두고 이탈하여 왔습니다.”

이 역시 A씨가 주장한 ‘외부활동 보안수칙’과 관련된 내용이다. 그러나 A씨가 이른바 ‘3인 모임’이 있을 당시 녹음한 파일들을 들어보면 이들은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다 같이 모임 장소에서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A씨는 또 법정 진술에서 “회합을 할 때 서로 간에 존대하는 것은 기본”이라고 말했지만, 실제 ‘3인 모임’의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A씨가 ‘지휘성원’으로 지목한 홍순석 피고인은 두 사람과 대화를 하는 내내 편하게 반말을 사용한다.

‘이석기 경호조직’ 산악훈련?

국정원과 검찰은 피고인들에 대한 압수자료를 바탕으로 이른바 ‘RO’ 총책인 이석기 의원의 경호팀이 실재하고 이들이 월 1회 산악훈련을 실시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면서 이석기 의원이 대표로 있었던 CN커뮤니케이션즈(CNC) 계열사 직원 등 20여명이 참가한 지난 2013년 4월 5일부터 6일까지 이틀간의 설악산 등반이 ‘혹한기 산악훈련’의 일환이라고 지목했다.

이 기간은 산불 위험으로 입산통제기간이었고 곳곳에 눈이 쌓여 안전사고 위험이 컸으며,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도 이들이 굳이 산행을 한 것은 수상하다는 것이다. 주요 언론들도 공안당국발로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에 따라 등산객들을 단속해 20여 명 중 8명에게 과태료를 부과한 설악산 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원 2명이 검찰 측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하게 됐다. 검찰은 신문에서 등산에 참가한 사람들이 ‘산악 훈련’을 했다는 점을 입증하는 데 주력했으나, 증인들은 하나같이 일반 등산객과 큰 차이점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검사 : “언론에서 보셨겠지만 지금 증언하게 된 경위가 ‘RO’라는 혁명조직의 총책인 이석기 피고인을 경호하기 위해서 조직원 20~30여명이 경호팀을 설립하고 경호훈련을 실시했다고 해서 저희가 증인으로 모시게 됐는데, 훈련이나 이런 것을 목격한 사실은 없죠?”

증인 : “예, 그런 건 없습니다.”

- 2013.11.19 5차 공판. 설악산국립공원 장수분소 직원 유모씨에 대한 증인신문

유씨는 ‘당시 적발한 등산객들이 일반 등산객들과 다른 점이 있었느냐’는 변호인단의 질문에도 “외관상 다른 점은 못 느꼈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이 ‘군인 등 특수기관 요원처럼 군장을 하고, 훈련받은 전문 요원들처럼 보였느냐’고 다시 묻자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며 “좀 지쳐있었고, 그날 제가 갔어도 지쳤을 것 같다. 날씨 자체가 너무 나빴다”고 진술했다. 10차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장수분소 직원 이모씨도 ‘산악훈련에 준하는 아주 비정상적인 등산이었느냐’는 검찰 측 질문에 “일반 등산객으로, 회사원으로 생각했지 전문 산악인이라 생각이 안 됐다”고 답했다.

장수대 분소 주차장 도착
증인 : ○○○이 얘기하기로 장수대 분소에서 출발해서 대청봉까지 갔다가 내려오는 걸로 들었다. 거의 종주 정도 되는 거리다. 한번 해봐야지 생각했는데 실제로 갔더니 대승령까지 올라갔다 서북능선을 타기 시작해서, 눈이 쌓여있어서 지체돼서 다 갈 수가 없어 중간에 한계령에서 내려왔다.
(장수대 분소->대승령->서북능선->한계령)
변호인 : 당초 계획했던 일정이 변경된 것인가
증인 : 속도 상으로 가려면 시간당 2~3킬로(km)는 가야 되는데, 사람이 많아서 속도가 안나더라. 그래서 다 못가고 한계령에서 내려오게 된 거다. 중간에 비도 오는 바람에 더 갈 수가 없어서 내려왔다.

당시 산행 경로가 입산통제기간이 아니었다면 정상적인 등산로라는 점도 증인들의 진술 과정에서 드러났다. 직원 유씨는 ‘단속한 곳이 통제기간이 아니었다면 정상적인 탐방로였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그렇다. 맞다”고 답했다. 직원 이씨도 ‘등산 경로가 산불조심 통제기간만 아니었다면 정상적인 등산로냐’는 변호인단의 질문에 “통제기간이 아니었다면 대설주의보나 폭설이 아닐 경우에는 통제를 안 한다”고 말했다.

동영상 - 설악산 산행 혹은 혹한기 훈련 참가자 이 모씨

일부 언론은 그날의 산행을 혹한기 훈련이라고 불렀다. 참가자가 말하는 2013년 4월 초의 설악산을 들어보자

한편, CNC 계열사에서 2012년 1월부터 2개월 간 인턴 근무를 했고, 당시 함께 근무했던 선배 직원의 제안으로 이번 설악산 산행에도 참가했다는 이모씨는 24차 공판(2013.12.23)에 변호인 측 증인으로 출석해 검찰 측 주장을 반박했다. 이씨는 ‘일행으로부터 경호훈련이 일종이라는 애기를 들었느냐’는 검찰 측의 질문에 “전혀 없다”고 답했다.

이씨는 ‘언론에서 특수부대 수준의 혹한기 훈련이라고 보도했는데 실제 그런 훈련을 받았느냐’는 변호인단의 질문에 “무술유단자도 아니고, 경호업체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다가 공익근무를 군복무로 대체해서 4주 훈련 받은 게 다인데, 특수훈련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는 4월이고 날씨가 상당히 좋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등산하는 등산코스인데 그것을 혹한기 훈련이라고 얘기하니 이해가 안 된다”며 “눈 쌓인 겨울 산행도 많이 다니는데 그것보다 훨씬 쉬운 코스였다”고 증언했다.

‘바람도 많이 불고 날씨가 춥지 않았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는 “정확히 기억하는데 첫날 4월 5일은 날씨가 쾌청하고 맑았고, 바람도 많지 않았다”며 “첫 날은 전혀 춥지 않았고 양지쪽은 눈이 녹아서 영상의 기온이었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 쪽을 다닐 때는 약간 더워서 땀을 흘린 기억도 있다”고 진술했다.

굳이 입산통제 기간인데도 등산한 이유에 대해 그는 “등산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런 구간을 등산한 경우도 있어서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 것도 있다”며 “4월에 통제하는 것은 산불(위험) 때문이다. 그래서 위험할 거라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특별히 문제가 있겠냐는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변호인 vs 검찰 국정원 프락치 A씨

11월 21일 수원지방법원 법정동 110호, 40대 후반의 한 남자가 증인석에 앉아 있었다. 그 남자와 피고인석은 가림막이 세워졌다. 증인과 몇몇 피고인은 오랜 세월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이 날 증인으로 나선 사람은 이른바 내란음모 사건의 국정원 제보자 A씨였다.

이 날부터 A씨는 4일에 걸쳐 약 30시간에 달하는 증인심문에서 자신이 가입했다는 이른바 ‘RO’(Revolution Organization. 혁명조직)라는 조직과 이들이 했다는 내란음모에 대해 증언했다. A씨는 대체로 차분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했지만, 때론 변호사와 설전도 불사하면서 적극적으로 진술했다.

RO와 내란음모 사건의 증거가 모두 A씨에게 의존하고 있다 보니 A씨의 증인 심문은 전체 재판의 향배를 좌우할 ‘승부처’였다. 그의 진술과 그가 녹음한 녹취록, 그가 ‘RO’에서 받았다는 자료 등이 이 사건 증거의 대부분이었다. 국정원은 A씨에게 초소형 녹음기와 시계형 녹화기를 주고, 이를 녹취록으로 만들고, 그가 미리 가르쳐준 ‘RO’ 모임 장소 근처에 숨어 먼발치에서 사진을 찍었을 뿐이다. RO의 실체를 차치하고, A씨가 아니었다면 이번 사건은 발생하기 어려웠다.

내란음모 사건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여론재판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국정원과 보수, 진보를 막론한 언론에 의해 통합진보당은 전쟁을 틈타 대한민국을 뒤집으려는 폭력세력이 됐고, 이석기 의원은 음험하고 시대착오적인 조직수괴가 됐다. 그러나 막상 재판이 시작되자 녹취록과 마찬가지로 A씨의 증언은 곳곳에서 변호인단의 반격을 받았고 중요한 대목에서 설득력을 잃기도 했다.

A씨 증언, 곳곳에 의문...국정원 직원에게 ‘용돈’ 받아

국정원과 언론에 의해 RO는 북의 사주를 받아 남한 체제를 파괴하려는 조직으로 낙인찍혔다. 상식으로 봐도 전쟁 상황에서 북에 호응해 남한 배후를 교란하려면 북과의 연계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A씨는 RO가 북과 연계가 있다는 아무런 직간접적 증거가 없었다. 국정원과 검찰도 당연히 ‘빈손’이었다. 다만 A씨는 같이 활동하던 동료가 자신의 가명인 ‘남철민’을 언급하며 “네 이름이 어디서 온 줄 아느냐”라고 타박했고, 이를 통해 RO 위에 북이 있고, 자신의 활동명도 북에서 왔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지난해 사건이 공개된 초기 국정원은 언론을 통해 이석기 의원과 측근이 북측과 수차례 접촉했다고 흘렸다. 밀입북설, 중국 접촉설, 공중전화를 통한 국제전화 교신 등 숱한 루머가 쏟아졌으나 막상 재판에서는 다뤄지지도 않았다. 집에서 발견된 러시아 화폐인 루블화가 북과의 연계 증거로 떠올랐으나 국회 상임위 차원에서 진행된 러시아 과학위성 발사 참관 때 사용되고 남은 것으로 확인됐다.

5월 12일에 내란음모가 이뤄졌다는 A씨의 증언도 전후 정황과 어긋났다. 자신이 RO 성원이라는 A씨는 5월 12일 이전 또는 그 이후에 동료들과 내란을 논의한 적이 없었다고 시인했다. 또 내란을 하기로 결의하기 이전에 아무런 사전논의도 없었고, 이후 실행하기 위한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6월 6~9일 3박4일 간 경기지역 시민사회 인사와 그 가족, 지인 등 60여명이 중국으로 백두산 관광을 다녀온 것도 의문을 남겼다. 이들 속에서는 A씨가 RO 성원이라고 주장한, 즉 5월 12일 모임 참석자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미리 추진되던 일정이라지만, 전쟁이 곧 터지고 내란을 하기로 한 와중에 단체로 해외관광을 다녀온 것이다. 중간에 취소했지만 A씨도 이 관광에 참가신청을 했다. A씨는 관광을 간 이들이 김일성 항일유적 등을 답사했다고 주장하며 내란음모와 연결하려 했으나 이것도 사실이 아니란 점이 확인됐다.

재판부도 A씨에게 “5월 10일, 12일 두 차례모임에서 이석기 피고인이 당시를 전쟁상황이라고 했다면, 2월에 예정됐다던 백두산 관광은 취소하는 것이 마땅한 것 아닌가”라고 A씨에게 직접 물었다.

이에 A씨는 “전쟁분위기가 고조됐던 상황이 일부 대화국면으로 넘어가서 여행을 예정대로 다녀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피고인들이 “지난해 3, 4월이 위기의 최고조였고, 5월은 이미 한 고비를 넘긴 상태였다”고 진술한 것과도 일치한다. 그렇다면 RO 성원들은 이미 위기상황이 대화국면으로 넘어갔는데 내란을 음모했다는 것이며, 내란을 결의한 채 아무런 준비도 없이 해외관광까지 다녀온 셈이다.

A씨는 변호인단과 재판부에 여러 차례 “RO를 일반상식으로 보면 안 된다”고 훈계하며 “20년 이상 운동한 경험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A씨가 새로 분양받은 수원시 권선동의 아이파크시티 아파트 단지

국정원과 A씨 간의 돈 거래도 도마 위에 올랐다. A씨 가족은 수원시 권선동의 한 아파트에 살면서 2009년 같은 동의 아이파크시티 아파트를 새로 분양받아 대금을 치러야 했다. 또 2010면에 A씨는 경희대학교 수원캠퍼스 앞에 당구장을 새로 인수했다. A씨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이 시기 당 활동을 같이하는 동료에게 500만원을 급히 빌리기도 했다.

A씨를 담당했던 국정원 문모 수사관은 2010년부터 3년여간 A씨를 일주일에 평균 2~3차례 만났고 초기를 제외하고는 만날 때마다 대략 10~20만원을 봉투에 넣어 실비 명목으로 지급했다고 증언했다. 다달이 적지 않은 ‘용돈’을 준 셈이다. 이 때문에 A씨가 국정원의 프락치로 고용돼 정보를 제공한 것이라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그는 왜 국정원의 협조자 또는 프락치가 됐을까?

A씨는 3년여 동안이나 국정원의 협조자라는 신분을 숨긴 채 운동가로 살아왔다. 마치 영화 ‘무간도’나 ‘신세계’처럼. 그는 30년 가까이 알고지낸 대학교 동기를 비롯해 숱한 동료들의 범죄를 입증하기 위해 장기간 ‘암약’했다. 무엇이 그를 정반대의 삶으로 떠밀었을까?

A씨는 스스로 말한 것처럼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을 시작해 20년 이상 운동을 해온 사람이다. 이제는 꽤 알려진 것처럼 그는 경희대학교 수원캠퍼스 86학번이다. 초기에는 학생운동에 소극적이다가 군대를 다녀온 뒤 대의원회 의장 등을 맡으며 적극적인 운동권이 됐고 용성총련(용인성남지구대학총학생회연합) 간부를 맡기도 했다. 1995년 그는 학생운동을 마치고 수원사랑민주청년회에서 청년운동을 시작했다. 민주주의민족통일수원연합, 실업극복국민운동수원본부 등에서도 주요 역할도 했다.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에 A씨와 동료들은 적극 참여했다. 그는 민노당 지역위원장을 하며 2002년 지방선거에 시의원으로, 2008년 총선에 권선구 국회의원으로 출마했다. 이후 그는 수원 지역에서 민노당을 대표해 미군기지 수원이전 반대, 매향리 폭격장 폐쇄, 이라크 파병 반대, 한미FTA 반대 등 다양한 연대활동에서 공동대표와 집행위원장 등을 담당했다. 2009년까지 A씨는 열성적인 진보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학교비정규직노조 수원지회 사무장인 김정희(39)씨는 취업을 위해 수원에 사는 언니를 찾아왔다가 우연히 청년회에 가입하게 됐다. 이후 A씨와 김씨는 민노당 지역위원장과 사무장으로 함께 일하기도 했다. 김씨는 “제가 운동권 출신도 아니고 초짜 ‘페이퍼 당원’이었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다 알려주셨다”면서 “생활도 굉장히 성실하고, 민중을 대하는 헌신적인 마음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랐다”고 회상했다.

2008년 총선 이후 A씨의 활동은 뜸해졌고 2009년부터 그는 활동을 거의 접었다. 동료들은 이 시기 A씨가 운동과 멀어진 이유가 건강 외에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우선 총선 직후 A씨는 술에 만취해 택시기사를 폭행해 징역형과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그는 당뇨로 몸이 좋지 않았지만, 술을 많이 마셨고 취하면 평소 얌전하던 성격과 달리 종종 ‘사고’를 일으켜 동료들의 쓴 소리를 듣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집행유예를 받아 다른 위법행위가 생기면 강하게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또 지인들에 따르면, A씨는 당 지역위원장을 계속하려 했으나 동료들은 건강을 먼저 돌봐야한다고 주장해 서운함이 컸다. 2004년 총선에서 민노당이 전과는 다른 성과를 거두고 당세가 확장되면서 간부들의 배치와 역할을 놓고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았는데 A씨 역시 그런 과정에 감정이 상한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협조자로의 변신에 이런 서운함이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시기 A씨는 동료들과 멀어진 채 사실상 활동을 중단했다.

A씨는 2012년 2월 수원시친환경학교급식지원센터 이사장으로 복귀하며 공식 직함을 갖게 됐다. 모임에는 나갔으나 공식적인 활동에 적극 나서지는 않았다. 센터장은 시청, 학교와 학부모, 관련 업체와 시민단체 등과 사업해야 하는 지역 진보진영으로서는 중요 ‘얼굴’이었다. 동료들이 그가 활동을 재개하는 방안을 강구하면서 그를 믿고 센터장으로 적극 추천한 것이다. 그러나 이 당시 A씨는 이미 국정원의 협력자가 돼 있었다.

국정원과 A씨에 따르면, 2010년 4월 A씨는 국정원에 인터넷으로 상담을 요청해 처음 접촉했다. 진보운동을 오래 하던 사람이 뜻이 맞지 않거나 관계가 악화돼, 또는 지병이나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그만두는 일은 흔하다. 그러나 A씨처럼 국정원에 연락해 동료들의 ‘반대편’에 서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더욱이 그의 증언대로라면 그 역시 국가보안법 등의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A씨의 ‘변신’에 통상적인 경우보다 뭔가 더 강한 자극이나 계기가 있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A씨는 국정원 진술과 법정 증언에서 ‘변신’의 이유를 주로 ‘오랜 조직생활의 회의와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으로 들었다. A씨는 스스로를 학생 시절부터 주체사상을 배워온 사람이라고 밝혔다. 분단문제와 남북관계에 깊은 관심을 가져온 그에게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이 20년 이상 지켜온 신념을 뒤집을 만큼 심각한 것이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는 바뀐 생각을 누구에겐가 털어놓고 상의하지 않았을까?

기자는 A씨와 가까운 동지들은 물론 좀 거리가 있는 지역 인사를 만나 ‘A씨가 2010년 이후 운동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는가’를 물었다. 한결같은 답은 ‘전혀 없었다’였다.

사건이 공개되기 얼마 전에도 A씨 집에 들렀다는 후배 김정희씨도 “생각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그런 조짐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오랫동안 A씨와 함께 일해온 임미숙 통합진보당 수원팔달지역위원장도 “A씨가 친환경학교급식지원센터장으로 활동에 공복귀하면서 초기에는 굉장히 의욕적으로 일했고, 이 때문에 종종 공무원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면서 “운동에 회의감을 갖고 있다거나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간 직접 대화한 적은 많지 않으나 청년회 시절부터 알고 지내며 각종 연대활동을 함께 해온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급식센터장으로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과 회의도 했을 것이고, 오래 운동하던 사람이니 무슨 문제가 있다면 소문이 날 텐데 A씨 관련해 전혀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20~30년 운동한 사람이 천안함 사건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 정말 개가 웃을 일”이라고 어이없어 했다.

의문의 USB 메모리, A씨는 국정원에게 협박 당했을까

만약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이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A씨가 동료들에게 등을 돌리고 국정원의 협조자가 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내란음모 사건의 변호인 측은 ‘국정원에 넘겨진 USB 메모리’를 주목했다.

국정원은 대학교 선배이자 서로의 집이 500여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문모 수사관을 A씨의 담당으로 지정했다. A씨는 문모 수사관을 처음 만난 지 반년여 뒤인 2010년 10월~11월에 각종 학습자료 등이 든 USB를 넘겨줬다고 증언했다. 문 수사관은 A씨를 만난 초기부터 ‘조직활동의 구체적인 물증’을 요구했고, A씨는 문제의 USB를 떠올렸으나 어디 있는지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몇 달 뒤 우연히 옷에서 발견해 국정원에 넘겨줬다는 것이다.

문제는 암호화돼있던 이 USB가 8월에 누군가에 의해 풀렸다는 사실이다. A씨가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하고 있고, 국정원 문 수사관은 아직 넘겨받지 않은 시기에 누군가 USB를 풀어 내용을 확인했다는 미스터리, 변호인단은 이 대목이 이 사건의 중요한 단서라고 보았다. 즉 A씨가 국가보안법에 위배되는 자료가 담긴 USB를 분실했고 이것이 국정원에 들어가 약점을 잡힌 A씨가 적극적인 협조자로 변신했다는 추론이다. 당시 A씨는 집행유예 기간이어서 국보법 위반 혐의가 추가되면 실형을 살 가능성도 있었다. 문제의 USB를 8월에 풀어본 사람이 누구일까, 이 부분이 밝혀진다면 변호인단이 제기한 의혹도 풀릴 것으로 보인다.

남겨진 사람들의 눈물, “A씨도 결국 피해자”

사건 직후 A씨의 동료들은 그가 법정 증언은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어 했다. 동료들은 A씨는 물론 그의 부인, 아이들과도 가족처럼 왕래하고 지내왔다. A씨가 미리 사표까지 써뒀고 가족들과 종적을 감췄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이들이 배신감에 분노했고, 일부는 실낱같은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2012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선거 부정 의혹이 터지고 ‘당권파’에 대한 일방적인 매도와 공격이 이어지자 수원 지역에서 활동하던 박영재씨는 진실규명을 요구하며 당사 앞에서 분신해 사망했다. 1년 뒤, 그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오랜 기간 주요 인사로 활동하던 이가 내란음모 의혹의 최전방에 나섰다. 동료들은 물론 지역 시민사회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사건이 알려진 며칠 뒤 A씨의 동료들을 취재하려 했으나 날카로운 반응을 곳곳에서 접했다.

동영상 - 학교비정규직노조 수원지회 사무장 김정희씨 인터뷰

국정원프락치 A씨는 이제 그녀를 찾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A씨가 돌아오는 꿈을 꾼다.

A씨가 있던 곳에서는 공안기관의 흔적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A씨의 아파트 짐은 잠적과 함께 깨끗하게 치워졌고, 가족의 거처를 마련할 돈이 필요할 것임에도 이 아파트는 매물로 나오지 않았다. A씨의 당구장 역시 새로운 사장이 나타나 전에 일하던 알바생들을 그대로 두고 정상 운영을 하고 있었다.

수소문 끝에 찾아간 A씨가 살던 아파트 단지에서는 덩치 좋은 30대 남성이 취재진을 따라붙기도 했다. 그를 빤히 지켜보고 있었더니 눈치를 힐끗힐끗 보며 길이 없는 곳으로 들어가 헤매다 황급히 빠져나가기도 했다.

법정에 선 A씨의 모습은 동료과 지인들에게 새로운 아픔이었다. 그와 업무로 인해 여러 차례 회의를 같이 했던 인근 지역 생협의 한 임원은 사석에서 “A와 내가 나눈 대화도 다 녹음됐을 것 같아 등골이 오싹하다”고 말했다.

‘프락치’라며 격한 말로 A씨를 비난하는 이들도 많으나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정도로 가슴 아파하며, A씨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도 많았다. 사건 초기 A씨의 경희대 동문들은 그를 위로하며 양심선언을 촉구하는 신문광고를 한겨레에 내기도 했다.

지금도 매일같이 A씨가 돌아오는 꿈을 꾼다는 김정희씨는 ‘A씨를 만날 수 있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묻자 눈물을 펑펑 흘렸다. 그는 A씨를 시종일관 위원장님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많이 당신을 사람들이 사랑하는데 위원장님은 우리가 미웠는지 궁금해요. 어차피 이렇게 사실 것이라 결심하고 어마어마한 일을 저지르셨으니까 앞으로 아프지 말고 살고 싶은 대로 사셨으면 해요.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새로운 길을 택한 사람이 많이 밉지만... 더 많이 돌보지 못하고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래도 저는 예전 위원장님과의 청년시절이 행복했다, 그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내 미래도 있고 제 삶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위원장님이 부정한 삶은 저에게는 가장 소중하고 빛난 삶이었다고,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시절 그분의 진심을 알고 있고, 그때는 최선을 다했다는 확신이 있고, 저에게는 최고였다는 그 말은 꼭 해드리고 싶어요”

지역에서 A씨가 가장 아끼던 후배로 소문난 김씨는 2011년 2월 어느 날 새벽, 술 취한 A씨의 전화를 받았다. A씨는 “나는 약속대로 못 살 것 같다. 미안하다”고 펑펑 울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따랐고 지금도 안타까워하는 김씨에 대해 A씨는 법정에서 “여러 후배에게 학습 등을 제안했으나 김씨만 동의해서 함께 모임을 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A씨의 사례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 역사의 어두운 그늘이었던 프락치를 떠올리게 한다. 자신의 목적과 신분을 숨긴 채 운동권의 정보를 빼내 공안기관에 제공했다는 점에서, 특히 무려 3년간이나 진보운동가로 가장하고 활동했다는 점에서 A씨는 대단히 노골적인 프락치 사례에 해당한다.

진보당과 변호인단은 국정원이 장기간 접촉해온 A씨를 활용해 ‘내란음모 사건’을 기획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2010년부터 A씨를 통해 정보를 축적하며 조직사건을 준비하던 국정원이 대선개입 사건으로 존폐 위기에 몰리자 황급히 내란음모 사건으로 ‘급’을 높여 포장했다는 것이다.

동영상 - 다산인권센터 박진 활동가

“모든 사람관계를 부수고 이간질해서 누군가의 인생이 망가지게 하는 일이 프락치 공작이다. A씨 역시 희생자다”

박진 활동가 역시 이번 사건을 “명백한 프락치 사건”이라고 규정하면서 “어떤 범죄가 있다면 그 사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조작이 의심되는 증언, 그것도 오랜 기간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깬 증언을 이용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구시대적인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박진 활동가는 “결국은 이 사건 역시도 시간이 지나면 인혁당 사건이나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처럼 바라볼 텐데 프락치 사건이 이 시대의 민주주의 수준을, 정부의 수준을 규정하는 이정표가 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는 불행한 시대다”라고 개탄했다.

또 A씨도 결국 피해자이며 문제는 국정원이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박진 활동가는 “제보자보다 모든 사람관계를 부수고 이간질해서 누군가의 인생이 망가지는 것을 책임지지 않는 국가 정보기관이 문제”라며 “자기들 목적에 맞게 사람을 도구로 이용하는 게 프락치 사건의 본질이 아닌가 싶고, (A씨를) 희생자라는 마음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변호인 vs 검찰 국가보안법 위반?

각한 것만으로, 노래를 불렀다는 것만으로 국가의 안전을 위협한다며 이를 처벌할 수 있을까? 1960년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 활동’을 규제해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자유를 지키기 위한다는 이유로 제정돼 50년이 지난 오늘 날까지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국가보안법이 없어지지 않는 한 계속 제기될 수밖에 없는 의문이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이 기소된 내란음모 사건에서도 역시 국보법 적용을 놓고 검찰과 변호인단의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이 의원은 2012년 4월 총선을 전후로 가진 당원 결의대회 등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혁명동지가’와 ‘적기가’ 등의 노래를 제창해 국보법상 ‘북한 찬양·고무·선전·동조’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혁명동지가’는 한국을 미국 식민지로 보고 북한 대남혁명 노선에 동조해 혁명투쟁 의식 고취를 선동하는 노래로, ‘적기가’는 공산주의를 뜻하는 붉은 깃발을 높이 들고 미 제국주의·남한 적들과 싸울 것을 선동하는 노래로 전제했다. 그래서 이들 노래를 부르자고 제의하거나 직접 부른 것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도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찬양·고무·선전·동조했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이 의원은 또한 그해 8월 두 노래를 제창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을 ‘강성대국’으로 평가하거나 ‘혁명적 낙관주의 정신으로 정권교체를 이루자’는 등 북한에 동조하는 내용의 강연을 했다는 것도 혐의 사실에 포함됐다.

오 탄넨바움(O Tannenbaum)

The Red Flag

혁명동지가

적기가와 탄넨바움
1948년 우리나라에서 금지곡으로 지정된 '적기가'는 북한에서 만든 노래가 아니다. 이 곡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탄넨바움(Tannenbaum, 소나무)'이라는 독일 민요에서 유래했으며, 1880년대 말 영국에서 '레드 플래그(The Red Flag)'라는 제목의 노동가요로 바꿔 불러졌다. 영국노동당을 비롯 유럽의 진보정당 행사에서 자주 부르는 노래이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응원가이기도 하다. 왼쪽은 독일민요 O Tannenbaum이며, 가운데는 영국 노동당 공식행사에서 불려진 The Red Flag다.
혁명동지가
'혁명동지가'는 북한혁명가요가 아닌 국내 민중가요로 작사·작곡가인 백자(41)씨가 1991년 대학교 2학년 때 만들었다. 이 곡은 같은 해 이적표현물로 판결받은 바 있지만, 1990년대 집회·시위 현장에서 학생들이 자주 불렀다. 변호인단은 "지난 1991년 혁명동지가를 이적표현물로 본 판계가 있지만 당시 이적성 검토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며 "노래 내용 중에서 논란이 있을 만한 부분은 '미제'라는 표현 정도다. 혁명동지가가 이적표현물로 등장한 것에 비춰보면 우리의 공안시계가 멈춰버린 것은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이적표현물로 분류되는 북한 관련 자료를 갖고 있었다는 이유로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도 받고 있다. 국정원은 이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와 관련 작년 8월 이 의원의 자택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 압수수색 과정에서 총 160건의 이적표현물을 발견했다. 각각 파일형태로 CD에 저장·보관돼 있던 파일들은 북한원전, 주체사상 총서,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등이다. 이들은 주체의 철학적 세계관, 주체사관, 주체의 인생관, 주체의 수령관을 설명하면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찬양, 선전하고 김일성, 김정일을 찬양하고 있는 내용이라고 검찰은 지적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북한의 활동을 찬양, 고무, 선전 또는 이에 동조할 목적으로 이적표현물을 소지한 것”이라며 국보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은 이 의원이 이른바 ‘RO’라는 비밀지하혁명조직의 총책이라고 지목하고 있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못해 국보법상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는 적용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이 의원 측 변호인단은 일단 “‘혁명동지가’나 ‘적기가’를 제창한 적이 없다”며 혐의 사실을 부인했다. 강연 내용에 대해서도 변호인단은 “진보당 탄압 사태를 주제로 한 것”이라며 “‘당의 탄압세력에 대한 강력한 대응으로 당을 지키자는 것, 진보적 정당을 탄압으로부터 지키는 것이 바로 자주, 민주, 통일에 대한 실천이며 사회 진보에 거름이 되는 길’이라는 취지로 해석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변호인단은 자택에서 발견된 이적표현물에 대해선 보관 상태 등을 보아 모두 10여 년 전의 것들로 추정되고, 아파트 내 창고용도로 사용하는 작은 방에서 발견됐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며 “피고인은 그 물건들의 존재는 물론 소지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다”고 공소 사실을 부인했다.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발견된 것에 대해서도 역시 “피고인이 인식하지 못한 문건이 다른 보좌관 물건과 함께 혼재해 있었던 것으로 소지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다”고 혐의를 일축했다.

국가보안법의 근본적 쟁점

이 의원에 대한 국보법 적용 여부에 있어서 보다 근본적인 쟁점은 피고인의 말과 행동이 ‘실질적 해악을 미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느냐다. 검찰은 이 의원이 노래를 부르고 이적표현물을 소지한 것만 보더라도 이적성이 있다고 보고 있는 반면, 변호인단은 그것만으로는 국가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국보법은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의원은 ‘혁명동지가’를 불러 북한을 찬양·고무했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 “경쾌한 노래라서 좋아하는데 이를 두고 국가보안법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자 문명국가의 수치”라며 “평양냉면, 아바이순대를 좋아하면 처벌해야 하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국보법에 대해 논하려면, 먼저 1960년 법이 제정될 때와 1991년 법이 개정됐을 때 국보법 취지가 달라진 점을 유념해볼 필요가 있다. 1991년에 이뤄진 국보법 개정은 1990년 헌법재판소가 처음으로 개정되기 전 국보법 규정들에 대해 ‘한정합헌’ 결정을 내린 뒤 ‘표현의 자유 위축’, ‘형벌권의 남용 및 자의적 적용’ 등을 경계하고자 하는 결정 취지를 수용한 결과다.

한정합헌
1991년 국가보안법 제7조 1항 관련 헌법재판소 판결에서 변정수 재판관이 '위헌'으로 판단하면서 한정합헌 판결이 내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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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개정된 국보법에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주관적 구성 요건이 추가된 것이 주목되는 지점이다. 이는 국가나 사회의 안전에 실질적 해악이 되는 ‘명백한 위험성’이 있을 때에만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그나마 표현의 자유 침해 등 기본권 침해적인 법 적용을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한’ 행위가 아니라 ‘국가를 변란하려고 한’ 행위를 처벌할 수 있도록 바꾼 점도 이 같은 취지로 분석된다. 이는 곧 북한의 주장과 유사하거나 동일하면 처벌하도록 한 기존 규정 체계와 논리를 근본적으로 변경해 우리 국익, 체제, 제도에 ‘명백한 위협’이 되는 것인지를 국보법 적용을 판단하는 핵심 요건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표현’ VS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

그러나 법원은 국보법 개정 이후에도 국보법을 기존대로 해석, 적용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지적이 법조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국보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요건은 사실상 판결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국보법 개정 이후 ‘이적성’ 기준에 대해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표현’이라는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이를 적용한 사례로 2010년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실천연대)를 이적단체로 인정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꼽힌다.

이적성 기준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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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체
대법원 전원합의체(대법관회의)는 대법원에 있는 사법행정상의 최고의결기관. 대법원장과 대법관 13명으로 구성되며 대법원장이 재판장이 된다. 대법관전원의 3분의 2이상의 출석과 출석인원 과반석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이 판결에서 대법관 다수의견은 실천연대의 강령, 규약, 출범식 보도문 등에 나타나는 구체적인 강령 내용과 이 단체가 주장하거나 활동해 온 내용의 상당 부분은 반국가단체로서의 북한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하거나 이에 동조하고자 하는 의도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일부 내용은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것으로서,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벗어난 국보법상의 이적표현물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그 밖에 실천연대가 조직 내부적으로 북한의 주체사상과 선군정치를 추종·동조하는 세력으로 구성됐으며, 북한과 직·간접적 연계성을 가졌다고 보고 이적단체 결성 혐의를 적용했다.

하지만 내란음모 사건의 변호인단은 의견서에서 이 사례에 대해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표현’이란 기준은 그 이전 대법원이 취해온 태도를 사실상 사후적으로 정당화한 데 불과한 것”이라며 “이 기준이 제시됐다고 해 이적표현물 판단에 의미 있는 변화가 발생한 것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이 기준은 표현물의 내용에 문제가 있고 방법이 과격하더라도 국가형벌권의 동원은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는 ‘사상의 자유시장론’에 배치된다는 것이다.사상 검증은 사법적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걸러질 수 있다는 뜻

실천연대 사건에 대한 판결 당시, 3인의 다른 대법관도 다수의견에 반대하며 대신 ‘구체적이고 가능한 위험’이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어떤 표현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이념과 가치에 동조하지 않고 이를 비판하거나 심지어 이와 반대되는 주장을 한 것이라고 해도, 이러한 정도의 ‘의사표현’만으로는 ‘해악’ 발생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신 이들은 적극적으로 폭력 등 기타 비합법적 방법에 의해 국가의 존립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전복·폐지할 것을 유도 또는 선동하는 경우에만 ‘해악’ 발생의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이적표현물 해당 여부에 대해서도 3인의 대법관은 다수의견이 요구하는 대한민국의 안전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표현’이라는 요건 외에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위험’을 가진 표현물이어야 한다고 봤고, 이를 판단할 때에도 역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내용 중에 주체사상, 선군정치 등 북한사회와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동조하는 내용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말로써 주장하는 것만으론 그러한 해악 발생의 위험이 명백하다거나 현존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이적표현물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란 기준은 1990년 헌재의 국보법에 대한 한정합헌 결정에 따른 국보법 개정 취지와도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소수의견에 그치고 있으며,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기준은 ‘현존성’이 빠진 ‘실질적 해악을 미칠 명백한 위험성’이며, 이적표현물에 대해서도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표현’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고 변호인단은 지적했다.

‘반국가단체인 북한에 대한 이익성’ VS ‘우리나라 안전과 체제에 대한 위협성’

대법원이 개정되기 전 기존 국보법 운용을 답습하고 있는 배경에는 북한을 남한에 대한 전복 내지 적화통일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반국가단체’로 보는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반국가단체로서 북한이 표방하는 정치적 주장은 궁극에는 적화통일 노선으로 귀결될 것이며, 따라서 남한의 어떤 단체가 북한이 주장하는 내용인 주한미군 철수, 연방제통일방안 등을 표방하게 되면 암묵적으로 북한의 적화통일 정책을 지원 내지 동조하는 활동을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에 따른다면, 어떤 주장이나 내용, 실천 활동, 표현물을 놓고도 그것이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내용인지를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주장과 동일한 주장을 한다는 점, 그러한 주장을 실천하기 위해 북한과 연계한다는 점이 인정되면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단체 내지 표현물로 보게 된다.

북한을 무조건 반국가단체의 성격으로만 바라봐야 하는가도 국보법 적용에 있어서 쟁점이 되는 부분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는 소수의견으로 북한은 남한과의 특수한 관계에서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동반자 관계에 있는 한편 적화통일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반국가단체로서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는 ‘양면성’이 제기된 바 있다. 이러한 ‘양면성’을 인정한다면 사실상 국가로서의 실체를 지니고 있는 북한이 표방하는 국가이념이나 정책, 주장을 전부 적화통일 정책으로 귀결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변호인단은 의견서에서 “헌재와 대법원은 무력남침, 적화통일론이라는 아무런 사실적 기초가 없는 그릇된 논리를 가지고 국보법의 위헌성을 부인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국보법은 허구적인 무력남침, 적화통일론을 기초로 국민들에게 전혀 불필요한 국가안보에 대한 의구심과 불안감을 자극하고 고취해 국민들 스스로 독재와 식민의 구속과 속박에 몸을 내맡기게 만들고, 수구세력의 발호와 사기극을 수용하도록 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상의 자유 억압하는 국보법 ‘폐지론’ 계속 제기

이처럼 국보법은 처벌에 애매한 규정을 갖고 있어 오래 전부터 ‘막걸리법’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변호인단의 장경욱 변호사는 더 나아가 “국보법 적용시 보통 연구목적이나 다른 목적이 있다고 판단되면 이적 행위로 보지 않는데, 국보법 전과가 있거나 통일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일 경우에 대해서는 이적 목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내면에서는 볼 수 없는 이적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위험하다고 판단해 처벌한다”고 꼬집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의미다.

이에 따라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만큼 사상의 자유 보호라는 측면에서 오래 전부터 국보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권 안팎에서 꾸준하게 제기되고 있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국보법 개정 또는 폐지를 언급했고, 참여정부 초기 국회에서 실제 추진되기도 했었다. 국제기구인 국제사면위원회(엠네스티)와 유엔 인권이사회에서도 국보법의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변호인단은 의견서를 통해 “국보법의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바로 기본권 중 기본권인 ‘사상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인 ‘확인하고, 생각하고 따져보며, 비판할’ 자유의 근원을 짓밟는다는 점”이라며 “국보법은 '북한'의 실체에 대해 자유롭게 정보를 획득하고 그 정보를 기초로 자유롭게 사고해 자신의 견해를 형성하고, 그 형성된 견해를 토대로 잘못된 견해를 비판해 가장 올바른 사고체계를 형성하며 그에 기초해 가장 올바른 정치적 행동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고 비판했다.

변호인단 측 증인으로 법정에 나왔던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국보법상 찬양·고무·선전·동조죄는 개인의 사상이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 요소가 있어 폐지해야 한다”면서 “이런 이유에서 UN인권위원회와 앰네스티 등에서도 국가보안법에 대해 꾸준히 폐지를 주장하며 비판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의 주장과 표현을 그 자체만으로 금지하는 것은 헌법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변호인 vs 검찰 재판을 둘러싼 진풍경

른바 '내란음모' 사건이라는 거대한 희극의 소품들. 언론의 무차별적인 보도 행태와 국정원의 이석기 의원에 대한 강제 구인, 수사과정에서 나타난 국정원의 '오버', 법정 밖 보수단체들의 행태들은 또 다른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따옴표 저널리즘’의 극치를 보여줬다.”

2013년 8월 28일. 국정원은 이 날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자택과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 등 18곳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갔고, 이상호·홍순석·한동근 등 3명을 체포했다. ‘내란음모·선동’ 및 ‘이적동조’ 혐의였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로 33년 만에 ‘내란음모’가 부활한 것이다. 다음날 조간 신문들의 1면은 ‘내란음모’, ‘이석기’로 도배가 됐다.

국정원, 진보당 이석기 의원실 압수수색’ <경향신문>
“이석기, 국가기간시설 타격·인명살상 모의” <국민일보>
“이석기, 통신-철도-가스시설 파괴 모의” <동아일보>
국정원 “이석기, 조직원에 총기 준비” <서울신문>
“이석기, 북 남침 때 국가시설 파괴 준비” <세계일보>
“이석기 의원, 총기 마련해 국가시설 파괴 모의” <조선일보>
“애국가 거부 이석기, 적기가는 불렀다” <중앙일보>
‘내란음모죄’의 부활 <한겨레>
33년만에 재등장한 내란음모 사건 <한국일보>

- 2013.8.29 <미디어오늘> 참조

국정원이 흘린 내용은 주요 언론들에 의해 그대로 기사화가 됐고, 무차별적인 피의사실 공표가 시작됐다. <미디어오늘>이 수사 개시 하루 만에 “언론에선 재판 ‘끝’”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였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2013년 8월 29일자 주요일간지 모니터 보고서에서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은 ‘따옴표 저널리즘’의 극치를 보여줬다”며 “국정원의 주장을 그대로 ‘기사제목’으로 담았는데 <“이석기 의원, 총기 마련해 국가시설 파괴 모의”>(조선, 1면), <이석기 참석 회의서 “결정적 시기 무장봉기”…출국금지>(중앙, 3면) <“이석기, 통신-철도-가스시설 파괴 모의”>(동아, 1면) 등으로 뽑아 기정사실화하는 모양새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민언련은 기사 내용에 대해서도 “조중동은 ‘국정원 관계자에 따르면~’, 혹은 ‘알려졌다’, ‘전해졌다’는 서술어를 사용하며 국정원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쓰기 하면서 ‘내란음모’에 힘을 실었다”고 비판했다. 또한 “‘익명의 취재원’의 발언은 취재원 보호 등의 목적을 수반함과 동시에 기사의 신뢰성을 위해 최소화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조중동은 익명의 취재원을 동원해 이 의원이 도주한 것으로 몰아가거나 확인되지 않은 국정원의 주장이 모두 진실인 것처럼 기사화 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행태는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에서도 일부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한국일보>에 유출된 국정원 작성 ‘녹취록’

2013년 8월 29일 저녁 9시께 <한국일보>는 국정원으로부터 유출된 이른바 ‘녹취록’ 발췌본을 온라인을 통해 공개한다. 급하게 축약·작성하는 과정에서 상당수 오타도 포함된 ‘미완성’ 기사였다. <한국일보>는 곧 온라인 기사를 내렸지만, 이미 퍼져나간 뒤였다. 이 날 <한국일보>의 녹취록 보도는 이 사건에 대한 ‘여론재판’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후 <한국일보>는 며칠 뒤인 9월 2일과 3일, 이틀에 걸쳐 A4용지 62쪽에 분량의 녹취록 전문을 지면에 게재한다.

◇ <조선일보>, <세계일보>의 ‘녹취록’ 베끼기 논란 = 2013년 8월 30일자 <조선일보>와 <세계일보>는 <한국일보>가 잠시 공개했던 기사와 똑같은 내용의 ‘녹취록’을 게재한다. 그러나 이는 ‘베끼기’ 논란에 휘말린다. <한국일보>가 작성 과정에서 낸 ‘오타’나 사용한 ‘표기법’이 그대로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철도가 지나가는데 있어 가지고 통제하는 곳 이거를 파괴하는 것이 통제하는 곳 이거를 파괴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 방법”라고 같은 표현이 반복되는 부분, ‘진공형태’를 ‘전공형태’라고 잘못 적은 부분이 대표적인 예다. <한국일보>가 ‘미상남’을 ‘신원미상 남자’라고 표기를 바꾼 부분 역시 똑같았다. <세계일보>는 <한국일보>가 출처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인터넷 사이트에서 구했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일보>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았다.

◇ 기자상 받은 <한국일보>, 그러나 ‘녹취록’은 수백 곳 ‘오류’ = ‘단독 입수’를 내걸고 ‘녹취록’을 보도한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들은 지난해 9월 제276회(8월)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1’ 부문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이들이 공개한 녹취록은 그야말로 ‘오류투성이’였다. 국정원은 지난해 11월 ‘전쟁 준비’를 ‘구체적 준비’로, ‘결전 성지’를 ‘절두산 성지’로 고치는 등 총 112곳을 수정해 제출했다. 같은 달 19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수정된 곳은 272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변호인단은 재판 과정에서 ‘왜곡’과 ‘오류’로 나타난 부분이 400곳 이상이라고 주장하며 수정된 녹취록을 증거로 제출하기도 했다. 이처럼 ‘누더기’가 된 녹취록 관련해 한국기자협회가 상을 취소하거나, <한국일보>가 스스로 반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검찰도 “혐의사실 보도는 부적절”…무차별적 보도행태 비판

“이번 사건에서 독특한 게 수사 중에 진위를 떠나 각종 보도들이 너무나 많이 나왔다.”

차경환 수원지검 2차장검사가 지난해 9월 10일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그는 “공안 사건에서 유례가 없다”며 “보도가 엄청 많이 나왔는데 혐의 사실 보도는 부적절하다”고 피의사실 관련한 무차별적인 언론보도 행태에 대해 비판했다.

당시 ‘공안당국 관계자’ 발(發)로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이름도 생소한 ‘여적죄’ 혐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으나, 차 차장검사는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며 “우리가 확인해 줄 내용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통합진보당 김미희 의원이 ‘RO’의 총책이라는 보도에 대해서도 “국정원 대변인에게 확인했더니 자기도 일체 수사 사항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하더라”라며 “보도는 확인하고 써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당사자인 김미희 의원은 해당 언론사를 고소했다.적국과 합세해 대한민국에 항적한 죄. 형법 93조(여적)는 ‘적국과 합세하여 대한민국에 항적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차 차장검사는 이틀 뒤, 이석기 의원 검찰 송치를 앞둔 9월 12일 간담회에서도 ‘국정원이 RO 핵심 조직원들이 공중전화로 미국과 중국을 거쳐 북쪽 인사들과 접촉한 것을 확인했다’는 보도에 대해 “공중전화 감청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영장을 (국정원으로부터 청구)받은 적이 없다. 확인 안 된 채 쓴 것”이라고 부인했다. ‘RO 모임 참석자 중 현직 공무원 30~40명이 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보고받은 것에 의하면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차 검사는 “확인되지 않는 내용이 언론에 흘러나와 수사팀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카카오톡 화면도 조작한 언론

◇채널A의 황당한 ‘카톡 화면’ 조작 = 2013년 9월 17일 <동아일보>는 국정원이 서울 마포구 오피스텔에서 압수한 이석기 의원의 아이패드에서 아들에게 “주체사상 철저히 공부하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어 같은 날 오후 채널A <이언경의 직언직설>은 이석기 의원과 아들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임의로 제작해 방송에 내보냈다. 방송 하단에는 “아들아, 주체사상 철저히 공부해라”는 자막이 계속 떠 있었다.

이석기 의원과 아들의 카카오톡 내용을 임의로 제작해 방송했던 채널A (화면캡쳐)

이 의원은 이들 언론을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이 의원 측은 고소장에서 “고소인의 오피스텔에서 발견된 아이폰에는 아이폰을 이용해 아들에게 보낸 이메일이 있었을 뿐이고 이메일의 내용은 고소인이 아들에게 19,200불 보낸 사실, 유물변증법이 근대철학의 정수이니 공부하라는 내용이 있었을 뿐 주체사상과 관련된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특히 채널A가 내보낸 카카오톡 대화장면은 누가 봐도 명백한 ‘조작’이었다. 변호인 측은 이석기 의원이 카카오톡을 사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제 카카오톡 대화창과도 다르다고 지적했다. 해당 장면에는 이석기 의원의 대화가 왼쪽에 흰색 말풍선으로, 아들의 메시지는 오른쪽 노란색 말풍선으로 표시돼 있다. 그러나 스마트폰 사용자 본인의 메시지가 오른쪽에 노란색으로 표시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 같은 배치는 아들의 스마트폰을 압수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구도다. 게다가 대화창에는 사용자 본인의 사진은 뜨지 않고 상대방의 사진만 표시되는데, 채널A가 내보낸 화면에는 이석기 의원의 사진만 떠 있다.

‘이민위천’이 북한 연계 증거?

◇DJ, 강재섭도 쓴 ‘이민위천’ = 2013년 8월 29일 <문화일보>는 “국정원이 이석기 의원의 서울 동작구 사당동 자택의 벽에 걸려있던 ‘이민위천(以民僞天:백성을 하늘같이 여긴다)’이라는 액자 속 글귀가 김일성 북한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강조한 좌우명인 것으로 보고 북한과의 연계 여부를 수사 중”이라고 보도했다. <문화일보>는 “국정원에 따르면 김일성은 지난 1992년 4월 발행된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이민위천은 나의 지론이고 좌우명’이라고 밝혔다”는 등의 설명을 덧붙였다. 많은 언론들이 이를 인용해 비슷한 내용을 보도했다.

그러나 ‘이민위천’은 중국 역사서인 사마천의 <사기> ‘역생육가열전(酈生陸賈列傳)’에 나오는 말로, 뜻이 좋아 과거 정치인들도 자주 사용했던 글귀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4년 12월 31일 신년 대담에서 “우리는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 동양의 이민위천 사상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문구가 담긴 김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는 2009년에 미술품 경매에 나와 950만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휘호. 이민위천.

2007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의 강재섭 당시 대표는 신년사에서 이 글귀를 인용했다. 강 대표는 “국민을 하늘처럼 섬기는 이민위천의 마음가짐으로 새롭게 출발하겠다”고 말했다.

이석기 의원 강제구인영장 집행

2013년 9월 4일 오후 4시 26분,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 처리됐다. 재석 289명 중 찬성 258명, 반대 14명, 기권 11명, 무효 6명이었다. 이 의원은 체포동의안 가결 직후 결연한 표정으로 본회의장을 빠져나왔다.

“오늘 한국의 민주주의 시계는 멈췄습니다. 유신시대로 회귀했다고 봅니다. 한국의 정치는 실종되고 국정원의 정치가 시작됐습니다.”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 잠시 멈춰선 이 의원은 이같이 말한 뒤 국회 본관을 나와 진보당 이정희 대표와 의원들과 함께 계단으로 내려왔다. 밖에는 200여 명의 진보당 당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이 응원의 함성을 보내자 이 의원은 환하게 웃으며 오른손을 번쩍 들어 보였다. 이 의원은 당원보고대회에서 “거짓이 진실을 이기는 역사는 없다. 국가권력이 아무리 세도 국민을 이기지 못한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처리된 직후 바로 이 의원 구인을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도주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이 의원 측은 다음 날 오전 10시 30분으로 확정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준비하다가 국정원 측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뒤늦게 전해 듣고, 변호인을 부르는 등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정원은 오후 6시 30분 수원지방법원을 통해 구인영장을 발부받은 뒤 오후 7시 15분께 국회 의원회관 520호 이석기 의원실에 들이닥쳤다. 의원실 앞은 진입하려고 하는 국정원 직원, 경찰들과 이를 막고자 하는 당원들 간 몸싸움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이 의원 측 보좌관은 변호인이 올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요구했지만, 국정원 측은 막무가내였다. 결국 7시 30분께 국정원 직원들이 의원실에 진입했다. 그 사이 경찰들은 의원실 앞을 막고 있던 당원들을 한 명씩 뜯어내 바깥쪽으로 내보냈다. 이를 막고 있던 김재연 의원은 탈진해서 실려 나갔다. 경찰들은 길게 늘어서 라인을 형성했다. 의원실 안에서는 이 의원과 국정원 측이 협의를 진행했다.

동영상 - 2013년 9월 4일 이석기 의원실 앞

이석기 의원은 영장실질심사에 출두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국정원은 하루도 기다리려하지 않았다.

이석기 의원은 협의를 마친 뒤 8시 10분께 의원실을 나섰다. 그는 의원실을 나서면서 “진실과 정의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국정원의 공작정치는 실패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8시 30분께 호송차량에 올라 수원지법으로 향했다.

현직 의원에 대해서는 자진 출두를 허용해 온 관례들에 비춰볼 때, 이 의원에 대한 강제 구인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국정원은 이를 위해 매우 신속하게 움직였다.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지 2시간 만에 구인 영장을 발부받았고, 그 뒤 1시간도 채 안 돼서 의원실에 들이닥쳤다. 진보당 홍성규 대변인은 국정원이 급하게 강제구인에 나선 이유와 관련해 “단 한 가지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은 밤 9시 뉴스, 전 방송사를 통해 굉장히 어수선하고 폭력적인 상황에서 현역 국회의원을 범죄자 끌고 가듯이 끌고 가려는 영상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려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정원의 오버

국정원이 펜치로 자기 카메라 메모리를 부순 이유

2013년 11월 29일. 국정원 소유의 디지털 카메라 메모리카드가 펜치로 잘게 잘게 부서졌다. 메모리카드를 부순 이는 다른 이가 아니라 국정원 직원이었다. 이렇게 황당한 일이 벌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국정원이 CNC 사무실에서 압수한 변호인단 소송 관련 자료들에 대해 포렌식 작업을 하던 컴퓨터 화면을 찍은 사진(변호인단 제공)

국정원은 같은 달 14일 오전 이석기 의원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로 CN커뮤니케이션(CNC), 길벗투어, (주) 나눔환경 등 업체와 직원들을 내란음모 및 국가보안법 위반(이적동조) 혐의로 압수수색했다. CNC 사무실 압수수색 과정에서 국정원 수사관들은 이 사건 변호인단의 회의 자료가 든 SD카드까지 압수했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변호인단 소송관련 자료에 대한 압수는 형사소송법상 피고인 측의 방어권과 변호권 침해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 입회한 변호사는 이 문제를 제기하며 압수를 제지했지만, 국정원 수사관은 “봉인한 채 일단 압수할 테니, 추후 봉인해제 때 부르면 입회하라”며 압수를 강행했다.

이후 국정원은 문제의 11월 29일, 변호인단에 SD카드 봉인 해제 방침을 통보했고, 당시 현장에 입회했던 변호사가 서울 내곡동에 있는 국정원 본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국정원 수사관들은 당시 디지털 포렌식 기계에 이 SD카드를 넣고 파일을 옮기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수사관들은 “파일 이름만 봐서는 (소송자료인지) 모른다”며 10여 개의 파일 중 3개를 열어봤다. 이 파일들 이름은 ‘1024 회의.txt', '1018.txt', '소감문정리.hwp'이다.

디지털 포렌식
PC나 노트북, 휴대폰 등 각종 저장매체, 또는 인터넷 상에 남아 있는 디지털 정보를 분석해 범죄 단서를 찾는 수사기법

변호사는 “이거 소송자료 아니냐. 포렌식 그만하라”고 항의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러자 수사관들도 “증거를 남겨야 한다”며 문서 내용을 화면에 띄운 채 그 내용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었다. 수사관들이 문서 내용을 사진으로 찍는 행위는 ‘압수’에 해당하는 행위로 볼 수 있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변호사는 “사진을 왜 찍냐. 압수 아니냐”고 다시 항의했고, 수사관들은 “압수가 아니라 수색”이라고 맞섰다. 변호사는 “내용물을 가져갔는데 무슨 수색이냐”고 지적했다.

결국 문제가 되자 국정원 측은 포렌식 작업을 통해 옮긴 파일들을 V3 프로그램을 이용해 완전히 삭제했고,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파일도 삭제했다. 그러나 디지털 카메라 메모리카드에서 삭제된 파일은 포렌식 작업을 통해 언제든 복구가 가능하다. 변호사가 이 문제를 지적하며 메모리카드를 넘겨달라고 요구했고, 국정원은 이를 거부한 채 일단 봉인 조치를 했다.

이 사안이 이 날 오후 수원지법에서 진행 중인 재판에 들어가 있던 변호인단에게 전해졌고, 변호인단은 “공소 기각까지도 갈 수 있는 사안”이라며 이 강하게 문제제기했다. 그러자 검찰은 “처음 듣는 내용”이라며 “해당 파일을 촬영한 디지털 카메라 메모리를 국정원이 갖고 있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인정되니 변호인 입회 하에 메모리를 빼내 이미징하고 파쇄하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변호인단이 즉각적인 조치를 요구하자, 재판부는 “압수수색 절차가 위법했다면 증거로 채택하지 않는다”며 “검사 한 명이 법정 밖으로 나가 사실관계를 확인하라”고 주문한 뒤 10분 간 휴정했다. 이 사이 국정원에서 수사관들은 “검사의 지휘를 못 받았다”며 버텨,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사관들과 변호사의 대치가 이어졌다.

오후 5시 반이 넘어서야 국정원 측은 “이제 (검사로부터) 연락이 왔다”며 “메모리카드를 완전히 파쇄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국정원 수사관은 디지털 카메라의 메모리카드를 잘게 부수고 파편을 재봉인했다.

국정원의 황당한 실험들…철탑파괴, 폭발물 실험

◇‘상상’ 기반으로 진행된 철탑파괴 실험 = 재판이 진행 중이던 2013년 11월 26일, 국정원은 국정원 직원 2명과 공주대 김모 교수, 용접공, 한전 직원 2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기도 하남시에서 철탑 너트를 풀거나 산소용접기로 철근을 절단하는 이른바 ‘철탑 파괴’ 실험을 진행한 뒤 실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취지의 실황조사서를 제출했다. 당시 실험을 한 국정원 수사관 이모씨는 14차 공판(2013.12.5)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실제 철탑(두께 25mm, 폭 250mm)보다 3배 크고 13배 가량 무거운 신형 철탑 재료로 실험했는데 절단에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며 “기둥 4개인 실제 철탑을 자르는 데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고 진술했다. 또 자신이 직접 해 본 결과 나사 하나를 푸는 데 걸리는 시간이 1분 정도로 50분이면 48개의 나사를 모두 풀 수 있다며 철탑 파괴가 대단히 쉽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수사관은 ‘이석기 피고인이 5·12 강연 당시 하남동 철탑에 대해 언급한 일이 있느냐’는 변호인단의 질문에 “없는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또 ‘이석기 피고인이 절단이나 볼트 해제로 철탑을 무너뜨리는 것을 언급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절단 실험 등의 방식을 채택한 이유에 대해선 “어떤 방법이 있는지 생각해 보니까 용접기로 자르는 방법도 있을 것 같고 나사를 푸는 방법도 있을 것 같아서 그 실험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자신의 ‘상상’에 근거해 실험을 진행한 것이다.

◇‘제조법’ 파일 열람 여부 확인도 안하고 ‘폭발물 실험’ = 국정원의 과장된 ‘폭발물 실험’도 도마 위에 올랐다. 국정원은 김홍열 피고인의 컴퓨터에서 압수한 ‘제조법’대로 폭발물을 제작해 모의실험을 했다면서 실험 결과를 증거로 제출했다. 국정원은 온라인 사이트에서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는 ‘의학정보’ 중 ‘니트로글리세린’, ‘질산 셀룰로오스’ 등 4개의 텍스트 파일들을 지목하며 이 파일들이 ‘사제폭탄 제조법’이라고 주장해왔다. 앞서 남재준 국정원장은 지난 10월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해당 실험 동영상을 상영하며 ‘RO 사제폭탄, 살상력 30m’라고 설명했고, 실험결과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이 실험은 과장된 것으로 드러났다. 실험결과 수사보고서를 작성한 국정원 최모 수사관에 대한 증인신문(13차 공판, 2013.12.3)에서 변호인단은 “파일 내용대로 실험할 경우 얻을 수 있는 니트로글리세린 양은 5㎖, 질산 셀룰로오스 양은 0.5mg에 불과하다”며 “하지만 국정원은 2차 실험에서 니트로글리세린 130㎖, 질산 셀룰로오스 5.5g을 합성해 실험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질산 셀룰로오스의 경우 정량 제조법의 1만1천 배에 달하는 양”이라고 강조했다. 재판부가 이 점을 다시 확인하자 최 수사관은 이를 시인했다. 최 수사관은 또한 화학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었고, 실험 당시 입회하지 않은 것도 드러났다.

심지어 국정원은 김 피고인이 ‘제조법’이 담겼다는 파일을 열람했는지도 확인하지 않았다. 컴퓨터 하드디스크 사본을 분석해 보고서를 제출한 민간 포렌식 전문가 최모씨는 15차 공판(2013.12.6)에서 변호인단이 ‘언제 열람됐는지 여부 및 마지막 접근시점에 관해 분석했느냐’고 묻자 “(국정원의) 의뢰 사항이 아니라서 분석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재판부가 이를 다시 확인하자 그는 같은 답을 내놨다. 변호인단은 재판 직후 “황당하다”며 “파일 열람 여부도 확인 안 한 채 폭발실험을 벌이고 사진을 공개한 것은 국정원이 벌인 대표적인 사법 이벤트로 기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정원의 계속되는 ‘상상력’

◇‘RO’ 자금이라던 1억 4천여만 원, 증거 불채택 = 국정원은 지난해 8월 이석기 의원 자택 압수수색 당시 신발장과 옷장 등에서 현금 1억 4천500여만 원, 책상 서랍에서 루블화 30만 원 상당, 달러화 등을 찾아 압수했다. 공안당국은 이 돈이 ‘RO 자금’이라고 지목했다. 또 ‘루블화(러시아 화폐)’와 관련해선 북한과 연계된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석기 의원 측은 원화 현금에 대해선 ‘임대차 보증금’이라고 반박했다. 루블화 등에 대해선 2013년 8월 22일 러시아 야스니 발사장에서 발사된 아리랑 5호 참관을 위해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 자격으로 러시아를 방문하면서 환전했던 돈이라고 밝혔다.

이석기 의원이 2013년 8월 22일(한국시간) 러시아 야스니 발사장 현지에서 아리랑 5호 로켓 발사를 축하하고 있는 모습.

재판부는 38차 공판(2014.1.17)에서 현금에 대해 “이 돈이 RO 자금인지 소명되지 않았다”며 증거로 불채택 했다. ‘임대차 보증금’이라는 변호인 측 주장도 소명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루블화에 대해선 검찰이 전날 증거 신청을 자진 철회했다.

◇스마트폰 ‘한국전력’ 검색이 내란음모 증거? = 국정원은 이상호 피고인이 스마트폰으로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를 검색한 것을 ‘국가기간시설 정보수집’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정작 검색 뒤 어느 사이트로 이동했는지는 분석조차 하지 않았다.

15차 공판(2013.12.6)에는 이 피고인의 자택 압수수색에 참여했고, 압수된 스마트폰 검색 결과를 분석한 국정원 변모 수사관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변 수사관은 스마트폰을 MD 스마트 프로그램으로 이미징한 증거를 분석한 결과, 지난 7월 24일부터 8월 21일까지 이 피고인 스마트폰으로 한전과 가스공사를 검색한 횟수가 최소 19번 이상이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그는 이 피고인이 ‘한전’ 등을 검색한 다음 어느 사이트로 이동했는지는 확인하지 않은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변 수사관은 ‘피고인이 모바일폰을 이용해 한국가스공사, 한국전력 관련된 사이트를 방문했는지 확인됐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확인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변호인단은 “‘한국전력’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하면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정보는 ‘실시간 증권정보’밖에 없다”며 “한국전력 홈페이지에 접속하거나 연관된 다른 사이트를 클릭하지 않으면 관련 정보에 접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피고인의 부인은 실제 3천만 원을 투자해 한전 주식 900주를 보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부가 ‘기술적으로 확인이 가능하다면서 왜 분석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하자 변 수사관은 “발견을 못 했다”고 얼버무렸다. 재판부가 ‘한국전력을 입력해 다른 사이트로 들어간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거냐’고 다시 묻자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롯데백화점에서 ‘내란음모’ 정보 수집? = 검찰은 한동근 피고인이 지난해 6월 2일 서울 중구 무교동 소재 한국정보화진흥원 인근에서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한 사실이 있다며, 이를 ‘내란음모’를 목적으로 한 정보수집 활동이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이 지목한 파괴 대상 시설인 한국정보화진흥원은 롯데백화점 인근에 있다. 지도의 A지점이 한국정보화진흥원이고 B지점이 롯데백화점 본점이다. 구글지도에서는 도보 8분거리로 나온다. 백화점에서 만약 아무 것도 사지 않았다면, 혹은 을지로 인근에서 배회한다면 당신도 ‘RO’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당일 한 피고인은 아내와 아들과 함께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 있었다. 변호인단은 한 피고인이 당시 롯데백화점에서 가방을 구입한 카드 영수증을 증거로 제시했다. 한 피고인은 42차 공판 피고인 신문에서 “(당시 통화는) 백화점 화장실에서 아내를 찾는 전화였다”고 말했다. 이어 “(정보탐지라는 주장이) 굉장히 황당했다”며 “수사자료를 보면서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을지로 근처에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덧붙였다.

◇‘선거운동 인명부’가 ‘RO’ 자료? = 국정원은 김근래 피고인 관련 외장하드에서 압수한 1만1천명의 주소, 연락처, 직업 등이 담긴 ‘조직.xls’ 파일에 대해 ‘RO 근거지 확대 자료’라며 ‘전시 상황에 민감한 자료’라고 규정했다. 검찰은 이석기 의원이 2012년 8월 소위 ‘5대 방침’을 내렸고, 이 자료는 그 방침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해당 파일이 생성된 시점은 2006년 11월 18일, 2007년 7월 3일, 2008년 7월 8일로 드러났다. 변호인단은 20차 공판(2013.12.16)에서 이 같은 사실을 근거로 이 자료가 ‘선거운동용 인명부’라며 “지하조직의 전략자료라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공안기관의 공안적 상상력”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재판부는 당시 증인으로 출석한 국정원 수사관에게 “문서의 성격으로 볼 때 김근래 피고인이 하남시에서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선거운동 목적으로 작성한 문서로 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수사관은 “나중에 어떤 목적, 어떤 방식으로 사용될지는 미지수”라고 답했다.

법원 앞 풍경

2013년 11월 12일. 33년 만의 ‘내란음모’ 사건 첫 공판이 열린 수원지방법원 앞에는 통일미래연대 등 탈북자 단체 소속 회원 60여 명이 진을 치고 있었다. 이들은 사흘 전부터 공판 방청권을 받기 위해 사흘 전부터 배부처 앞에서 노숙하며 밤샘 대기했다. 이들은 앞선 공판준비기일 때도 새벽부터 줄을 섰다. 그 시각이 점점 앞당겨져 공판 첫 날을 앞두고는 ‘사흘 전’이 된 것이다. 2차 공판부터는 방청권 배부를 ‘선착순’이 아닌 ‘추첨제’로 바꿔 줄을 서는 일은 없어졌지만 쉽게 볼 수 없는 ‘진풍경’인 것은 분명했다.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방청권을 요구하는 보수단체 회원들.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은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기도 했다.

첫 날 법정 안에서는 소란도 일었다. 일부 탈북자 방청객이 변호인단과 피고인들에게 욕설 섞인 고성을 질러 2명이 강제 퇴장을 당했고, 3명이 법정모독죄로 감치 재판에 넘겨져 3일 감치 처분을 받았다. 이들은 “저 XX 북한으로 보내”, “이석기 사형 안 하면 나라 망합니다”라고 외쳤다.

이날 수원지법 정문 앞 사거리는 이른 아침부터 보수단체 회원들과 통합진보당 당원들, 경계를 서는 경찰들이 뒤엉켜 매우 혼잡스러웠다. 충돌 가능성도 있는 만큼 긴장감도 팽배했다. 보수단체 회원 300여 명은 수원지법 좌측 건너편 인도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이석기 엄벌’ 등을 외쳤다. 진보당 당원 100여 명은 우측 인도에서 정당연설회를 열고 ‘국정원 규탄, 이석기 의원 석방’ 등을 촉구했다.

이 같은 풍경은 앞선 4차례의 공판준비기일부터 계속돼 온 모습이었다.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리던 2013년 10월 14일 수원지법 앞에서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이 의원 등을 호송하는 버스를 막기도 했고, 피고인 가족들의 신변에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그러자 같은 달 22일 열린 2차 공판준비기일에 피고인들은 신변 위협과 충돌 방지를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다. 변호인단은 가족들에 대한 신변 위협 문제를 제기했고, 재판부는 유감을 표한 뒤 “이는 범죄행위로 구성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며 재발 시 특별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이 날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수백 명의 보수단체 회원들은 군가를 틀어놓고 “이석기 사형” 등을 외치며 얼굴 사진에 구멍을 뚫고 훼손하는 등 위협적인 퍼포먼스를 행하고 있었다.

재판이 수개월 진행되는 동안 이 같은 격한 분위기는 다소 수그러들었다가 이석기 의원에 대한 피고인 신문이 있던 1월 27일 다시 불이 붙었다. 이 날 진보당원과 인권단체 관계자 40여 명은 법원 정문 우측 건너편에서 구속자 무죄 석방을 위한 10만인 탄원 전달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각선 반대편 인도에는 보수단체 회원 100여 명이 군가를 틀어놓고 “이석기 처형”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든 사물의 너머에는 풍경이 있다.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33년 만의 내란음모의 뒤편에도 박근혜 정부의 비가역적(非可逆的)인 우경화라는 배경이 자리한다. 이 배경에 눈을 돌리자면 우리는 8월 28일의 이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국정원이 스스로 밝힌 것처럼 이 사건은 8월 28일에 시작하지 않는다. 국정원은 2010년 즈음부터, 더 정확하게 지목하자면 민주노동당이 분당의 아픔을 딛고 다시 정치의 현장으로 돌아온 시점부터 국정원의 관계 기관과 함께 TF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프락치 A씨가 국정원과 협조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국정원은 내란음모가 있었다는 5월 12일 직후에 ‘당연히’ 이를 파악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이 음모를 저지하지 않았다. 검찰의 설명대로라면 “다행히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면서 실행되지 않았을 뿐, 그 위험성은 여전한” 내란음모를 국정원은 알면서도 그대로 둔 셈이다. 국정원의 의문스러운 행적은 계속된다. 국정원은 7월 초순에는 이 의원을 비롯한 사건 관계자들에 대한 감청영장을 신청했는데, 이 영장에 이른바 ‘RO’의 총책으로 지목된 사람은 이 의원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내란음모가 있었다는 5월 12일과 내란음모가 ‘공개’된 8월 28일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촛불시위와 김기춘의 등장

그 ‘사이’를 설명할 두 개의 키워드는 점차 확산되었던 촛불시위와 지금은 ‘대원군’으로 불리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등장이었다.

이른바 ‘국정원 댓글녀’ 사건은 봄을 지나면서 대선 게이트로 발전했다. 박근혜 정부를 마땅찮아 했던 야권 지지자들은 시청 앞에 모여서 촛불을 들었다. 야권의 주요 정치인들은 이 촛불 시위가 대선불복으로 비칠까 우려했지만, 자신을 대한민국의 주인이라고 생각했던 시민들은 거리낄 것이 없었다. 촛불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종북’으로 두드려 맞아 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통합진보당이 원기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진보당은 8.15를 맞아 철야 시위를 벌였는데, 이 때 이미 2만여 명의 당원이 참가할 정도였다. 대선의 당사자이자 상반기 내내 ‘NLL녹취록’ 사건으로 주눅들었던 ‘친노’세력도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야권은 2012년 총선처럼 사이좋게 어깨를 걸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서울광장에서는 한 목소리를 내는 데 성공하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응은 김기춘 비서실장 기용이었다. 여름휴가에서 '저도의 추억'을 되새긴 박 대통령은 8월 5일 김기춘 실장을 불러냈다. 유신헌법의 기초를 닦았고 17대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선 ‘기춘대원군’의 등장은 박근혜 정부의 변곡점이 됐다. 박근혜 정부는 이제 더 이상 ‘경제민주화’나 ‘국민통합’에 대해 부담을 갖지 않게 됐다. 대신 자리를 차지한 것은 ‘비정상의 정상화’였다. 1987년 이후에 정치권에 입문한 사람에게 ‘내란’은 잊혀진 단어다. 하지만 내란을 감행한 바 있고, 반대파들을 내란으로 몰았던 이들에게 내란은 익숙한 단어일 테다. 일흔 세 살의 비서실장과 예순 여덟 살의 국정원장에게 ‘내란음모’는 전혀 낯설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의 등장은 성공적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상한가를 쳤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는 매주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을 조사해왔는데 내란음모 사건이 발표된 다음 주의 국정 지지율은 무려 67%에 달했다. 이 기록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최고기록이다.

리얼미터가 조사한 2013년 박근혜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평가 추이.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최고치를 기록한 시기는 내란음모 사건 발표 다음 주였다.

내란음모 사건은 무엇을 남겼나

박 대통령은 과거 3김이 그랬던 것처럼 공고한 지지자를 갖고 있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이나, 무척 불리했던 2012년의 총선과 대선에서 역전을 일구는 데는 박 대통령의 확고한 지지층이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만 승리한 것은 아니다.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나 복지 같은 야권의 이슈에 손을 내밀면서 간신히 승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연합을 일구어 냈다. 그 결과가 52:48이었다. 만약 박 대통령이 더 이상 야권의 이슈를 소화해 낼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스스로 더 강해질 수 없는 사람은 상대가 약해지길 기다리거나 상대가 약해지도록 공작(工作)해야 한다.

내란음모 사건은 성공적으로 보였다. 우선 진보당 자체가 물리적 타격을 입었다. 박 정부는 11월 5일에는 놀랍게도 진보당 해산심판을 청구했다. 진보당을 아예 없애버리겠다는 의지, 그것은 ‘행동주의적’ 저항세력의 핵심을 물리적으로 제거하겠다는 의지였다.

내란음모 사건은 범야권의 정서적, 정치적 단합을 무너뜨렸다. 이석기 체포동의안은 민주당과 정의당의 ‘찬성 당론’ 아래 통과됐다. 진보당원이나 지지자들은 다른 야당들에 ‘비겁하다’는 비난을 쏟아냈고, 다른 야당의 당원이나 지지자들은 진보당에 ‘무모하고 시대착오적’이라고 맞받았다.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은 차라리 모른 척하는 쪽을 선택하기도 했다.

내란음모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는 여권 지지층을 단합시켰다. 내란음모 사건의 법정에서 검찰은 끊임없이 ‘RO’의 위험성을 부각시켰다. 이정희 대표의 말처럼 이것은 “극단적인 적대의식이 만들어 낸 상상 속의 공포”다. 그 공포는 저항세력에게 작용하기 전에 우선 자기편에게 작용한다. 한번 만들어진 공포는 이제 자신의 부모였던 적대성을 부추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