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철썩같이 믿고 배가 물에 잠길 때까지 격실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던 착한 아이들이었다. 친구에게 자기 구명조끼를 벗어주고 또다른 친구를 구하러 들어갔다가 끝내 목숨을 잃었고, 두려움 속에서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낸 착한 아이들도 있었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어른들은 그 착한 아이들을 하늘나라로 보냈다.
"엄마, 내가 말 못할까봐 보내놓는다. 사랑한다"
단원고 학생들은 사고 직후 가족들에게 보내거나 친구들끼리 주고받은 문자와 카카오톡 메시지가 자신들의 마지막 흔적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 못했을 것 같다. “기다리라”는 안내 방송을 철썩같이 믿고 기울어진 배의 난간을 붙잡은 채 구조를 기다렸고, “꼭 살아서 다시 보자”는 희망의 말을 주고받았다.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차오르기 시작한 바닷물을 보며 얼마나 두려웠을까.
“기다리래. 기다리라는 방송 뒤에 다른 안내 방송은 안 나와요.” 배 안에 있던 단원고 학생의 마지막 문자 메시지는 해경의 구조가 시작된 지 한시간이나 지난 시점인 오전 10시17분에 보낸 것이었다. 격실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을 그 때까지도 이 학생은 승무원의 “기다리라”는 방송을 믿고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처음 출동한 해경 구조대는 배가 이미 많이 기울어져 격실 진입을 포기한 상태였다.
“엄마 내가 말 못할까봐 보내놓는다. 사랑한다” “왜...카톡을 안보나? 했더니...나도 아들~ 사랑한다♥♥♥” 배가 가라앉기 전 신모군이 어머니 장모씨와 나눈 문자 내용이다. 아들은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남겼고,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엄마도 사랑한다고 답장을 보냈다. 엄마의 마지막 말을 아들이 확인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누나 사랑해. 엄마한테도 전해줘. 그동안 못해줘서 미안해. 나 아빠한테 간다.” 철없는 줄로만 알았던 동생은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다. 남은 가족들에게 못다한 말을 침착하게 전한 동생은 두려움 속에서도 먼저 하늘나라에 가 있는 아버지 품에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연극부 사랑한다”
“다들 사랑해ㅜㅜㅜ”
“나도”
“...”
“정말로”
“야 진짜 진지하게”
“진짜 사랑해”
“우리 진짜 죽을 거 같애”
“내가잘못한거있으면 다용서해줘 사랑한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뭔가 잘못된 것임을 뒤늦게 파악한 연극부 학생들의 마지막 대화 내용이다. 긴급한 상황에서도 서로에 대한 사랑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단원고 담임선생님과 39명의 학생들은 단체 메시지 창에서 “다시 만나자” “살아서 만나자” “부디” “여러분 사랑합니다”라는 글을 주고받았다. 이들은 이렇게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친구에게 구명조끼 벗어주고 다른 친구 구하러 바다로 뛰어든 의인
바닷물이 차오르고 배는 기울어져 중심을 잡기도 힘든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준 뒤, 또다른 친구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다가 변을 당하고 만 정차웅 군의 사연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적셨다.
배가 가라앉는 그 순간에도 정 군은 친구들을 내보내기 위해 격실 안 구석에 있었다고 한다.
반에서 수학부장을 맡을 정도로 성실했다. 그의 책상에는 ‘공부 열심히 하기’라고 적혀 있었다. 정군은 또 성격이 활달해 친구들과 잘 어울렸다. 당연히 친구들도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친구였다”고 기억했다. 부모한테도 한없이 착한 아들이었다.
“그나마 혼자가 아니고 친구들이 많이 있어서 더 나은 것 같긴 해요. 혼자였으면 발걸음이 많이 무거웠을 것 같아요” 정군의 어머니는 오히려 친구들에게 고마워했다. 친구를 위하는 정군의 심성은 어머니를 쏙 빼닮은 듯했다.
“온유는 갑판까지 나왔다가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갔어요”
음악으로 환자를 치유하는 음악심리상담사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는 양온유 양의 꿈은 친구를 위한 희생과 맞바꿨다.
사고 당일 오전 7시 어머니에게 “배에서 자고 일어났다”고 문자를 보낸 것이 양 양의 마지막 소식이었다. 사고 소식을 전해들은 양 양의 아버지는 다급한 마음에 연신 통화버튼을 눌렀으나, 양 양은 받지 못했다.
아버지는 딸의 빈소로 찾아온 친구들의 말을 듣고서야 양 양이 왜 전화를 받지 못했는지 알았다. 양 양은 사고 직후 갑판까지 올라왔지만 선실에 있는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구명조끼도 입지 않고 선실로 내려갔다. 친구들은 “온유는 갑판까지 나왔다가 방에 남아 있는 친구들 구한다고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갔어요”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제서야 “그냥 나올 아이가 아니다. 그럴 줄 알았다”고 탄식했다. “차분히 기다리면 구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가 후회로 몰려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양 양은 어려운 가정형편에 도움이 되려고 다른 친구들이 학원을 가는 저녁 시간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었고, 대학 가산점이 될 수도 있는 학년 대표 자리를 친구에게 양보할 줄 알았다.
‘너랑 있으면 항상 좋은 기운이 넘쳤어’ ‘천국에선 마음껏 뛰어놀아’ ‘너는 나를 기억 못할지 모르지만 나는 너를 항상 밝고 쾌활한 친구로 기억하고 있어’ 등 장례식장에 붙은 친구들의 쪽지에서 우리는 온유의 생전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가장 빨리 탈출할 수 있었지만 “살려달라”는 친구들 비명소리에...
“엄마, 건강에 안 좋으니 과자는 조금만 먹어. 사랑한다고 말 못해서 미안해” 단원고 김주아 양이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엄마의 생일 선물로 평소 엄마가 좋아하는 과자를 가방 속에 몰래 넣어두면서 써놓은 편지 문구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까지 엄마 생일을 까먹지 않고 챙긴 착한 딸은 가는 순간까지 학생증이 든 지갑을 양손에 꼭 쥐고 있었다. 김 양의 아버지는 “우리가 찾느라 헤맬까 봐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부모님에게 잘했던 김 양은 친구들을 위한 마음도 각별했다. 가장 빨리 탈출할 수 있었던 왼쪽 가장자리 격실에 있던 김 양은 배 밖으로 빠져나왔다가 “살려달라”는 친구들의 비명소리를 듣고 차마 혼자 탈출할 수 없었다. 결국 김 양은 함께 나오던 친구의 만류를 뿌리치고 격실 안으로 뛰어들어갔지만,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김 양의 살신성인은 다른 가족들에겐 기적같은 선물이었다. 김 양이 속한 2학년 1반은 37명 중 20명이나 구조됐다.
구명조끼 끈 서로 묶고 서로 의지했던 남녀 학생
얼마나 춥고 무서웠을까. 지난 22일 발견된 남녀 학생 시신 2구의 구명조끼 아래쪽 끈은 서로 묶인 채 지탱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잠수부는 “얼마나 무섭고 힘들고 괴로웠겠냐. 공포에 맞서려고, 살고 싶어서 서로의 몸을 끈으로 묶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이 잠수부는 먼저 남학생을 발견했다. 남학생을 밀어 배 밖으로 나오려고 했으나 뭔가 딸려오는 느낌을 받았다. 남학생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 아래쪽 끈에 뭔가 연결돼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 끈을 당겼더니 여학생의 시신이 나왔다.
‘경향신문’을 통해 처음 보도된 이 사연은 많은 국민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두 시신을 발견한 잠수부는 “일생에서 가장 놀랍고 가슴 뭉클한 순간을 물속에서 맞이했다. 보통 시신은 물속에서 떠오르게 마련인데, 이 아이들이 떨어지기 싫어서 그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평안한 마음으로 떠났으면 좋겠다.”
두 학생의 시신 앞에서 잠수부는 고개를 숙이고 예의를 차렸다.
사고 소식을 듣고 진도로 향했던 엄마아빠들은 지금의 상황을 맞이할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전원 구조됐다는 소식을 들었고, 무섭고 추웠을 아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빨리 집에 데려가 든든하게 밥을 챙겨먹이려는 생각 뿐이었을 터. 하지만 하늘은 그런 엄마아빠의 생각을 사치라고 여겼던가 보다. 전원구조 소식은 한순간에 생사 불명으로 뒤바뀌었다. 엄마아빠들은 숨이 턱 막혔다. 그때의 악몽은 보름이 훨씬 지났음에도 현재진행형이다.
순간에 뒤바뀐 생사...애타는 기다림
“데려갈 줄 알고 왔는데...”
사고 첫날 가족들은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의 애끓는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치없는 파도는 모습도 드러내지 않은 채 철썩거리기만 했다.
가족들은 구조자 수와 실종자 수가 뒤바뀐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고, 분노를 억제할 수 없었다.
“이딴게 무슨 소용이야?”
소방당국이 마련해놓은 구조현황판은 땅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자녀들의 실종 소식에 오열하다 실신한 어머니들은 링거 바늘에 의지한 채 몸져누웠다.
“손만 내밀면 닿을 것 같고, 당장에라도 달려올 것 같은데, 기약 없다는 사실에 참담하기만 해요...지금 내 심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겠어요?”
새까만 바다를 바라보던 어머니는 비통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새벽에 일을 나가서 수학여행 가는 아들놈한테 잘 가라는 말도 못 했어요.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 뿐이에요.”
한 아버지는 깊은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냈다.
사고 첫날 밤 희생자 2명의 시신이 팽목항으로 들어온 뒤로 가족들은 아무런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가족 100여명은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사고 현장으로 나섰다. 앞장선 학부모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믿을 수가 없어 직접 확인하러 가야겠다”고 했다.
"제발 우리 아이를 데려가지 말아달라고 빌었어요. 배 안에서 공기도 주시고, 숨을 쉬게 해 줘서 꼭 엄마, 아빠 품에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바다의 용왕대신님이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실거라 믿어요.“
"24시간은 살 수 있다잖아요. 아직 24시간은 안 지나지 않았어요?"
"한 무리가 어디 안에 들어가 있대요. 아직까지도 숨을 쉴 수 있대요."
"남편한테 연락왔는데 민간 잠수부가 배 안에 애들이 살아있는 걸 확인했대요.“
여기저기서 기대 섞인 말들이 흘러나왔다.
사고현장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아들아, 엄마가 왔어."
"기웅아 힘내고 있어, 아빠가 찾으러 갔어."
"차라리 절 죽여주시고 애들은 지켜주세요."
"꼭 살아있거라.“
매서운 파도가 몰아치는 맹골수도에 간절한 외침이 울려퍼졌다.
자식 보고싶어 종교도 바꿀 수 있고, 발이 부스러질 때가지 걸을 수 있다
“혜선이 어머니에요. 원래 성당 다니는 분인데 예배도 드리고, 가끔씩 저렇게 불공도 드려요. 딸 보고 싶어서 하루에 수십번도 더 종교를 바꿔요. 얼마나 간절했으면...”
지난달 30일 팽목항을 살피던 정보과 형사가 바다를 보며 불공을 드리던 한 어머니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말했다.
자식을 찾고자 하는 심정은 이렇게 부모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내 자식 찾으러 갈 테니 말리지 말라”며 옷을 벗은 채 바다에 뛰어든 아버지가 있는가 하면, 한밤중에 상황실을 향해 무릎을 꿇고 “제발 살아돌아오게 해달라”며 빌기도 한다. 그 어떤 호소도 운명을 뒤바꿀 수 없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성 따위를 자식 향한 애끓는 마음에 앞세울 부모 누가 있으랴.
가족들은 20일 새벽 “청와대로 가겠다”며 장장 15km를 눈물로 걸었다. 구조작업이 늦어지는 데 대한 첫번째 집단행동이었다. 비와 눈물이 뒤섞이는 행진이 4시간 넘게 계속됐다. “우리 아이 살려내라”, “정부는 살인마”라는 구호를 쉬지 않고 외쳤다. 집단을 어떻게 조직해야 하는지, 구호를 어떻게 외쳐야 하는지, 시위 경험 한번 없는 부모들은 자식을 찾고자 하는 일념 하나만으로 역사적인 행진을 이끌어냈다.
발가락에 멍이 들고, 다리에 쥐가 나도 참고 걸었다. 슬리퍼와 하이힐을 신은 어머니들이 앞장섰다. 자식이 시신조차 찾지 못한 데서 터져나오는 울분에 그깟 고통을 어떻게 비할 수 있을까.
“저 차디찬 바다속에서 내 새끼가 추위에 떨고 있는데 어떻게 힘들 수가 있겠어요?”
“죽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차마 자식 배 가를 수 없는 심정
“우리 딸 살아나라, 살아나라.”
지난 23일 164번 시신 인양소식을 듣고 부인과 한걸음에 팽목항으로 달려간 김영오(50)씨는 딸의 얼굴을 보고 곧바로 자기 딸인줄 확신했다. 살아있는 딸이 잠시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김씨는 곧 깨어날 것만 같은 딸의 얼굴과 손, 발을 차례로 어루만졌다.
“내가 그걸 좀 알고 싶어.”
“무엇을요?”
“부검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
“나는 갔을 때 시신이 딱딱하게 굳어 있을 줄 알았어. 근데 너무 부드럽더라. 애 엄마가 너무 놀랬어.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 건지…. 너무 궁금하다 이거야. 분명히 질식으로 죽었을 것 같애.”
그는 딸의 시신이 너무 깨끗하고 부드러웠다는 데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다.
“부검하실건가요?”
한참동안 멍하니 땅바닥을 응시하던 김씨는 금세 정신이 들었는지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최대한 버티다 버티다 저체온증으로 죽었을 거야. 나는 애가 얼어서 죽었는지, 질식해서 죽었는지 알고 싶어. 그런데 하지 못하는 이 심정을 누가 알겠냐고. 두 번 배 가를 수는 없잖아. 얼마나 무서워서 엄마, 아빠 찾다가 죽었을까…. 그런데 또 칼을 댄다? 말도 안 되지.”
차마 부검을 결정할 수 없는 자신의 얄궂은 처지를 원망하는 듯했다. 그는 “분하고 억울하다”는 말을 수십번도 더 되뇌었다.
“그래도 찾은 것만으로 천만 다행이잖아. 못 찾은 사람들 얼마나 많아. 나는 찾았어. 그것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잠시나마 미소를 지었던 자신의 모습이 다른 실종자 가족들에게 미안했던 모양이다. 김씨는 “같이 있는 사람들한테 오히려 미안하다”고 말하며 숙연해졌다.
넉넉하게 키우지 못한 딸에 대한 미안함, 여태 자식을 찾지 못한 다른 부모들에 대한 미안함에 무거운 김씨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 건 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하게 돌아와줘서 너무 고마워. 아까운 딸을 잃었어. 너무 착한 우리 딸, 살아서도 착했던 우리 딸, 갈 때까지도 착해.”
통곡과 탄식의 공존...죽은 자식 찾은 부모가 기뻐하며 축하받는 얄궂은 풍경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 체육관의 떠들썩했던 밤은 어느 순간부터 적막감이 감돌았다. 지지부진한 시신 수습 소식에 지칠 대로 지친 부모들은 화를 낼 기력도 없다. 가족들의 쪽잠을 깨우는 건 "아, 아, 늦은 밤에 죄송합니다. 시신 인양 소식이 있어 말씀드립니다"라는 마이크 소리.
누워있던 가족들이 일제히 자리에 앉아 단상에 시선을 집중시킨다. 체육관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체육관 한 켠에 마련된 신원확인반 앞은 분주해진다.
"아이가 게임 중독이라 컴퓨터도 없애고 스마트폰도 안 줬거든요. 그래서 음악이라도 들으라고 MP3 플레이어를 하나 해줬어요. 요새 누가 MP3 플레이어 갖고 다녀요. 우리 애 확실한 것 같아요." 한 어머니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울먹거린다.
"우리 아이도 같은 데 있었네요. 4반 아이들이 다 같이 있었나봐요"
옆에 있던 어머니의 반색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정말 다행이네요. 그래도 같이 있었네요."
아이의 마지막이 외롭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에 어머니는 그 와중에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찾았어?"
"이름이 있어."
"검정 청바지, 목걸이, 맞네 맞아.“
팽목항도 신원확인반 앞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시신이 대거 인양됐다는 소식에 가족들은 신원확인 정보가 부착된 게시판을 분주하게 훑어내려간다. 학생증 이름을 확인한 가족들은 손을 맞잡은 채 발을 동동 구르며 눈물을 흘린다. 이번에도 자식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부모는 아쉬움에 탄식한다.
아이를 찾은 부모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찾지 못한 부모들을 위로하고, 위로를 받은 부모들은 진심이 담긴 축하를 건넨다. 절망적인 상황이 만들어낸 얄궂은 광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