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추모를 위한 민중의소리 인터랙티브 콘텐츠 '잊지 않을게' 3번째, 추모시 모음입니다. 한국작가회의에서 시와 격문 10편을 보내주셨습니다.

가만히 있지 말아라

정우영

숨가쁘게 기다리다 끝끝내 접히고 만,
저 여리디 여린 꽃잎들에게
무슨 말을 드려야 할까.
태초로 돌아가는데도 말이 필요하다면
그 중에 가장 선한 말을 골라
공순하게 바쳐 올리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궁리해도 나는
사랑한다 미안하다
이보다 선한 말 찾을 수 없다.
어떤 말이 더 필요하랴.
이 통절함 담을 말 어찌 있으랴.
새벽까지 뒤척이다 마당에 나와
팽목항 향해 나직나직 읊조린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동트기 전 대지에다 속삭인다.
얼마나 하찮은지 뻔히 알면서도
웅얼웅얼 여기저기 심는다.
불귀의 영혼들아, 사랑한다
내 속삭임 듣고 싹 틔워라, 빌면서
거듭거듭 단단하게 심는다.
이제는 기다리지 말아라.
가만히 있지도 말아라.
너는 이제 자유다, 아이들아.
그러니 가만히 따르지 말고
다시 태어나라, 아이들아.
다시 돌아와 온전히 네 나라를 살아라.
너희가 꿈꾸던 그 나라를 살아라.
사랑한다, 아이들아.
내 새깽이들아.

처음으로 돌아가기

또 다른 방주 타고 오시라

정원도

살아있는 날이 이리 숨 막히는 물 밑 나락일 줄은
밤 지새워 뜬눈으로
기진맥진 드러누운 진도 팽목항도 몰랐으리

까무러쳐 질식한 어린 꽃들을
사정없이 수장시키는 파도여 해풍이여!
갈팡질팡 절망한 채 이 땅을 버린 시신들을
맥없이 건져 올리는 것을 구조라 착각하는 나라여!

‘엄마 배가 가라앉나 봐! 나 어떡하면 돼?’
손톱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몸부림으로
목 놓아 불렀을 마지막 한사람 어머니!
저 저 자식들 앞에 두고는
도무지 불가능이 없던 그들조차
속수무책 실신한 흐느낌으로 할퀴고 파헤칠 뿐이네
돌아오지 않는 공허한 타전들만 겹겹이 벽에 부딪혀
물거품 되어 흩어졌네! 갇혔네!

이럴 거면 차라리 저희에게 박쥐의 날개라도
고래의 허파라도, 물고기의 아가미라도 내려주시지요!
저 침몰하는 어린 영혼들 어쩔 것이냐!
분노한 파도 끝으로 부서진 뼈들이
포말로 일어서는 아까운 내 새끼들 어쩔 것이냐!

움직이면 위험하니 꼼짝 말라면서도
단지 숫자가 되어 수시로 변하던 304위의 연꽃이여!

기울어져 가는 선실 창밖 내다보며
그래도 다가오는 헬기 소리만 믿고 애태우던
아! 새파랗게 질린 얼굴들 앞에 두고도
눈길 한번 안주고 도망쳐버린
선장 선원들 해경들과 선주목사와 관료들이 합작한 나라

이 음습하고 기나긴 밤을
건너는 즉시 되살아오시라!
새벽 빗줄기 무동 타고 찾아오시라!
너희들을 수장시킨 어른들의
죄 많은 뺨을 사정없이 때리며 오시라!
와서 이 오욕의 땅을 휩쓸고 가시라!

4월이면 흐드러지는 민들레씀바귀제비꽃들도
한 때는 방주타고 돌아온 꽃이다
그 꽃잎 속에 숨어 피었다가 모든 부끄럼 다 사라진 후에
심청처럼 또 다른 방주타고 되살아오시라!

처음으로 돌아가기

열일곱 나의 친구에게

박일환

세월호가 가라앉던 날
7교시에 방과후수업에 야자까지
정해진 일과는 빈틈이 없었다
어른들이 제일 먼저 달아난 선장을 욕하고
어른들이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며 탄식하고
어른들이 대한민국이 함께 침몰했다며 분노하는 동안
우리는 교실 안에 잘 갇혀 있었다
수학여행도 체육대회도 취소하고…
교실 안에서만 지내라고 했다
며칠 후에 치러진 중간고사 때는
정답은 시험지 안에만 있다고 했다
안에 있는 게 안전한 거라고 했다
안에서 가만히 기다리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어른이 되겠지
어른이 되어서도 기다리겠지
무얼 기다리는지도 모르고
가만히 앉아서 눈 감고 기다리다 보면
아, 저기 누가 오고 있구나
반갑게 손을 흔들고 싶은데
돌연 컴컴하고 아득하고 검질기게 들러붙어
숨구멍을 틀어막는 이 괴물은 뭐지?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순식간에
4월 16일의 진도 앞바다로 끌려 들어가는 악몽을
일상처럼 거느리고 살게 되겠지

이제 그만 밖으로 나오너라
어서 빨리 나오너라
부름의 시간은 언제나 너무 늦었고
야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 내 친구는 어디로 갔지?
나도 모르게 중얼거릴지도 몰라
정답과 오답이 뒤바뀐 답안지를 들고
차가운 물속으로 하염없이 잠겨 들어간
친구야
친구야
친구야
부르다 왈칵 눈물이 쏟아질지도 몰라

너와 나는 똑같은 열일곱
먼 훗날 나의 열일곱을 생각하다
영원히 열일곱으로 남은 너를 떠올릴 테지
가만히 기다리라는 말,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그 말도 함께 떠올릴 테지
그때까지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친구야
친구야
친구야

처음으로 돌아가기

마지막 에어포켓

함민복

1

우리는 컨테이너를 먼저 구하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물질만능주의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은 과적하지 않고 화물만 과적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존엄성을 지켰다)
우리는 배의 적재량을 덜기위해, 가만히 있는 것보다 위험한 탈출을 단행하였다
(우리가 희생정신으로 승선자들의 생명을 지키고 싶었다)
우리는 효과적인 고용창출의 일환으로 비정규직을 고용했다
(우리는 가급적 많은 노동자들에게 취업의 기회를 주려했다)
우리는 구조자와 실종자의 숫자 발표에 유동성을 가졌다
(우리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고, 그만큼 우리의 데이터는 방대하고 치열했다)
우리는 민간업체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우리는 위급상황에서도 원칙을 준수했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는데 우리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마라
(우리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상처만 줄 뿐이다)
우리는 억울하다
푸른 바다만이 우리들의 충정을 알아주리라
얼토당토않은 변명이
여기저기서 들리는

2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배가 더 기울까봐 끝까지
솟아오르는 쪽을 누르고 있으려
옷장에 매달려서도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믿으며
나 혼자를 버리고
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갈등을 물리쳤을, 공포를 견디었을
바보 같이 착한 생명들아! 이학년들아!

그대들 앞에
이런 어처구니없음을 가능케 한
우리 모두는…….
우리들의 시간은, 우리들의 세월은
침묵도, 반성도 다 부끄러운
죄다

쏟아져 들어오는 깜깜한 물을 밀어냈을
가녀린 손가락들
나는 괜찮다고 바깥세상을 안심시켜주던,
가족들 목소리가 여운으로 남은
핸드폰을 다급히 품고
물속에서 마지막으로 불러보았을
공기방울 글씨
엄마,
아빠,
사랑해!

아, 이 공기,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3

DNA로 자식을 상봉하는
진도 바다 곁 울음바다 팽목항에
또 한구의 희생자가 올라온다
저리 슬픈 느낌표를 보았느냐
움직이지 말라는 말을 신뢰한 죄로
영원히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된
저리 슬픈 느낌표를 보았느냐
우리들에게 가만히 있지 말라고
이젠 앞서서 움직이라고 침묵으로 일갈하는
죽임당하며
살아나
물 밖 세상도 서서히 침몰 중이라고
우리를 자각시켜주는
처절한 영혼들의 외침
들리는가

우리들이 살아날 수 있는 마지막 에어포켓
양심과 연대와 정의와 사랑이여!
평등과 평화의 항로에서
우리들을 무한경쟁체제로 몰아대며
눈앞의 이윤만을 추구하며
나라를 기울어뜨리고 있는 자들이 누구인가
적시하며
이제 우리는 슬픔을 분노로 승화시켜야 한다
분노를 울컥울컥 토해야 한다
분노로 진정한 적폐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
그래야 미래의 슬픔을 막을 수 있고
그래야 수백 명의 희생자가
5천만 명을 구하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구명조끼가 되어야 할 정부가
구명조끼가 필요 없는 세상을 펼쳐야 할 정부가
구명조끼를 입게 만들고 있는
이 땅에서
마음에 졸라맬 수밖에 없는 구명조끼를
훌러덩 벗어던질 수 있게 될 때까지
우리는, 우리들의, 지금, 이 분노를
한 숨통으로
몰아치며 끝까지 전진해야 한다

처음으로 돌아가기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에게

송경동

엄마 아빠
구조대 아저씨들은 언제 오나요
늠름한 해경은 해군은 언제 오나요
구명정은 언제 오나요
구조헬기는 언제 오나요
그 많은 최첨단 전쟁무기는 모두 어디에 쓰이나요

엄마 아빠
이 방을 나가고 싶어요
왜 내 앞의 인생의 문이 모두 닫혀야 하나요
숨이 막혀요
왜 내 인생이 이렇게 갑자기 기울어져야 하나요
누가 나를 이 답답한 시대의 선실에 가두었나요

그렇게……
안전한 선실에서
가만히 있어라는 말을 믿다가
착한 아이들이 죽어갔어요
가만히 있어라는 협박과 기만 속에
무수한 우리들의 미래가 죽어가고 있어요
더 많은 민주주의가 숨이 막혀 죽어가고 있어요
안전한 것은 늘 저들 자본과 정권의 금고뿐

우리는 어떻게
이 잔혹한 사회의 심해에서 죽지 않고
안전하게 살아 탈출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이 참혹한 세월로부터 벗어나
다른 세상을 살아 볼 수 있을까요

분명 한 시대가 기울고 있는데
한 세월이 침몰해 가고 있는데
얼마나 더 우리는 가만히 있어야 하나요
얼마나 더 저들에게
이 참혹한 세월의 키를 맡겨야 하나요

살려달라고 아직도 아이들이
저 슬픈 바다의 찬 밑바닥에 짓눌려 울부짖고 있어요
저 차디찬 고해의 바다 속에서
놀란 눈을 감지 못하고 있어요

침몰해야 하는 것은
이런 우리들의 작은 생의 조각배들이 아니라
저 부당하고 무능한 정권의 호화유람선이에요

이제 그만 이 세월호의 항로를 바꿔요
모든 인간의 생명과 존엄이 중심인 세상으로
이제 그만 이 나쁜 세월의 선장도 바꿔요
우리 모두가 우리 모두의 생의 조타수로
갑판원으로 구조대원으로 나서요

저 아이들의 아픈 영혼들이 실려
저 먼 우주의 은하수로 가는 그 배만큼은
안전할 수 있게
평화로울 수 있게
신날 수 있게 기쁠 수 있게
우리 이제 가만히 있지 말아요
우리 이제 가만히 있지 말아요

처음으로 돌아가기

소금 속에 눕히며

문동만

억울한 원혼은 소금 속에 묻는다 하였습니다
소금이 그들의 신이라 하였습니다

차가운 손들은 유능할 수 없었고
차가운 손들은 뜨거운 손들을 구할 수 없었고
아직도 물귀신처럼 배를 끌어내립니다
이윤이 신이 된 세상, 흑막은 겹겹입니다
차라리 기도를 버립니다
분노가 나의 신전입니다
침몰의 비명과 침묵이 나의 경전입니다

아이 둘은 서로에게 매듭이 되어 승천했습니다
정부가 삭은 새끼줄이나 꼬고 있을 때
새끼줄 업자들에게 목숨을 청부하고 있을 때
죽음은 숫자가 되어 증식했습니다
그대들은 눈물의 시조가 되었고
우리는 눈물의 자손이 되어 버렸습니다

일곱 살 오빠가 여섯 살 누이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줄 때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을 먼저 보내고
아가미도 없이 숨을 마칠 때
아이들보다 겨우 여덟 살 많은 선생님이
물속 교실에 남아 마지막 출석부를 부를 때
죽어서야 부부가 된 애인들은 입맞춤도 없이

아, 차라리 우리가 물고기였더라면
이 바다를 다 마셔버리고 살아있는 당신들만 뱉어내는
거대한 물고기였더라면

침몰입니까? 아니 습격입니다 습격입니다!
우리들의 고요를, 생의 마지막까지 번지던 천진한 웃음을 이윤의 주구들이
분별심 없는 관료들과 전문성 없는 전문가들이
구조할 수 없는 구조대가
선장과 선원과 또 천상에 사는 어떤 선장과
선원들로부터의……습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3층 칸과 4층 칸에
쓰린 바닷물이 살갗을 베는
지옥과 연옥 사이에 갇혀버렸습니다
우리도 갇혀 구조되지 않겠습니다
그대들 가신 곳 천국이 아니라면
우리도 고통의 궁극을 더 살다 가겠습니다

누구도 깨주지 않던 유리창 위에 씁니다
아수라의 객실 바닥에 쓰고 씁니다
골절된 손가락으로 짓이겨진 손톱으로
아가미 없는 목구멍으로
오늘의 분통과 심장의 폭동을
죽여서 죽었다고 씁니다
그대들 당도하지 못한 사월의 귀착지
거긴 꽃과 나비가 있는 곳
심해보다 짠 인간과 인간의 눈물이 없는 곳
거악의 썩은 그물들이 걸리지 않는 곳
말갛게 씻은 네 얼굴과 네 얼굴과
엄마아 아빠아 누나아 동생아 선생니임 부르면
부르면 다 있는 곳

소금 속에 눕히며
눕혀도 눕혀도 일어나는 그대들
내 새끼 아닌 내 새끼들
피눈물로 만든 내 새끼들
눕히며 품으며 입 맞추며

처음으로 돌아가기

祭亡妹, 흰 꽃들의 노래

허은실

너는 거기 앉아 있었다

타오르는 봄나무 푸른 불길 속
앉아서 헤헤 웃고 있었다
피어 있었다

너는 거기
함박꽃나무 희디흰 얼굴로 앉아서
이 생에 못다 한 말
자줏빛 꽃술로 품고
하얗게 웃고 있구나
죄없이 눈부시구나

네가 손 흔들며 뛰어갈 때
귓불에 매달려 흔들리던 작은 귀걸이
떄죽나무 조롱조롱 흰 종을 달고
소꿈을 놀고 있느냐
꽃등을 켜고 있느냐

흰 꽃들 피네 오월산천에
교복 안에 빛나던 너의 열여덟
아름다운 종아리처럼 뒤꿈치처럼
벽을 긁다 빠진 손톱마다 무서운 幻이
피어 피어 피어 피여 순결한 피여

물 속 깊이 뜬눈 젖은 얼굴 흰 수국 피네 흐르는 피 뜨거운 총구 막으려 찔레꽃 피네 면사포에 꽃목걸이 하고 가라고 아카시아꽃 잘린 네 젖가슴 위에 놓으려 큰꽃으아리 숭어리마다 붉은 응어리 서러운 땅 닿지 말고 딛고 가라고 절뚝절뚝 철쭉이 피네 피어오르네 산딸나무 흰 나비떼 날아오르네 누이야 누이야 한나절만 여기서 더 놀고 가렴 다물지 못한 입에 떠넣어 주려 이팝꽃 피네 백석 천석 만석 저녁을 짓네 누이야 누이야 한 숟갈만 더 밥 먹고 가렴

이 멀고 억울한 향기를 나는 알지
그건 너의 몸 냄새 캄캄한 향기

무덤가에 휘이 호랑지빠귀 울면
그건 너의 목소리 휘파람소리

잠들지 마 잠들지 마 눈 감지 마ㅡ

침몰하는 세상 조문하러
흰 꽃들 피네
오월 산천이
壽衣를 입네

푸르게 타오르는 나무 아래
나는 꽃잎을 따 입 속에 넣어본다
천천히 씹어
먹는다
너의

희고 춥고 여린
살을

처음으로 돌아가기

내 손을 잡아줘

임성용

놓칠 수 없는 손을 놓쳐버렸네
살아있는 말을 하지 못했네
보고 싶은 눈을 감아버렸네
만지고 싶은 얼굴을 잃어버렸네
따뜻한 체온을 뺏겨버렸네
그리운 웃음을 짓이겨버렸네
아, 나는 식어버렸네
나는 썩어버렸네
나는 나는 사라져버렸네
내 손을 잡아줘
내 울음을 꺼내줘
돌아가고 싶어
돌아가고 싶어
난 하늘의 별빛이 아니야
난 못다 핀 꽃이 아니야
나는 나는 노란 리본이 아니야
부러진 손이야
달려가던 발이야
절규하는 말이야
공포의 눈이야
너를 닮은 얼굴이야
아직도 숨 쉬는 체온이야
너를 향해 웃는 웃음이야
제발 그러지 말고
내 손을 잡아줘
꼭 붙잡아줘!

처음으로 돌아가기

넋을 달래며

송지현

처음에는 이 비극에 대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난무하는 말들이 비극을 키운 주범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며칠 동안으 다만, 해가 길게 뜨거나 기온이 오르기를, 혹은 바람이 잦아들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침묵한지 약 한 달이 지났습니다. 저는 이곳에 있고, 결국 침묵하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으며, 결국 변하는 것 또한 없을지 모르지만, 더 이상 다른 어떤 방식으로 견뎌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비극은 진행 중이며 …… 지금 이 순간에도 더욱 거대해지고 있습니다. 어떤 날은 이 비극과 제 자신이 완전히 분리된 것처럼 느껴져 하루를 보내다가도, 삽시간 절망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분노의 대상이 너무나 많아 혼란스러우며 동시에 호소할 대상을 찾지 못해 참담합니다.

모두가 위로를 하고 있지만 부적절한 위로들만 가득한 이 때, 학생들과 부모님들 그리고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저는 농담을 즐겨하지만, 이제는 가벼운 방식으로 말할 수 있는 어떠한 목소리도 찾지 못하였습니다. 온 나라가 병들었지만 아픈지도 몰랐던 오늘,

소설을 쓴다는 것은 기록이며 동시에 창조입니다. 이 엄청난 비극을 어떤 방식으로 기록할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또한 이 고통을 다른 방식으로 창조해낸다는 것도 소설가인 저에게는 너무나 힘겨운 일입니다. 다만 시간 속에 이 사건이 가라앉을까, 그것이 두렵습니다.

저희 세대가 거리로 나온다는 것은 너무나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부끄럽지만 하루하루 경제적 궁핍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것도 너무나 힘겨워 타인의 고통을 둘러볼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사건을 두고도 우리가 싸워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이 비극과 참담함은 저를 이곳에 세워두게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고통을 이야기하며 함께 우는 날입니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껴안고 함께 우는 날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함께 앓는 일이기에 오늘은 우리가 하나의 눈물로 합쳐지는 날입니다.

내일은 우리가 위로해야만 하는 <그날>들이 없길, 한없는 농담만이 있는 날들이 오길, 청춘들이 더 이상 피로하지 않길 바랍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처음으로 돌아가기

대한민국이 침몰하다

이시백

세월호가 바다에 잠기는 것을 바라보는 심경은 참혹했다. 배 안에 사랑하는 자녀를 둔 부모의 심정에야 비할 수는 없겠지만, 6천 톤이나 되는 거대한 여객선이 서서히 물에 잠기는 걸 지켜봐야 했던 국민들의 충격과 비탄도 그 못지않다.
세월호의 조난이 처음 보도되었을 때만 해도 설마 저대로 물에 잠기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다. 섬들이 바로 지척에 보이는 연안인 데다가 헬기가 나르고, 구조선들이 둘러쌌으니 무언가 대책이 있으리라 안심했었다. 설마 그 안에 있는 어린 학생들이 배와 함께 바다에 잠기리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아마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듣고 객실에서 기다리던 어린 학생들도 그런 심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는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맥없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틈만 나면 국격을 이야기하고, 세계 10위의 공적들을 자랑하던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국민들이 더욱 경악한 것은 400여 명의 사람을 태운 여객선의 조난을 수습하는 정부가 드러낸 무력함과 혼란이었다.
비탄과 경악은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탑승객 인원부터 실종자의 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몇 차례나 스스로의 발표를 번복하고, 때를 놓쳐 수백 명의 사람이 탄 여객선이 눈앞에서 뒤집어져 속절없이 가라앉는 동안 단 한 사람도 구조하지 못한 채 허둥대는 모습은 ‘국가’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속수무책, 좌충우돌, 갈팡질팡의 정부를 보다 못해 이번에도 민간 잠수부와 쌍끌이 어선과 오징어 배와 자원봉사자들이 나섰다. 정부가 한 일은 구급차를 가로막고 행차를 하거나, 한구석에서 라면을 먹거나, 난동을 부리지 못하도록 유족들을 가두고 감시하는 일이었다.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과연 이 나라가 세금을 바치고,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가를 부르던 대한민국이 맞는가.

‘가만히 있으라’

세월호는 대한민국이었다.
위기가 닥쳐오자 승객의 안전을 지켜야 할 선장이 가장 먼저 배를 버리고 달아나고, 제자리를 지켜야 할 승무원들도 제 살길을 찾기 바빴으며, 정확한 상황을 알리고 조속한 대책을 알려 주어야 할 방송은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며 사지로 몰았다.
많은 국민들이 세월호를 바라보며 침몰하는 대한민국을 생각했다. 모로 쓰러진 세월호를 대한민국에, 달아나는 선장을 국가 지도자에, 승무원들을 공무원들에, 방송을 언론에 이입하는 것은 전혀 무리한 상상이 아니다.
위험에 빠진 국민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하며, 실제로 침몰해가는 배의 주변에서 ‘가만히 있던’ 이 나라에 대해 국민들은 이 나라가 국민을 제대로 지킬 수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국가는 거대한 힘을 지닌 괴물이다. 국민이 위탁한 권력은 상상을 초월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하다. 자칫 그 힘을 잘못 쓰면 걷잡을 수 없는 참극이 벌어진다. 그래서 국가는 힘이 강한 만큼 책임도 크다. 괴물이 될 수도 있는 국가를 견제하기 위해 국민들은 언론이라는 감시인을 두었다. 이번 세월호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들은 과연 그 소임을 다하였는가.
절규하는 유족들에게 보험회사의 보상금을 친절히 계산하기 바빴고, 이번 사고를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의 호기로 이어나가는 발빠름도 보였다. 현장의 실태보다는 정부가 불러주는 통계를 앵무새처럼 읊조리다가 함께 갈팡질팡하였으며, 비탄과 혼란에 빠진 유족과 국민들에게 그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나팔만 불어댔다.

분노의 표적을 돌리지 말라

대통령은 이번 사고의 책임을 물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하겠다고 한다. 당연히 엄단하고 철저히 사고 원인을 규명할 일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에 앞서 할 일이 있었다. 대통령은 자신부터 엄단하고 사과해야 했다.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는 헌법 7조 1항의 공무 수행자의 책무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헌법 제 34조 6항의 국가 통수권자로서의 책무에 대해 대통령은 먼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자신을 엄단해야 했다.
대통령이라는 지위를 엄단하는 존재, 야단치는 존재로 착각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국민들은 야단치는 대통령을 뽑은 게 아니라, 책임지는 대통령을 뽑은 것이다. 국민은 위기가 닥쳐온 뒤에 엄단만 하는 대통령보다, 위기를 미리 방지할 수 있는 대통령을 선출한 것이다.

세월호를 바라보면서, 앞서 일어난 천안함의 비극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장병들이 수장된 천안함의 비극은 북한만 탓하기에는 여러 모로 허술한 구석이 없지 않았다. 수심 위로 올라온 함정을 지켜보면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초기 대응이며, 그러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안보상의 허점에 대해서는 어떤 책임도 규명되지 않은 채 덮여졌다.
세월호는 그런 점에서 천안함의 연장에 놓여 있다. 국민의 우려와 분노를 북한이라는 표적으로 돌리기에 급급했을 뿐,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았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의 가슴에 훈장만 걸어준 천안함이 오늘의 세월호를 만들었다.
책임 있는 국가라면 국민의 분노를 피해선 안 된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민심이 이반하자, 일제는 저들을 향한 분노의 표적을 재빨리 재일조선인에게 돌려 위기를 모면했다. 1992년 미국의 L.A에서 일어난 흑인들의 폭동을 애꿎은 한인들에게 돌린 기억도 생생하다. 이러한 표적 돌리기를 제 국민들에게 하는 나라라면 그것은 이미 국가가 아니다.
세월호라는 불행한 사고에 대해, 정부와 대통령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공범으로서 부끄러움과 통감의 자세를 국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범죄자를 엄단하는 일로 자신의 범죄를 덮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세월호와 함께 침몰했다. 국가는 어디에 있었느냐고 묻는 국민들에게 대통령은 제 자녀를 배 안에 둔 부모의 심정으로 대답해야 할 것이다. 손톱이 모두 빠지도록 배의 철문을 긁다가 생명을 잃은 어린 영혼들의 절규에 통회의 심경으로 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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