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으로부터 간첩 혐의를 받아 구속됐던 화교 출신 탈북자 유우성(34)씨의 눈물 섞인 호소가 법정 안에 울려퍼졌다. 국정원에서 ‘오빠가 간첩’이라고 진술했던 동생 유가려(27)씨는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유우성씨는 “대한민국에선 법이 지켜주는 거야. 재판장님이 지켜주고”라며 동생을 다독였다. 지난해 3월 4일 비공개로 열린 이른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1심 첫 재판이 열린 수원지법 안산지원 법정 안의 풍경이다.

이 같은 풍경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민주당 신경민 의원이 19일 야당 단독으로 소집한 법사위 회의에서 당시 재판의 일부가 담긴 육성파일 약 21분 분량을 공개하면서 생생하게 접할 수 있게 됐다. 그 육성파일을 독자들에게 공개한다.

“동생이 너무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지금. 돌아가게 되면, 저도 그 심정 너무 잘 압니다. 아니 독방에 갇혀서 저 여린 여자애를 독방에 가둬 놓고 하루도 아니고 10월 달, 11월, 12월, 1월까지 이런 식으로 조사하는 게 말이 됩니까? 이게?”

유우성씨는 격앙된 목소리로 동생에게 변호사를 선임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동생은 흐느껴 울 뿐이었다. 유우성씨의 호소는 계속 이어졌다.

그는 동생에게 대한민국의 법이 동생을 지켜줄 것이고 재판장이 지켜줄 것이라면서 동생에게 재판 자리에서 변호사 선임을 하라고 말했지만 끝내 동생은 입을 열지 않았다. 무엇이 두려웠던 것일까.

유우성씨가 변호사를 선임하라고 얘기한 것은 동생이 한참 증인신문을 한 후였다. 유가려씨는 겁에 질린 채 재판 내내 울거나 흐느끼면서 검사의 질문에 답했다. 검사의 140개 질문에 유가려씨는 140번 “네”라고 대답했다.

장경욱 변호사는 이에 대해 “증인이 얘기하는 ‘예’라는 것은 각본에 짜여서 ‘예’라고 대답하지 않으면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에 돌아가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전혀 진실을 얘기하지 않는 울음 섞인 ‘예’입니다”라고 재판장에게 호소했다.

앞서 음성파일에서 확인했듯 동생 유가려씨는 변호사 조력 없이 혼자 국정원 조사에 응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오빠 유우성씨는 참다 못해 재판장에게 “동생이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는 자격은 있잖아요. 없습니까?”라면서 동생에게 변호사를 선임하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동생은 답이 없었다.

"깨끗하게 다 털면 오빠하고 같이 살 수 있다고…"

‘간첩 사건’으로 출발했던 이 사건은 검찰이 항소심에서 증거로 제시한 중국 화룡시 공안국 명의의 유우성씨 출입경기록 등 3개의 문건이 중국 당국에 의해 위조 문서라는 것이 공식 확인되고, 국가정보원 협력자의 자살 소동을 통해 사건의 전모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조작 사건’으로 비화됐다.

유우성씨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국정원에 의해 조작된 간첩이 될 수도 있었다. 이 사건의 양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자신의 오빠가 간첩이라고 진술했던 유씨의 동생 유가려(27)씨가 지난해 4월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나온 직후 자신의 진술을 번복했기 때문이다.

유가려씨는 그 해 4월 27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이 ‘오빠가 간첩이라고 진술하면 형량을 줄여 한국에서 함께 살게 해주겠다’고 회유와 협박을 해서 거짓 진술을 했다”고 밝혔다.

국정원 측의 ‘회유와 협박’이 있었다는 정황은 1심 첫 재판 당시 이미 드러나고 있었다.

녹음파일 상에서 유가려씨는 재판 당시 자신의 오빠가 구속된 상태인 줄 모르고 있었다. 그는 변호인이 유우성씨가 ‘구속’ 상태란는 언급을 하자 당혹스러운 듯이 “교도소에 갇혀 있다고요?”라고 되묻는다. 유가려씨는 또 “(국정원 측이) 자기 있는 죄를 깨끗하게 얘기하고 진술하고, 다 털어버리게 되면 오빠하고 같이 살 수 있다고 (했다)”라고 말한다.

오빠를 간첩이라고 진술하면서도 오빠가 갇혀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동생. 그녀는 자신이 ‘오빠가 간첩’이라고 진술하면 오빠와 한국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국정원 측이 자신을 회유했던 내용을 진술한다. 그리고 이 내용은 그 해 4월 기자회견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검사 “대한민국 정부가 유가려씨 보호”
정부, 50여일 뒤 ‘비보호결정’ 및 ‘강제출국’ 명령

변호인 측은 이 같은 국정원 측의 회유가 거짓말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검사는 이의를 제기하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보호할 것”이라고 반박한다. 검사는 “공소유지를 위해서라도, 유가려를 수용하고 있는 정부합동신문센터와 협의하여 체류할 수 있는 지위의 취득 방안을 강구하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썼다며, “우리가 실은 추방할 거면서 마치 안 그런 것처럼 거짓말을 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심히 사실과 다르고 상당한 유감을 표시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화교’ 출신인 유가려씨에게는 첫 재판이 있고 나서 50여일 뒤인 지난해 4월 23일 탈북자보호법에 따라 비보호결정 및 강제출국 명령이 내려진다. 결국 검사의 발언은 거짓말이라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같은 정부의 조치는 유가려씨가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나와 사건의 전모를 폭로하는 계기가 된다.

유우성씨는 재판에서 자신에 대한 ‘간첩’ 혐의를 반박하는 증거 2개를 제시했다.

첫 번째는 유가려가 검찰에 2012년 10월 한국에 들어오기 직전 아버지를 중국 연길에서 청도로 먼저 보낸 뒤 오빠와 둘이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다고 진술한 데 대한 반박 증거였다. 유우성씨가 휴대전화가 보관하고 있던 사진이었다. 비행기에는 유우성씨와 유가려씨 그리고 아버지가 함께 있었다.

동생의 진술이 거짓임을 밝혀야 하는 오빠는 격앙됐다. 유우성씨는 “이런 거짓말”이라면서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다. 이내 그는 “거짓말 한다고 오빠가 너를 원망하지도 않고 증오도 안 해”라면서 “국정원에서 어떤 회유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재판정에서는 판사님도 계시고, 여기 계시는 분들이 있어서 무서워하지 마. 울지말고”라며 동생을 달랬다.

동생은 울기만 했다. 끝내 동생은 오빠에게 “미안해”라고 말했다.

변호인들은 유우성씨의 휴대전화에 있는 증거 사진을 유가려씨에게 보여주려고 했다. 그러나 검찰이 거부했다. 휴대전화에 있는 사진이 ‘믿을 만하다’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국정원과 검찰은 유우성씨가 2012년 설에 북한 회령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씨는 당시 중국 연길에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진 증거도 제시했다. 자신과 동생, 아버지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유우성씨는 사진을 설명하면서 동생에게 “처음으로 9년만에 가족이 세명이서 사진 찍은 것도 가져왔다. 그 사진은 뭐야 그 사진은 귀신이 찍은거야”라며 울먹였고 동생은 흐느껴 울었다.

변호인들은 유가려씨에게 이 사진이 그 당시에 찍은 것이냐고 여러번 물었다. 동생은 “그 전에 찍은 것”이라고 말했다가 나중에는 그 당시에 찍은 사진이 맞다고 시인했다.

“5분만 오빠 만나게 해주세요” 수차례 요청 막아나선 검사

이 날 유가려씨는 법정 안이 아닌 격리된 영상증언실에서 증언을 했다. 이는 검사가 유우성씨와 동생을 만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재판 중간에 유가려씨를 영상증언실이 아니라 재판정으로 데리고 오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검사가 극구 반대했다. 검사는 “남한에 있는 유일한 혈연관계에 있는 증인을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대면하고자 하는 것은 증인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이용해서 진술을 번복하고 증거를 인멸하려고 하는 의도가 있다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논리를 폈다. 유가려씨도 격리된 공간에서 진술하는 것이 편하다고 말했다.

그러다 유가려씨는 '단 5분'만이라고 오빠를 만나게 해 달라고 수차례 요청했다. 검사는 끝내 동의하지 않았다. 유우성씨가 판사가 보는 앞에서 5미터 밖에서 얼굴만 보겠다고 말했지만 검사는 적절하지 않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재판이 끝나고 나서도 유가려씨는 오빠 얼굴을 보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검사는 또 반대했다. 잠시 후 유가려씨는 검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법정에 들어섰고 울면서 오빠와 2분간 만났다.

녹음 파일을 공개된 자리에서 야당 의원들은 이번 '간첩조작' 사건을 강하게 규탄하는 한편, 특검을 통해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이것이 성공한 간첩 사건이었다면 서울시장 선거 판도가 흔들렸을 것"이라며 "오세훈 서울시장 당시 취업한 유우성씨의 사건을 박원순 시장 때 터뜨려 박 시장을 간첩과 연루된 것처럼 흔들려는 조작 사건"이라고 질타했다.

같은 당 박범계 의원은 "(서울중앙지검 진상조사팀)윤갑근 수사팀장은 유우성씨 사건의 판결이 확정되지 않았으므로 국가보안법 적용이 어렵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수사를 충분히 하되 기소를 멈춰야 한다"며 "특검에 의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사위원장인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저서(국가보안법)를 보면 이 사건은 국가보안법으로 (연관된 국정원 직원 등을) 기소할 수밖에 없다"며 "상설특검법에 따라 이것이 제1호 특검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신경민 의원이 공개한 재판 육성녹음 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