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최재덕

이동권

영상 김도균

사진영상 제공 이화득

인터랙티브 인터뷰

자동차 세계여행 지평을 열다

이화득 여행작가

현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간을 속박한다. 인간은 현실에 속박당하는 것을 괴로워하며, 잠시라도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용기를 내는 이는 드물다. 누군가에게 뒤처진다고 여기거나 삶은 이겨내야만 하는 것이라고 단정 짓고 속박에 얽매인 삶을 스스로 종용한다. 어떤 경우에는 관능적이고 말초적이며 찰나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것에만 열중한다.

가장 큰 속박은 돈이다. 예를 들면 아이들 과외에는 없는 살림까지 다 털어 돈을 대지만 아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쌓아주는 일에는 머뭇거린다. 진정한 공부보다는 눈앞의 입시에만 매달려서다. 그런다고 성적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영어 단어, 수학 공식을 외우는 것보다는 왜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을 외워야하는지 아는 것이 우선이다.

시간이 없다고 엄살을 부리는 사람도 많다. ‘정말 시간이 없으신가요’라고 정중하고 묻고 싶을 뿐이다. 솔직하지 않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일상에서 벗어날 용기가 없다고 말하는 게 맞다. 꼭 명소에 가야하고 사치스러울 필요는 없다. 긴 시간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삶의 지혜를 얻는 여행은 오로지 마음에 뒤따른다.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만이 자신을 묶어놓은 갖가지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러한 진실을 몸소 보여준 사람이 있다. 이화득 여행작가다. 이 작가는 여행을 망설이는 것은 돈이나 시간 같은 속박보다는 세계관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여행은 삶을 배우는 교육의 일부’라는 철학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자동차 여행의 새 지평을 열다

이화득 작가는 ‘역마살’ 같은 것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여기저기를 다니는 것을 좋아해 틈만 나면 여행을 떠났다. 군대에서 14박 15일 정기휴가를 나올 때도, 그의 선택은 여행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마지막 날 부모님께 인사하고 귀대’할만큼 여행을 편애했다.

다양한 여행 경력은 그에게 30대 초반부터 여행 작가의 길을 걷게 했다. 그의 생업은 교사였지만, 여행은 그의 삶을 충실하게 채워주는 방편이 됐다. 이화득 작가는 지난 8월 31일자로 재직중이던 서울동성고등학교에서 명예퇴직을 했다. 다시 말하면 40년 가까이 여행을 떠나면서 글을 써왔다. 삶의 포상처럼 여행을 즐겼고, 여행에 매료돼 살았다. 단순히 역마살이라고 규정하기에는 부족한 설명이다.

“천석고황이라는 말이 있다. 고등학교 때 처음 들었던 말이었다. 딱 나였다. 자연을 사랑하는 고질병처럼 왜 떠나는지 모르게 떠났다. 설명이 어렵다. 어려서부터 여행을 떠났다. 성인이 되니 여행에 대한 노하우가 쌓였다. 자연스럽게 잡지 기고도 하게 됐고 그것이 모여 책도 냈다. 책이 잘 팔려서 10여권을 쓰게 됐고, 독자들이 많이 생기니까 자동차 여행을 떠날 수 있고 도움을 주는 일도 하게 됐다. 계획한 게 아니라 그때그때 주어졌다.”

이화득 작가는 1991년 ‘바다가 보이는 언덕’이라는 첫 책을 냈다. 당시 마이카 붐이 일었던 시기였지만 국내 여행서적들은 배낭여행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한 책밖에 없었다. 길안내를 해주는 네비게이션이 없어, 지도만 보고 다녀야했기 때문에 자동차 여행을 선호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래서 그는 ‘자동차로 갈 수 있는 여행지와 지도, 에세이가 있는 여행서적’을 기획했다. 자동차 여행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고 싶은 열망이었다.

쉬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고통을 부른다

여행은 현대인의 로망이다. 눈이나 비를 싫어하는 사람은 있어도 눈이나 비가 오는 곳으로 떠나는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일상의 피로와 권태를 물리치기에 여행만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는 의미를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 사람의 얼굴 모양이 다르듯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도, 여행에서 얻고 오는 것도 제각각이다. 오랫동안 여행을 떠났고, 그때 얻었던 감흥이나 정보를 책으로 기록했던 여행작가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그가 아직도 잊지 못하는 여행은 무엇이며, 여행에서 느꼈던 강렬한 인상은 무엇일까?

“여행은 언제나 기억에 남는다. 그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여행은 독일에 혼자 갔을 때다. 공항에서 짐을 찾고 나오다 길을 잃어버렸다. 공황을 이리저리 헤매다가 화장실에 들어갔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참 이상한 사람이 서 있었다. 머리는 까맣고, 검은 눈동자에 눈은 찢어져 있었다. 머리가 노란 독일 사람과 달랐다. 그 전까지는 내가 세상의 기준이었고, 내가 표본이었다. 하지만 독일에서 내가 기준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다. 충격이었다. 여행은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문화와 풍경 속에 내가 머물러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이화득

요즘 현대인들의 일상은 매우 단조롭다. 집과 직장을 쳇바퀴 돌듯이 왔다 갔다 하면서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다. 아이들 자라는 기쁨마저 없었다면 미쳐버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배후에는 돈이 있다. 돈은 인간의 용기와 열정을 빼앗고, 따뜻한 인간성마저 타락시켰다. 이화득 작가가 인생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을 것 같다.

“여행은 여유 있고 형편 좋은 놀음이지 않느냐고 할 수 있다. 나는 천주교 신자다. 예수님은 설교 여행을 다니면서도 힘들 때면 ‘우리 한적한 곳에 가서 쉬자’고 말했다. 삶이 힘들수록 쉬는 게 필요하다. 쉬어야 삶의 해답도 얻어진다. 여행에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 깨끗한 잠자리에서 자고, 소박하게 먹고, 쉰다는 생각을 하면 된다. 나는 취재 목적이 아니라 쉬러 여행을 가기도 한다. 뭔가 복잡하고, 정리할 게 많고, 몸과 마음이 힘들 때 다 내려놓고 여기에서 떠난다. ‘다 내려놓고’가 중요하다. 해외여행에서 정말 좋을 때가 언제냐면 호텔방 TV에서 알아듣지 못하는 뉴스가 나올 때다. 정신이 맑아진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집중하는 방법도 있지만 거기에서 몇 발짝 물러나서 바라보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현실의 복잡한 것을 해결하려고 나는 떠난다. 쉬지 못하는 어리석음 때문에 현대인들이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놀 시기에 실컷 놀게 하다

이화득 여행작가는 작가 이전에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을 직접 가르친 교사이자 세 자녀를 키운 학부모이기도 하다. 그가 낸 수많은 책 중에서 ‘공부갈증, 실컷 논 아이가 명문대 간다’라는 책이 유독 이채롭다. 교사가 쓴 책이라서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왜 여행 분야가 아닌 책을 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부담스러웠다. 잘해야 자식자랑이었고, 책에 나오는 당사자들도 부담스러워했다. 정답도 없다. 수많은 부모들의 나름대로 자녀를 교육하고 있다. 하지만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자녀들이 공부를 잘 하도록 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교사의 양심이었고, 책으로 내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책 제목을 보면 ‘실컷 논’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정말 놀기만 한다고 명문대에 갈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실컷 논’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는 자녀들을 키우면서 공부하라고 닦달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동기를 부여해 노력을 끌어내는 것을 가장 신경을 썼다고 한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솔깃한 이야기다.

“사람은 기본적인 욕망이나 본능이 있다. 노는 욕망도 있다. 일생동안 반드시 놀 때가 있다. 어렸을 때 놀면 자연스럽다. 어른이 돼서 놀면 문제가 심각하고, 노인이 되면 패가망신이다. 마땅히 놀아야할 때 실컷 논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성취하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자기 성취를 위해서 진실하게 노력하는 단계가 온다.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이고 본능이다. 하지만 부모들이 기다리지 못하고 어릴 때부터 공부공부 한다. 아이들을 억누르면서 왜곡되고 잘못된 부작용이 나온다. 실컷 놀면 그 다음 단계에 무언가를 한다. 그것이 빠른 아이도 있고, 고등학교, 20대, 서른이 넘어서 나올 수도 있다. 나는 아이가 셋이다. 첫째 아이는 좀 늦게 왔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와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 재수를 해서 고려대에 들어갔다. 둘째 아니는 철이 일찍 들었다. 공부하지 말고 쉬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자라 서울대에 갔다. 막내는 고등학교 2학년인데 아직도 놀려고 한다.(웃음) 때에 맞게 놀지 않으면 대학가서, 결혼해서 사고 친다. 열심히 놀라고 하고 있다.”

그는 사교육 없이 실컷 놀게 하는 교육법으로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워냈다. 자녀들이 공부를 잘해서만은 아니다. 그는 자녀들과 매우 사이가 좋다. 요즘 아이들은 사춘기만 되도 부모와 함께 얘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학원이다 과외다 밤낮으로 공부하라며 쪼는 부모를 좋아할 자녀는 없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공부를 할 때까지 기다렸고, 그 전에는 실컷 놀라고 배려했다. 그러니 자녀들은 자연스레 부모를 따랐다. 요즘도 함께 가족여행을 가자고 하면 자녀들이 나서서 일정을 빼고, 여러 가지 여행정보를 습득해 부모를 안내하곤 한다.

이화득 작가의 자녀교육법은 성공한 삶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가르친다. 자녀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에게 존경받고 자녀들과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부모가 되는 것 말이다.

이화득

여행은 어른들에게 배움의 기회다

이화득 작가의 삶은 여행작가에서 자동차 여행전문가로, 여행 컨설턴트로 진화했다. 이후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작가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보다 거창한 미래를 꿈꾸지 않았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여행정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며 살고 싶은 마음이 다였다. 여행은 ‘향락의 개념이 아니라 어른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는 값어치가 있다’는 굳은 믿음에서다.

현재 그는 ‘여행과지도’라는 여행사에서 자동차 여행 컨설팅을 하고 있다. 여행과지도는 패키지 여행사가 아니다. 고객들이 해외에서 차를 렌트해 자유롭게 여행하도록 돕는 ‘해외 자동차여행’ 전문 여행사다. 그가 말하는 자동차 여행의 장점은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직접 해결하며 다니기 때문에 자유롭고 경제적이다. 자녀들과 함께 떠나는 가족여행으로는 그만인 셈이다.

“나는 교사였다. 내가 가진 기술이라면 지식을 잘 가르치는 것이다. 지금은 여행사를 하면서 가이드 없이 스스로 해결하는 자유여행을 알려주고 있다. 해외에서 차를 빌려 여행하면 좋지만 처음 여행을 가는 이들은 어렵고 두려워한다. 그들에게 자신감을 넣어주고, 필요한 지식을 알기 쉽게 정리해서 알려주고, 렌트가 예약이나 업무적인 도움도 주고 있다. 나는 문학가 출신이 아니라 교사 출신 여행작가라서 요약 정리를 잘한다.(웃음)”

현대인들은 살기 참 팍팍하다. 사정이 어려운 사람도 많지만 돈 걱정, 시간 걱정하면서 양미간을 찡그리며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그는 세계 여러 군데를 여행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문화를 습득했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것이 많을 듯싶다.

“우리사회가 극악하다는 생각이 든다. 흉악한 범죄도 많았다. 최근에는 층간소음 불만 때문에 가스밸브 열어 폭발시킨 일도 벌어졌다. 끝까지 치닫는 사람이 많아졌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난히 마음속에 울분과 억압이 많고, 불행해 보인다. 안타까운 얘기다. 사람은 누구나 특별하다. 나만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마음,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모두 자기 생각이다. 내가 중요하면 다른 사람도 중요하다. 나는 그런 생각을 수시로 하면서 산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 형편없이 보이는 사람도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자고 수양한다. 그것이 행복의 비결이다.”

그는 여세를 몰아 민중의소리 기자들에도 당부의 말씀을 전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면 민중의소리가 한국을 대표하는 큰 언론사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세상 누구도 자신을 부정한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다. ‘너는 나와 같은 입장이니까 되고, 너는 나와 다른 입장이니까 안 되고’는 아니다. 나와 다르다고 존재의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세상 모든 것은 존재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일부 언론에게는 바랄 수 없는 일이다. 민중의소리가 중용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고, 세상을 포섭할 수 있는 언론사가 되길 바란다. 언론의 힘은 공감대다. 민중의소리라면 그렇게 할 수 있지 않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