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소리 인터랙티브 레포츠 | 래프팅의 고장 내린천을 가다

인터랙티브 레저스포츠

래프팅의 고장 내린천을 가다

총괄기획 : 최재덕, 글 : 김세운, 사진 : 와일드월드레저, 영상 :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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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소한 욕구마저 꺾어버리는 여름이다. 여름에는 물소리 우렁찬 계곡에 앉아 시원한 수박을 먹는 것도 좋고, 금빛 모래 반짝이는 백사장에 누워 한가로이 낮잠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서로 몸 부대끼면서 자연을 만끽하는 레저스포츠도 그만이다.

습하고 더운 열기가 몰아치는 여름에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온몸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윗옷을 훌떡 벗고 즐기는 목물이 간절해진다. 그럴 때는 콸콸거리며 쏟아지는 강물에 몸을 맡겨 보자. 고무보트를 타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따라 내려오는 맛이 제법이다. 거기에 담청색으로 물든 하늘과 청록의 물결로 넘실대는 숲, 올올하게 솟아 있는 기암괴석이 배경으로 어우러지면 마치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될 것이다.

여행은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 중 하나다. 업무와 관계에 얽혀 생긴 스트레스를 해소시키고, 불현듯 찾아와 마음을 어지럽히는 허무와 절망을 다스리는 지혜를 주며, 자신을 되돌아보지 못하고 떠들기 바쁜 오만과 나약을 자숙하게 한다.

가끔씩은 정신 건강을 위해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있다. 요 몇 년 사이에 생사람까지 잡는 별의별 일이 다 생겼다.

“내린천의 시원한 물줄기를 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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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가뭄이 들었다. 가뭄으로 논바닥이 갈라지고 농작물은 오그라들었다. 강원도 인제군을 관통하는 내린천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뭄에 불더위가 겹쳤지만 강물이 바짝 말라 래프팅은 어려워 보였다. 가뭄에 타들어 가는 강물처럼 그의 가슴도 타들어 갔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래프팅을 시작한 경력 17년차 박현문 씨다. 그는 현재 내린천에서 래프팅 업체 ‘와일드월드 레저’를 꾸리고 있다.

메르스 여파는 설상가상이었다. 시쳇말로 내린천에 파리만 날렸다. 래프팅 업계만 그런 건 아니었다.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하는 인근 식당과 숙박업소도 울상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며칠 전부터 장맛비가 내리면서 강물이 크게 불어 래프팅을 하기에 적절한 여건이 마련됐다.

가뭄 얘기를 꺼내자 박 씨는 고개를 홱 돌려 강물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좀 나아져 안심이라는 뜻이겠다. 요즘 내린천에는 평일 하루에 2천여 명, 주말에는 1만여 명 이상이 찾고 있다고 한다. 그는 “아직은 7월초 같은 분위기 밖에 되지 않다"고 했지만 예약 손님이 점점 늘어나면서 예전의 활기를 되찾고 있는 것 같았다.

박현문 씨는 노래 ‘곤드레 만드레’를 부른 가수 박현빈을 생각나게 했다. 트로트를 멋지게 부를 것 같은 구수한 인상과 말솜씨 때문이었다. 사실 이름도 좀 비슷했고, 외모가 빠지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기백도 좋고, 힘도 강인했다. 과거에 래프팅 국가대표를 할 정도로 기술까지 겸비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래프팅을 그 누구보다 사랑했다.

박 씨가 래프팅을 시작한 이유는 너무도 당연했다. 그는 국립 부산해사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항해술을 전공했다. 실습선과 큰 배를 타면서 물을 좋아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런 그에게 내린천 래프팅은 물 만난 물고기와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내린천 지형을 빠삭하게 알고 있는 토박이다. 왜 래프팅을 하게 됐냐고 묻자 그는 “물소리가 좋고, 래프팅을 하면서 시원함을 느꼈고, 사람 만나는 게 좋고, 스릴감이 좋아 래프팅이 푹 빠졌다”며 웃어버렸다.

“4월에서 10월, 언제든 래프팅을 즐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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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린천 상류. 탄탄하게 공기를 채운 하늘색 고무보트가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다. 수풀 사이에서는 훈훈한 바람이 불어와 비릿한 강물 냄새와 습한 기운이 온몸에 닿았다. 배를 타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유혹적인 첫인상이었다. 강물은 며칠 전부터 줄기차게 내린 비로 많이 불어 있었다.

구명조끼와 하이바를 착용하고 간단한 준비운동을 마친 뒤 포천에서 온 복지관 직원들과 함께 보트에 올라탔다. 가이드는 내린천의 명물 ‘물의 요정’ 씨가 맡았다. 그는 배에 탄 사람들에게 노를 젓는 방법과 래프팅을 하면서 생길 수 있는 위험 요소를 꼼꼼하게 설명했다.

‘물의 요정’은 가이드 박건영 씨의 별명이다. 그는 첫인상이 강렬해서 사람들이 가까이 하기에 조금은 부담스러워한다. 하지만 같이 보트를 타면 그냥 반하게 만드는 스타일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입담과 친근함은 기본. 긴 머리를 물에 적신 뒤 고개를 흔들어 물을 튀겨주면 어느 누구도 반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보트를 빈틈없이 제압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고무보트는 태백산맥의 비경을 어루만지며 내려갔다. 느긋했다 조급해지는 물줄기에 몸을 맡긴 채 조물주가 빚어놓은 사행천의 비밀을 탐구했다. 사행천은 구불구불 휜 지형에 흐르는 강을 말한다. 그 모양이 마치 뱀이 기어가는 모습 같다고 해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

보트는 물 위에서 미끄러졌다. 노를 저을 때마다 청청한 강물이 튀어 정강이에 닿았다. 보트는 물과 부딪칠 때마다 철썩 하는 마찰음을 냈다. 그 소리는 오르가즘과 같은 환희를 느끼게 했다. 하지만 물살이 생각보다 셌다. 조금만 방심을 하면 물에 빠질지 몰랐다. 긴장감을 놓지 않고 수려한 풍광을 즐기며 물고기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만끽했다.

무서운 굉음과 함께 급류가 나타났다. 여러 개의 바위 사이로 물이 맴돌며 빠른 물살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급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똥구멍’이 찢어질 정도로 다리에 힘을 주면서 노로 젓고 바위를 밀어냈다. 하지만 보트는 엄청난 기세로 쓸려 내려갔다. 노는 있으나마나 무용지물이었고, 뒤집어지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강물 위에 뜬 보트는 생각보다 가볍고 유연했다. 흐트러지지 않고 평행을 유지하며 물 위를 유영했다.

래프팅의 맛은 보트를 타는 즐거움도 있지만 깊은 강물에 빠지는 재미도 있다. 하지만 ‘물의 요정’ 씨는 무엇보다 안전에 각별한 신경을 썼다. 물에 빠지러 오는 것이 래프팅은 참맛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 누구 하나 싫어하는 기색 없이 내린천이 주는 기쁨에 빠져 들었다. 세속을 떠나 유유자적하는 즐거움은 다른 게 아니었다.

“깎아놓은 듯 멋진 절벽과 푸른 물살, 래프팅 최적지 내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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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린천은 래프팅으로 유명한 곳이다. 래프팅이 유명해진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짜릿한 쾌감과 질주 본능을 자극하는 코스 때문이다. 내린천 래프팅 코스는 약 70km에 달하며, 국내에서 가장 높은 난이도를 자랑한다. 고무보트가 휘청일 정도로 낙차가 큰 곳도 있어 래프팅 마니아들을 부른다. 래프팅 코스는 원대교〜고사리(6㎞), 하추리〜고사리(9㎞), 궁동유원지〜고사리(16㎞), 서리〜밤골(19.2㎞)이다.

또 하나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절경이 때문이다. 내린천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천혜의 자연 그대로였다. 내린천은 스스로 존재하거나 저절로 이루어지는 현상의 극치를 보여주며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내린천은 변화무쌍한 한 폭의 활화 같았다. 소나무들은 깎아지는 절벽 틈틈이 들어차 하늘을 향했다. 그 옆으로는 갖가지 꽃들이 만발해 바람에 흔들렸다. 새하얀 구름 사이로는 왜가리가 날았고, 물가 바위와 돌멩이마다 검푸른 이끼가 붙어살면서 시간의 영속성을 알려줬다. 여러 종류의 새들이 물소리와 경쟁하듯이 우짖는 것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박현문 씨는 4박 5일 동안 내린천부터 한강까지 타보기도 하고, 금강, 오대천, 한탄강 등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명소에도 가봤지만 내린천만큼 래프팅하기 좋은 곳은 없다고 자랑했다.

내린천에서 경험하는 한여름의 향연은 맑고 푸른 물살을 감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내린천의 절경과 마주하면서 감동을 경험하다 강물과 하나가 되는 래프팅을 즐기면서 절정에 이른다. 결말은 미련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삶의 터전으로 돌아오면서 또다시 내린천으로의 발걸음을 예약한다.

내린천 강가 바위에 앉아 종이배를 띄웠다.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고백을 종이배에 실어 보냈다. 도시 한복판에서 느껴야 했던 암담함과 시간과의 싸움으로 매진했던 일상의 짐까지 모두 담았다. 세속의 푸념일랑 모두 흐르는 강물에 씻어버리고, 가난해도 향기 고운 사람이 되길 꿈꾸며 서울로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