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최재덕

김도균

영상 김도균

사진영상 제공 신미리

인터랙티브 인터뷰

“손이 사람들 삶을 그리는 붓으로 변했어요”

국내 1세대 ‘샌드아트' 작가 신미리

2014년 7월,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문화제가 열린 서울광장. 수많은 인파가 몰린 이날 문화제에서 한편의 ‘샌드아트’ 영상이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길을 가던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췄다.

빛이 투과된 라이트박스 위로 모래가 뿌려지니 바다가 일렁였고 세월호와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해맑았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르고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리자 서울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눈에서도 눈물을 흘렀다.

가슴을 울리는 배경음악과 함께 그려진 이 ‘샌드애니메이션'은 어떤 외침보다도 강렬하게 사람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눈물로 그린 세월호 추모 작품

이 세월호 추모 샌드아트를 만든 신미리 작가는 국내 1세대 샌드아티스트다. 2015년 9월 경기도 용인의 작업실에서 신미리 작가를 직접 만날 기회가 생겼다. 궁금한 게 많았지만 작가를 만나 세월호 얘길 먼저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얘기를 하려니 다시 울컥하네요. 정말 말이 안되는 사건이 일어났던 거죠. 세월호 사고 나고 공연들은 다 취소됐어요. 현장 상황은 점점 안좋아지는 상황에서 저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뭐라도 하고 싶고 안타까운데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세월호 사고가 발생하고 얼마 뒤 함께 작업을 해오던 남지선 연출가에게서 연락이 왔다. 같이 영상을 만들어보자는 거였다. 당시 많은 국민들이 TV앞에서 가라앉는 배를 보며 발을 굴렀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모두가 팽목항으로 달려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실 너무 조심스러웠어요. 오히려 가족들에게 상처가 될까봐 이걸 해야할지 망설였는데 '한번 해보자. 방향을 어떻게 잡을지 얘기해보자'고 하시더라구요.

그렇게 어떤 장면을 넣을지 조율을 하며 세월호 추모작업을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처음엔 아이들에게 희망의 자락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이 돌아올 수 없게 되어 갔다. 그렇게 장면구성도 바뀌었고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도 그려졌다.

"뉴스를 보면서 참 안타까웠어요. 저야 일이 멈춘 상태라 시간 여유는 있었던 때였죠. 주변에 중고등학교 아이들만 봐도 창피라고 미안해 못보겠더라구요. 어른들이 도리를 다하지 못해서 아이들이 죽음을 당한 것 같아 너무 미안했어요. 우리 세대가 잘하지 못해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게 아닐까.."

신미리 작가

"약 보름쯤 지났을 때 작품이 만들어진 것 같은데 이걸 공개해서 가족들에게, 힘든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걱정만 많았죠. 어디 올리지도 못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작품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는데,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곳곳에서 큰 위로가 됐다는 반응들이 날아들었어요”

추모 작품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고 싶다는 연락이 쇄도했다. 다행히 세월호 참사 가족들도 큰 위로가 된다고 하셔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누구하나 상처 받으면 안되니 컷하나 하나 정말 걱정과 고민이 많았었거든요"

모래 속 엄마가 눈물을 흘릴 때 작가도 눈물을 흘렸다.

“노래에서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마요’라는 대목에 여학생의 사진이 그려지고 엄마가 눈물을 흘리는 부분이 있어요. 그 장면을 만드는데 저도 울컥하고 장면 영상을 찍을 때는 엄마의 심정이라 정말 가슴이 아팠어요. 세월호 추모작품은 한컷 한컷이 찍는 저한테도 울림으로 다가왔던 시간들이었던 것 같아요"

작가는 상업적인 용도가 아니라면 언제든 연락이 닿는대로 세월호 추모 영상을 제공해왔다. 지금도 작품은 상업적 용도가 아니면 제공하고 있다.

생소했던 ‘샌드아트'
독학으로 배운 1세대

최근 샌드아트는 문화 콘텐츠로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방송 CF에서도 볼 수 있고 시사프로그램에서도 샌드아트 영상이 등장한다. 특유의 스토리 전달력 때문에 시사프로그램 브릿지로 자주 사용되는 것. 이밖에도 최근에는 교육콘텐츠로도 급부상하고 있다. 기존 영상물, 애니매이션 등에서 탈피하고 싶다는 생각들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샌드아트의 독특한 스토리텔링 방식은 나이어린 아이들의 시선도 고정시킨다.

모래로 하는 모든 예술은 ‘샌드아트’ 영역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해변의 조각물, 투병한 병에 색색의 모래를 채우는 작업도 샌드아트. 샌드애니메이션은 그 중 하나의 영역에 해당된다고 보면 된다.

샌드아트가 국내에 언제 처음 들어왔는지는 공식적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신 작가는 "장 폴로 (건국대) 교수님의 작품이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접하게 됐고 1세대 작가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장 폴로 교수는 ‘샌드애니메이션’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인물.

미술 디자인을 전공한 신미리 작가는 샌드아티스트의 길을 걷기 전까지 디자인과 수채화 작업을 주로 해왔었다. 샌드아트의 길로 들어선 건 우연이었다.

"어느 날 팝페라를 하는 분이 공연이 있는데, 모래로 그림을 그려주면 좋겠다고 제안을 해오셨어요. 공연이 얼마 남지 않았던 상황이었는데 그때부터 모래로 연습을 하게 됐죠. 그동안 그림은 그려왔던터라 문제가 없었는데 모래로 느낌을 살리는 게 중요하잖아요. 그런 방법을 연구했죠. 한두번 하다보니 스킬이 늘었고 그렇게 공연을 계속하게 됐어요"

신미리 작가

‘샌드아트'에 필요한 도구는 라이트박스, 모래, 조명이 있다. 조명이 설치된 라이트박스는 ‘스케치북’과 같다. 모래는 자연 모래를 쓰는데 섬세한 작업이 필요한 만큼 채로 걸러낸 고운 모래만 쓴다. 잘 퍼지고 잘 닦이는 모래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고 잘 안 닦이는 모래도 있어 이런 특성을 이용해 보완하기도 한다.

“어떤 장면을 모래를 뿌려 실루엣으로 표현할지 아니면 모래를 닦아내고 하얗게 표현할지... 더 효과적이고 감동적인 표현을 선택하죠. 그런 묘사들이 한 영상에 적절하게 조화 이루게 만드는 편이에요”

모래를 뿌리고 닦아내듯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크림을 짜서 케익을 만들 듯 그리기도 한다. 신미리 작사의 손이 붓이라고 할 수 있다. 세밀하고 가는 선은 새끼손가락이나 손톱으로 그린다.

신 작가가 처음 모래를 손에 쥐었을 당시만해도 샌드아트를 배우거나 도움 받을 곳이 없었다. 그래서 직접 외국 작품들을 참고하고 연구해야 했는데,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신 작가는 직접 강의 커리큘럼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모래로 그려내는 스토리...”손은 삶을 그리는 붓”

음악과 어우러지는 샌드애니메이션은 통상 노래나 연주 한곡에 맞추는 경우가 많아 약 4분 정도 소요된다. 이 시간동안 라이트박스 위에선 작가의 눈과 손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한 컷 한 컷 장면들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그려진 장면은 다음 장면을 위해 사라진다. 샌드애니메이션의 특성상 스토리 전개를 위해선 공들여 만든 장면을 지워야 다음 장면을 그릴 수 있다. 이를 기록하는 건 사진과 동영상 카메라다.

"간혹 샌드아트 제작을 의뢰하는 분들 중에 전 장면을 수정해달라고 요구하는 분들이 계신데 그 전 장면은 수정이 불가능하죠. 그래서 스케치컷으로 스토리보드를 미리 보여드려요”

신 작가는 작품 공연 활동 외에 뮤직비디오 작업도 많이 하는 편이다.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면 예쁜 작품들은 꼭 그리고 싶어지더라구요. 한번은 ‘겨울왕국'을 샌드아트로 표현해보고 싶어 만들었던 적이 있는데 유튜브에서 반응들이 뜨거워 놀랐죠”

신미리 작가의 블로그와 유튜브 채널을 방문하면 '겨울왕국'은 물론 ‘빅히어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을 재해석한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공연을 가면 느끼는게 4살 5살 아이들도 울지 않고 집중해서 관람을 해요. 참 신기하죠. 사람이 손으로 하는 것 보는 집중력이 대단해요. 엄마들도 신기하다고들 말씀하시니까요”

신 작가는 현재 성남아트센터에서 샌드아트 강의를 하고 있는데, 어린이들에게 샌드아트를 가르쳐주는 ‘강사 과정’을 만들어볼 계획이다.

앞으로는 샌드아트 라이브공연 외에도 미디어를 통해 영상작품 관람할 수 있는 ‘미디어아트’도 고민 중이다.

신미리 작가

신미리 작가는 샌드아트를 통해 몰랐던 재능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어릴 적부터 글쓰기와 그림, 음악을 좋아해 미대를 갈까 음대를 깔까 진로를 두고 고민도 많았다는 작가. 어쩌면 이 세가지가 종합된 샌드아트를 하게 된 건 운명이었지도 모를 일이다.

“늦게 시작했지만 아쉬움은 없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평생할 수 있다면 그건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얘기들 하잖아요. 저에겐 일로 느껴지지 않고 만족도가 느껴지면서도 힘들지 않으니까 감사할 따름이죠. 하루종일 작업하고 틈틈이 공연하고 하는데 잠깐 차 한잔 마실 여유 밖엔 없지만 창작활동의 즐거움이 커요”

사랑하는 연인에게 고백을 하기 위해 샌드아트를 배우고 싶다는 요청도 종종 들어온다고 한다.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모래로 그려내다보면 신미리 작가의 손은 그냥 손이 아니라 삶을 그리는 붓으로 변한다.